코로나19 속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을 검토하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라’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사태에선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사망자 75명 중 23%는 입원조차 못한 채 사망했다. 병상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당시 대구에는 3만 6천327개의 병상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민간병원 소유로, 공공병상은 약 10%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공공의료기관

 

사스, 메르스 등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공공의료기관 확충 논의가 이뤄졌다. 공공의료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해서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다. 이는 설립자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등이 있다. 반면, 공공의료는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홍윤철 교수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체계에서 의료의 비영리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가 기본적으로 공공성의 틀을 갖췄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뿐 아니라 민간의료기관도 공공의료 기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의료기관은 감염병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 공공병원에 비해 병상을 즉각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환 정책국장은 “민간병원들은 전염병 사태 발생 시 경제적 유인이 없으니 병상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3월 대구에서 입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발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월 27일 기준 코로나19 확진 환자 1천17명 중 입원 조치된 환자는 43.9%인 447명뿐이었다. 공공병원이 수용하지 못한 나머지 570명은 병상 부족으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홍 교수는 “민간의료기관을 국가적 필요에 따라 동원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로 볼 소지가 있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다”고 밝혔다.

반면, 공공의료기관은 감염병 대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재난 의료 상황 시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곳은 공공의료기관뿐이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공공의료기관은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김동은 교수는 “약 5%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체 환자의 약 78%를 치료했다”며 공공의료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공공의료기관은 표준진료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민간의료기관의 경우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과잉진료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공공의료기관은 기본적으로 수익이 목적이 아니기에 과잉진료 없이 표준진료를 할 수 있다. 이에 소외계층은 상대적으로 진료비가 저렴한 공공의료기관을 찾는다. 김 교수는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비해 본인 부담금이 적고 과다한 검사나 처방이 없는 장점이 있다”며 “우리 사회 의료 취약 계층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공공병원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기준 OECD 비교 국가 대비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은 5.7%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52.4%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과잉병상인데 병상이 없다?
민간병원 중심 의료 구조의 모순

 

현재 우리나라의 병상 수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과잉병상이라는 우려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한국 병원의 전체 병상 수는 인구 1천명당 12.3개로 OECD 평균의 2.6배다. 하지만 이 중 89.8%가 민간의료기관 소유의 병상이다.

이는 지역의료격차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민간의료기관은 인구밀도가 낮아 수익 창출에 불리한 지역에 병원을 짓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으로 병원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의료 취약지가 생긴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한 ‘2018 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수도권·대도시로 의료자원이 집중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의료 접근성, 사망률 등 건강 수준의 격차가 존재한다.

특히 상급병원의 수도권 편중 현상은 환자들의 생명권과 직결된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018년 기준 산모가 분만의료기관에 도달하는 평균시간이 서울은 3.1분인 반면 전남은 42.4분이다. 전 국장은 “2천500병상 이상 되는 빅5 병원들이 서울에 다 몰려 있다”며 “강원도와 같은 의료취약지역에는 응급, 분만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과 지방은 의료인력 규모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서울은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가 4.4명인 반면 경북 지역은 2.1명에 불과했다. 특히 필수의료 인력인 산부인과 전문의의 지역 격차가 극심하다. 2018년 기준 산부인과 전문의가 서울은 인구 10만 명당 15.3명이었던 데에 반해 경북지역은 8.1명이었다. 이에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할 경우 지역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홍 교수는 “민간의료기관이 약 90%를 차지하는 상황이라 모든 국민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의료를 보장하고 형평성 있게 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제한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가 아닌 의료 민영화를 향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제주 영리병원 사태를 들 수 있다. 지난 2015년 중국 녹지그룹이 제주도에 제주국제녹지병원 설립을 승인받아 논란이 됐다. 현재는 개설허가가 취소된 상태다. 의료법에서 말하는 영리병원이란 단순히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 아니라, 기업과 같은 영리법인이 세운 병원을 말한다. 영리병원은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기 때문에 환자 진료가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법으로 영리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김동은 교수는 “제주 영리병원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의료 영리화, 의료 상업화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 병상 수에서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10%로, 2012년 11.7%보다 1.7%p 감소했다.

수익성을 이유로 공공의료원이 폐쇄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13년 경남도청은 진주의료원을 강제 폐업시켰다. 당시 진주의료원은 서부경남지역의 유일한 공공병원이었다. 그럼에도 경남도청은 진주의료원의 누적적자가 279억 원이고, 매년 적자 규모가 커진다는 이유로 폐업을 강행했다. 현재 경남의 공공의료시스템은 공공병상 1개당 평균 인구수가 1만 1천28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열악하다. 지난 7월 코로나19 사태로 공공의료 공백을 체감한 지역주민들은 ‘제2 진주의료원 설립’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때 서부경남 주민대표의 95.6%가 설립에 찬성함으로써 공공병원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됐다.

 

의료 인프라 구축이 우선
공공의료기관 확대가 필요해

 

공공의료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는 ▲공공의료기관 확충 ▲의료진 확보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공공병상 비율은 지난 2017년 기준 10.2%로 OECD 평균인 70.8%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홍 교수는 “공공병원의 비중이 너무 적어 기본적인 필수의료나 재난의료를 제공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상태”라며 “공공병원을 30% 정도까지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공공의료기관확대 정책은 미비한 상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소관 추경예산안에 공공의료 확충 예산은 미반영됐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공공의료기관이 확충되지 못한 이유는 수익성에 있다. 공공의료기관은 공공성을 지키는 동시에 수익성을 좇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앞서 언급한 진주의료원과 같이 실제로 많은 지방의료원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에 공공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윤강재 센터장은 『보건복지 ISSUE&FOCUS』에서 “공공의료기관은 ‘비용’과 ‘효율’의 관점이 아니라 ‘사전 예방’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공공의료기관이 보편적인 의료를 담당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현재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병원 9개소 이전·신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 신설돼도 근무할 의사가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공중보건의사(아래 공보의)를 공공의사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보의 수는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2012년 전국 공보의 수가 4천46명이었던 것에 비해 2019년 5월에는 3천554명으로 줄었다.

이에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지역의사제 도입을 발표했다. 2022년부터 10년간 매년 400명씩 늘려 의사 4천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4000명 중 3000명은 '지역의사 특별전형'으로 선발해 10년간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하는 지역의사로 양성한다.

현재 이 정책은 뜨거운 감자다. 의료계는 지역의사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원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우선 의료계는 필수과 기피 현상을 우려한다. 지역의사제로 뽑힌 학생들이 전문의 자격증을 따는 15년 동안 전공의들이 필수과를 기피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10년의 필수복무기간이 끝나면 의사들이 의료취약지역을 떠날 것이라 저적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제도 종료 이후 지역 필수 의료 시스템이 한순간에 붕괴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공공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지금은 공공의료가 취약계층을 위한 ‘잔여적 의료’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공공의료는 취약계층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필요한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김 교수는 “의료마저 시장의 상품이 된다면 의료비의 급증으로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게 되고 우리 사회 취약계층의 건강권 보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 역시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나 응급·감염병 의료의 경우 민간부문에 맡기면 충분한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며 “이런 의료 서비스는 공공재로 제공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나라 방역은 ‘K-방역’이라 불리며 전 세계적인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공공의료 체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으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의료상황에서 또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기관이 보편의료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자료사진 보건복지부 '2019 공공보건의료통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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