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부터 작가까지, 만능 배우 신현준을 만나다

배우 인생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 하나를 갖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수많은 대표 캐릭터로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가 있다. 바로 우리대학교 동문 배우 신현준(체교·87)이다. 『천국의 계단』, 『장군의 아들』, 『가문의 영광』 시리즈, 『맨발의 기봉이』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인 신현준 배우를 만나봤다.

 

 

 

Q. 배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영화를 많이 접했다. 학창 시절 막연하게 영화배우를 꿈꾸다 우리대학교 진학 후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

 

Q.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듣고 싶다.
A. 배우는 대중이 캐릭터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작품 선정 기준으로 삼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이다. 캐릭터의 감정과 생각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하려 한다. 주로 강렬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Q. 캐릭터를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직접 캐릭터가 돼보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캐릭터에 접근한다. 캐릭터의 생명력을 위해 캐릭터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책, 영화, 인터뷰 같은 간접적인 경험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무기징역 수감자 캐릭터를 만나면 무기수가 쓴 소설과 무기수를 다룬 영화를 다 본다. 여러 명의 무기수를 만나 인터뷰도 한다.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어 나간다. 최대한 관객에게 캐릭터를 고스란히 전달하려 한다.

 

Q. 촬영 현장에서 연기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A. 현장은 연습과 다르다. 현장에서는 수백 명이 넘는 스태프, 상대 배우 앞에서 연기한다. 현장에서 몰입해 섬세하게 연기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 내가 캐릭터와 동화돼있는지’, ‘상대방의 연기를 느끼고 있는지’ 신경 써야 한다. 아무리 연습하고 가도 현장 리허설이나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많다. 이런 변수로 인해 만들어지는 순간의 감정들이 배우가 가질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다.

 

Q. 한 캐릭터에 몰입해 촬영하고 나면 한동안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배우들이 많다고 들었다. 실제 그런 경험이 있나. 
A. 캐릭터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중요하고 힘들다. 특히 슬픔을 간직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영화 『마지막 선물』과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가장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마지막 선물』에서는 딸에게 간을 이식해주고 죽는 역할을 맡았다. 죽는 장면을 촬영한 이후에도 한동안 슬픈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Q. 빠져나오기 힘든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나.
A. 배우의 일에는 많은 것이 포함돼있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면서 자기 관리에도 능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배우와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배역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자신과의 싸움이다. 다음 영화 촬영에 임하려면 다시 새하얀 도화지가 돼야 한다. 이전 배역을 잊기 위해 운동하거나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Q. 가장 인상 깊은 작품과 이유가 무엇인가.
A.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새 캐릭터를 만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배우게 된다. 배우는 항상 새로운 사람을 연기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성장한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느끼는 점이 많다. 그런 경험을 통해 발전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Q. 작품에 대한 평가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인가. 기대했던 반응을 얻지 못했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다.
A. 사람들의 반응에 얽매이는 편은 아니다. 모든 영화가 관객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대신 영화를 촬영하면서 ‘최선을 다했는가’,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었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배우고,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Q.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역 배우로 활동하면서 배우지망생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A. 연기를 가르치는 일에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와 학생들을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젊은 시절, 내게 연기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연기 지망생들에게 현장에서 느낀 시행착오와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현직배우로 활동하고 있을 때 인덕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제자들과 학과에 대한 애정이 많다. 가장 멋진 배우는 가장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연기를 잘하기보다 인성이 좋기를 바란다. 누군가 제자들의 인성을 칭찬할 때 가장 행복하다.

 

Q. 직접 연기를 하는 것과 연기를 가르치는 일은 분명 다를 것 같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듣고 싶다.
A.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특히 제자들을 통해서 배운다. 제자들을 잘 알수록 그들을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제자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추면서 요즘 세대의 생각과 감성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Q. 지난 2012년 책 『배우, 연기를 훔쳐라』를 발간했다. 책을 낸 계기가 궁금하다.
A. 영화 제작자로 오디션 심사에 참여한 적 있다. 연기를 잘했던 두 학생을 캐스팅했다. 그런데 현장 경험이 없어 본인들의 역할만 연습해 현장에 왔다. 현장에서 백 명이 넘는 스태프와 장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앞에 서자 주눅 들어 역량을 펼치지 못하더라. 오디션에서 보여줬던 기량의 반의반도 못 했다. 그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연기 지망생들에게 현장 연기는 연습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고 싶었다.

 

Q. 마지막으로 연세대 후배들과 배우지망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연세인 후배들에게는 이미 멋진 사람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후배들은 연세인이기에 멋진 사람이다. 우리대학교에는 멋진 선배들, 후배들이 많다.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여러분의 미래도 기대된다. 배우지망생 후배들에게는 연기자가 ‘기다리는’ 직업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기다리지 말고, 기회를 직접 찾아 나서고 부딪쳐보길 바란다. 또, 앞에서 말했듯 좋은 인성을 가져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연기의 시작이다.

 

신현준 배우는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순간을 기억하고, 성적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 교수로, 작가로, 제작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찾는 사람, 배우 신현준이다.

 

 

글 조서우 기자 
mulkong@yonsei.ac.kr

<자료사진 HJ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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