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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불이]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우리의 끝나지 않는 표류
  • 조서우 기자
  • 승인 2020.06.07 20:38
  • 호수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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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는 단순히 재산의 차이가 아닌, 계층의 차이다. 계층이 다르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층민은 상층민의 문화를 동경하고 모방한다. 그러나 하층민은 평생 따라 해도 사회 주류의 문화에 섞이기 어렵다. 김애란 작가의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는 ‘겉절이’로 살아가는 주인공 용대와 명화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

주인공 용대는 아버지 세대부터 친척의 뒷바라지를 해온 탓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용대는 친척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노력해도 상층민이 되긴 힘들었다. 용대가 사고를 칠 때면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고, 나중엔 용대 자신도 본인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용대의 아내 명화는 조선족이다. 조선족 모두가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명화는 가난했다. 명화는 돈을 벌기 위해 동생과 함께 한국으로 밀항했다. 이들은 골프장, 식당에서 일했다. 명화의 동생은 식당에서 쓰는 독한 세제 때문에 한쪽 눈을 잃었다. 그 후 명화는 동생 몫만큼 더 치열하게 일해야만 했다. 찜질방 청소, 발 마사지, 가정부, 모텔 청소 등 궂은일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고된 삶을 이어가던 명화는, 기사 식당에서 일하다 택시기사인 용대와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그들은 노래방에서 맥주를 마시고, 덕수궁을 걷고, 액션 영화를 봤다. 사람들은 이따금 조선족 특유의 말투를 듣고 이들을 힐끔거렸다.
사람들은 둘 사이를 수군거렸다. 아무리 불법체류자라지만 참한 처자가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별 볼 일 없는 남자와 만나는 건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나이 차이가 나는 남녀가 연애하는 이유는 한쪽에 문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편견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용대와 명화의 사랑은 별 볼 일 없을 정도로 당연하다. 그러나 늙은 용대와 젊은 명화의 사랑은 아니다. 나이라는 또 다른 계층은 그들의 사랑을 ‘하자 있는 것’으로 만든다. 용대가 명화에게 데이트로 어디를 가고 싶냐 물었을 때 명화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가는 카페’라고 답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정해놓은 젊은 사람들이 가는 카페, 홍익대 근처 갤러리카페로 용대와 명화는 향했다.

▶▶명화와 용대는 홍익대학교 근처 갤러리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카페 안에서 가장 늙고 초라한 그들은 눈에 띄었다.

용대는 그 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 명화 역시 거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수수하고 촌스러운 차림이었다.
용대는 그 카페에서만은 세상에서 가장 늙은 사람이 되어,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는 명화가 가고 싶어 했던 홍익대 주변 한 갤러리카페로 향했다. 유행하는 옷으로 치장한 젊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곳에 만약 용대가 있었다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즐비한 카페 속 추레한 남성은 상상만으로도 ‘낙동강 오리알’ 같았다. 계층은 문화로서 암묵적으로 강요된다.

돈으로 명예도 사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하층민

▶▶용대는 가난하지만, 명화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종로 타워의 고급 레스토랑을 간다. 용대의 허영심은 형편에 맞지 않는 소비로 이어졌다.

용대는 명화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종로타워 꼭대기 레스토랑을 찾는다. 가난한 용대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연인들이 청혼하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용대는 명화를 종로타워에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생각한다. 서울 한복판, 도시의 중심에서 용대의 구애와 함께 이들은 비프스테이크를 먹는다.

기자는 종로타워로 향했다. 서울 한복판 높은 빌딩들 사이,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많은 연인은 마치 의무처럼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사랑을 약속한다. 이뿐만 아니다. 명품과 고급에 집착하고, 동경하는 누군가를 따라서 소비하는 현상은 SNS만 둘러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과 같아야 한다’라는 생각은 무분별한 소비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지배하는 시대다.

▶▶ 구로 반지하는 용대와 명화의 불행한 삶을 보여주는 장소다. 결국 명화는 캄캄한 반지하 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몇 개의 소비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그들’과 같아질 수 없다. 종로타워에서 프러포즈한다고 해서 계급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용대와 명화는 결혼식 없이 구청에서 도장만 찍은 채 구로의 반지하 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기자는 이들을 따라, 종로타워에서 구로 반지하 방으로 향했다. 종로타워의 화려한 불빛과 구로 반지하의 음습함은 한 도시의 공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용대와 명화는 종로타워의 높은 빌딩을 동경하지만, 구로 반지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실을 부정하듯 이들은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배달음식만 시켜 먹으며 신혼을 즐긴다.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사랑을 잃고 표류하는 이들

달콤한 신혼 생활은 찰나와 같았다. 위암으로 인해 명화는 투병 생활을 시작하고, 병원비가 부족했던 용대는 다시 택시 일을 시작한다. 돈을 꾸려 쫓겨났던 집에 다시 전화하고, 친했던 택시기사들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이들은 용대를 외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계급이고 현실이다.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줄임말인 ‘자낳괴’라는 신조어처럼, 자본주의는 우리의 인간성을 빼앗고 괴물로 전락시킨다. 생계를 이어가기도 벅찬 하층민의 사랑은 비참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 돈 문제가 얽히면 사랑한다던 말은 욕으로 변하고, 껴안던 손은 무섭게 올라간다. 배우자가 보험금을 타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비참한 현실에 용대와 명화의 사랑도 흔들린다.

그 여자,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지 않았냐. 비자도 없고 돈도 없고 갈 데 없고 병드니까 너한테 붙은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헤어져라. 용대는 그들에게 바보 취급당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용대는 점차 이를 믿기 시작했다. 용대는 아픈 명화에게 욕설을 퍼붓고 목덜미를 잡는 등 폭력을 가한다. 가난조차 극복하는 사랑으로 하나 된 두 사람은 가난 때문에 이를 잃는다. 결국, 암이 악화된 명화는 반지하 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테이프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저절로 뒷면으로 넘어간다. 짧은 사이. 명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쩌리 위안 마(离这里远吗)?”
“여기서 멉니까?”

용대는 택시를 운전하면서 죽은 명화가 녹음한 중국어 테이프를 듣는다. 중국에 같이 갈까 하는 용대의 말에 들뜬 명화는 중국어를 가르쳐주겠다며 테이프를 녹음했다. 이제는 없는 명화의 목소리를 들으며 용대는 읊조린다. 우리 사회에서 용대와 명화의 자리는 어디일까. ‘여기서 머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리가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소비를 통해 현실에서 도피해도, 결국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과연 제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용대와 명화는 계급으로 정해지는 자리가 아닌, 진짜 우리의 자리는 어디인지 묻는다.

글 조서우 기자
mulkong@yonsei.ac.kr

사진 홍예진 기자
yeppeujin@yonsei.ac.kr

조서우 기자  mulk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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