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현종 교수 (인예대·한국근대사)

최근 사회적 관심의 화두는 단연 정신대대책협의회 이야기다. 한 시민운동가의 30년 전력과 횡령 혐의에 대한 일방 비난이 횡행하고 있다. 한 세대 만에 겨우 빛을 보기 시작한 시민운동을 평가하면서 지도자의 도덕성조차 의심받고 있다. 과연 시민사회운동의 향후 운명이 정치가로서의 변신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잘못된 가치에 비타협적으로 어디까지 투쟁할 수 있을지 정체성과 한계를 물어봐야 할 때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시민운동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혹자는 독립협회의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조선말기 밑으로부터 인간 가치를 문제 삼고 나온 최초의 운동인 민중운동이라 할 수 있다. 1894년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은 외세 침략을 막고 차별에서 벗어난 평등한 사회를 꿈꿨다. 농민혁명운동은 마침내 한·일의 연합군에 의해, 그리고 보수 양반의 지휘 하에 같은 처지의 농민들도 참여한 민보군에 의해 압살당했다. 그때 농민군 총대장 전봉준이 한번 숨을 죽이고 타협해서 살아남았으면, 이 운동의 진로는 어땠을까.

또 다른 예는 1907년 신민회 운동이었다. 1905년 이후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신민회는 그동안 계몽과 교육으로 국권을 회복하려는 점진 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세우려고 했다. 이동녕, 이회영, 이상룡 등 애국지사들은 굶주림과 추위를 무릅쓰고 서간도로 험한 여정을 떠났다. 이들은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이후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에 대비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1920년 봉오동 청산리 전쟁에서 승리한 주역이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이었다. 이들 독립운동의 1세대 중에는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유수한 양반 가문의 후예들이 있었다. 이들이 만일 양반의 기득권에 안주했다면, 그렇게 처절하게 굶주리며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는 3.1운동 백주년. 시민혁명의 신기원을 다시 확인했다. 당시 학생·시민·여성, 온 민족이 나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독립을 외쳤다. 이들의 만세운동은 한 세대 전 농민들의 뜻을 이은 것이었으나 이후 한 세대의 시련을 거쳐야 했다. 일제 말 소위 대동아전쟁의 막바지는 군국주의 파시즘의 망령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였다. 그때 친일파 지도자들은 일제의 방침에 따라가 친일단체를 조직하여 전쟁을 부추기고 선동했다. 민초들은 어떤 이는 강제 징용, 징병으로, 여성들은 정신대로 끌려 나갔다.

아픈 민초들의 상흔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진실을 드러냈다. 이들에 공감하여 같이하려는 운동이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였다. 그 성과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고, 한일병합 100년의 반성과 일본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회의였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과인 민주와 평등의 가치를 우리사회에 자리 잡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그 결과 세계시민을 향하여 인도적 가치와 인류공동체를 함께 논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민초들의 행동에 주목하고자 했던 시민운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번 사태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1994년 이후 사라져간 농민군의 영혼이나마 위로해 주고자 했던 많은 추모기념과 연구 사업이 작년 기념일 제정과 더불어 관변측으로 축소·왜곡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21세기 들어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전보다 강화됐지만, 해가 갈수록 일본 역사교과서의 개악을 맞이하게 됐다. 퇴행하는 역사교육도 문제지만, 온갖 비난과 거짓을 가하는 우익 인사들의 무책임한 언동을 지켜봐야 했다. 30년간 시민사회 운동의 진전과 사회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역사 기억과 가치 공유가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한다.

옛 중국의 성인 중에 인륜 도덕을 중시한 공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진 것을 보면 (그와 같이) 가지런히 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만일 어질지 못한 것을 본다면, 마음속에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고. 요즘 세상에는 내가 본받지 말아야 할 추한 이들이 너무 많아 스스로 그렇게 되지 말자며 반성할 때가 너무도 많다.

그렇지만 나보다 뛰어나고 어질며 현명한 현자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차가운 남녘 들판에서 싸우다 쓰러져간 농민들이요, 만주 광야에서 독립을 외치던 애국지사들이고, 회한의 세월 속에서도 오롯한 삶을 견디신 정신대 할머니들이다. 80년 오월 광주에서 산화된 민중들이고 자주와 민주를 외치던 열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들을 어질고 현명한 사람들로 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들을 마주하고도 마음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도덕 상실로 인해 초래된 현시대의 불행을 함께 극복하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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