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 매거진부장 (정경경제·19)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들이 자라오면서 한 번쯤은 받아봤을 질문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 같은 질문을 받았다. 살아온 날이 같지만, 살아갈 날이 다른 가족의 질문이었다. 대답이 곧 선택이라는 것을 인지하기에는 어린아이여서, 책임감 없는 답을 했다. 선택받지 못한 이에게 배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의도 없는 상처를 준 그 시절을 후회한다. 그때의 대답이 선택이 아닌, 그저 의미 없는 단어였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가족에 대한 많은 정의와 기준을 세워봤다. 나의 기준이 무너지는 것을 무능하게 지켜보다 보니, 정의해야 할 가족들만 늘어났다. 지나쳐간 많은 인연 중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이들이 있다. 서로를 이해하려 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스쳐 지나간 가족을 떠올려본다. 믿음보다는 의심을, 사랑보다는 증오했던, 그날의 가족들에게 부탁한다. 그대의 삶에 더 큰 행복이 쌓여, 나를 잊어줬으면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기에는 피가 섞이지 않은 두 가족이 존재한다. 두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보다 눈물이 진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가족이 되기까지 흘린 ‘피보다 진한 눈물’을 봐왔기에 눈물 속에 담긴 진심으로 가족을 이해하려 한다. 가족을 정의 내리기 두렵지만, 나에게 가족은 눈물이다. 나는 눈물로 가족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나에게 더는 가족을 설득시키기 위해 눈물 흘리지 않길 바란다. 가족을 이해했기에 그대의 모든 순간을 눈물 없이 투명하게 바라보겠다. 나에게 피가 중요하지 않기에 나에게는 다 같은 가족이다. 그들의 눈물을 봐왔기에 그 진심을 구분 짓지 않으려 한다.

두 가족을 오가며, 막내에서 맏이로 위치가 바뀐다. 막내였던 아이가 맏이가 되어 막내를 안아본다. 한없이 귀엽고, 여린 동생들이 때로는 멀게 느껴진다. 나의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을 혹은 부담이 되었을 동생들에게 미안해진다. 좋은 맏이가 되어 동생들을 안아주려 한다. 나아가 내 동생들은 눈물로 가족을 이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훗날 나에게 새로운 단어로 가족의 정의를 설득해주길 소원한다. 그대의 단어로, 그대의 가족이 되어, 그대를 안아주겠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미 대답한 질문이지만, 새롭게 다시 답하려 한다. 어린아이가 어린 성인이 되어 답하는 대답이 과거의 순간과 마음이 같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삶을 살아오면서 답이 바뀐 것이 아닌, 그저 마음 깊은 곳을 이해한 성인이 되었을 뿐이다. 많은 시련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머물러 준 당신에게,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어준 그대에게, 살아온 날이 다르지만 살아갈 날이 같은 그대들에게. 늦었지만 과거의 그 질문을 다시 답하려 한다.

엄마도, 아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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