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빙자한 아동학대, 법으로 금지돼야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지” 아동이 체벌을 받기 전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러나 ‘맞을 짓’의 기준과 체벌의 수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이 ‘맞을 짓’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동의 입장에서 ‘사랑의 매’는 고통일 뿐이다.

 

 

맞아야 말을 듣는다?
역효과만 낳는 체벌

 

체벌은 아동을 때리거나 손을 들고 서 있게 하는 등 신체적 고통을 줌으로써 처벌하는 행위다. 지난 201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9천명 중 24.1%가 부모님을 비롯한 보호자에게 1년에 1회 이상 체벌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훈육을 위해 양육자가 18세 미만의 아동을 체벌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60세 남녀 중 68.3%가 체벌이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신체적 고통을 줘서라도 행동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통념과 달리 체벌의 교육적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체벌을 통한 훈육은 아동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단기적으로 행동이 개선된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다시 문제 행동을 보이기 쉽다. 고려대 구로병원 소아정신과 이문수 교수는 “양육자는 체벌을 통해 아동의 문제 행동이 개선되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체벌을 당한 아동은 자신의 잘못보다는 억울함과 수치심 등 부정적인 감정만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지속적으로 체벌을 받아왔다고 밝힌 A(21)씨는 “말을 버릇없이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수차례 체벌을 당했다”며 “당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딸을 때리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들었고, 화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

 

체벌과 아동학대 사이
존재하지 않는 구분

 

체벌과 아동학대를 명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동학대를 저지른 부모 중 상당수는 자신의 행동이 학대가 아닌 훈육이 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지난 5월 한 여성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5세 딸을 여행 가방에 수 시간 동안 가둬 숨지게 했다. 그는 평소 자녀의 훈육에 강하게 집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 2019년 발표한 ‘한국 아동권리의 현주소’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체벌 허용도가 높을수록 부모의 학대행위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 이처럼 처음에는 훈육이 목적이었더라도 그 정도가 심해져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A씨는 “유년기에는 욕설을 듣거나 여행지에 혼자 남겨지는 등 간접적인 체벌을 당했으나 청소년기부터는 직접적인 구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체벌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학대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교수는 “정신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이라며 “체벌과 학대는 연관성이 깊다”고 지적했다. 체벌은 아동에게 평생 낫지 않는 상처를 입힌다. A씨는 “체벌 경험 때문에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 같다”며 “청소년기에는 동급생들과 자주 싸웠고, 현재까지도 물건을 부수고 소리를 지르는 등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고 만다”고 말했다. 양육자가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한 폭력이라는 방식이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되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 셈이다.

이는 체벌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교수는 “체벌 및 학대를 경험한 아동은 부모의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며 “체벌을 당한 부모가 자식에게 또다시 체벌이라는 잘못된 양육방식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체벌은 아동학대와 마찬가지로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금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목적과 결과를 불문하고, 그 자체로 폭력이기에 용납돼선 안 된다는 시각이다. 우리대학교 김현경 교수(생과대·아동가족)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훈육 목적으로 아동을 때리는 행위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지만,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가볍게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조차도 아동학대로 본다”며 “가벼운 체벌도 아이에겐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모든 행위를 학대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징계권’ 허용하는 현행법
훈육의 탈을 쓴 폭력 막아야

 

체벌은 사회적 인식을 넘어 법으로 허용되는 모양새다. 「아동복지법」 제5조 제2항은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러나 이를 위반했을 시 처벌 규정은 마련돼있지 않다.

오히려 민법은 아동에 대한 징계를 친권으로 인정한다. 「민법」 제915조에 따르면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사단법인 ‘두루’ 강정은 변호사는 “아동학대는 형법의 영역이기 때문에 민법 제915조가 적용되지는 않지만, 아동에 대한 징계권을 친권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며 “비교적 정도가 심하지 않은 폭력의 경우 훈육 목적이었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난 2016년 별거 중인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가 뺨과 허벅지를 폭행했으나 ‘무례한 태도를 훈계할 의도’로 체벌한 것이라며 무죄판결이 난 사례가 있다.

교사의 체벌은 법적으로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체벌은 여전히 훈육으로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실제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부분은 부모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아동학대 사례 2만 2천367건 중 76.8%가 부모에 의해 자행됐다. 같은 조사에서 초중고 교사가 가해자였던 사례는 6%에 불과했다. 아동 보호를 위해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적인 제재가 필요한 이유다.

양육자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은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양육자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 변호사는 “부모에게 아동을 건강하게 양육할 책임만 있을 뿐, 아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며 “아동을 징계하는 것을 부모의 권리로 인정한 민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동과 보호자 사이 위계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아동에 대한 학대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캐나다 등에서는 아동 체벌이 법으로 금지돼있다. 부모의 징계권을 법적으로 허용하던 일본 역시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해 지난 2019년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지난 2019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을 비롯한 아동인권단체는 아동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민법 제915조를 삭제하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지난 5월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해당 조항을 삭제하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강 변호사는 “법무부 차원에서 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체벌과 아동학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정도만 다를 뿐 아동에 대한 폭력이라는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A씨는 “상습적으로 체벌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끔찍했다”며 “그때의 경험이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 현재 겪고 있는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됐기에 차라리 혼자 컸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동에 대한 체벌이 공공연히 허용되는 사회에서 아동은 학대의 위험에 노출된다. 더욱 안전한 가정, 사회를 위해 아동의 ‘맞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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