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퇴임교수 (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의기억연대(아래 정의연)와 관련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마침내 검찰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 문제는 정의연이라는 일개 시민운동단체의 부패에 대한 의혹만이 아닌 민족사적 시민운동의 성격과 나아가 우리나라 시민운동 역사에 커다란 분기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일단 정의연 사건은 현재까지의 의혹만으로도 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문제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정의연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로부터 직접 비판을 받았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한 분으로부터, 또 이번은 이용수 할머니로부터다. 할머니들은 일제의 비인도적 폭악성에 의해 그리고 정의연에 의해서 다시 배신을 당했다. 이들은 초·중등 학생의 코 묻은 기부금마저 회계에서 누락시키면서 단순 실수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부실회계가 37억 원이 넘는다고 보도되고 있다.

정의연 논란은 이미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고 특히 일본 언론은 초미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의 한·일관계의 중요 걸림돌의 하나가 바로 위안부 문제였고 이 문제 핵심 운동단체가 정의연이었다. 세계에서 인도주의적 보편적 가치를 외치던 집단이 기초부터 부실했다. 부당한 군국주의 권력의 인권 침탈을 규탄하고 민족 정의를 외치던 세계 최장 시위 기록도 허탈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여 년간 투쟁해 온 역사와 정신은 받들어져야 한다. 정의연 집행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역사적 진실이 잊혀서는 안 된다. 일제 만행에 대한 규탄은 일본이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사과했다면 일찍이 중단했을 수도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알량한 위로금이 아니라 진실한 사과이다. 당장은 정의연 문제로 참담하게 됐지만 정의와 평화를 위한 행진은 대를 이어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정의연 사태는 민족사적 문제 이외에도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번 사태는 정의연에 한정된 사건이 아닐뿐더러 시민운동의 구조적 특성에서도 기인한다.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정치권력과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정의연의 전 지도자가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면서 이 사태는 더욱 논란의 대상이 됐다.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그야말로 시민운동의 별들이 모인 집단이다. 시민운동가가 정치인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없지만 이들 모두가 정치로 몰려든다면 진정한 시민운동가는 멸종되고 말 것이다. 시민운동가나 단체가 정치권력과 연계되는 순간 시민운동으로서의 순수성은 상실된다. 본인은 국회에 들어가서 시민운동을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시민운동은 정부와는 독립, 자발적으로 정부를 감시할 목적으로 조직화된 결사체이다.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를 비정부조직(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단체들은 시민사회가 잘 발달돼 있을수록 더욱 활발하다. 그래서 정부는 권력을 남용할 기회가 적어지고 그 사회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 운동이 절정에 이르는 1987년에 학생들과 시민운동단체 그리고 시민들이 하나가 돼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시민운동단체들은 본격적으로 확장됐으며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며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과정에도 참여하게 됐다.

시민운동단체의 정치참여가 확대되면서 시민운동은 꽃을 피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되기 전 ‘아름다운가게’ 운영 시절 우리 대학의 한 특강에서 ‘NGO가 한국에서 제4부 언론에 이어 제5부가 됐다’고 하면서 학생들의 시민운동 참여를 독려할 정도였다. 소위 시민운동의 권력화가 이뤄진 것이다. 시민운동 지도자나 단체가 정치권력에 참여하거나 직접 권력을 장악할 경우 바로 시민운동과는 단절해야 한다.

우리의 시민운동의 또 다른 문제는 서로 다른 시민단체들이 각자 영역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연대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사회운동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치영역에까지 연합한다. 이것이 서초동 촛불 집회와 광화문 태극기 집회로 국민을 양 진영으로 갈라놓는 현상을 낳은 것이다. 양 진영은 진실과 관계없이 자기 진영의 승리만을 목표로 한다.

정의연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진영논리 대결을 펼치려는 시도가 있었다. 친일세력이 민족 정의를 실천하는 시민단체를 음해한다는 논리다. 민족을 대변하려면 스스로 정의로워야 한다. 회계 부정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기업으로부터 기금을 걷으면서, 패거리 정치를 하면서 시민운동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가? 우리도 평생을 시민운동에 전념하며 시민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을 받는 시민운동가를 만날 수 있을까? 이제 시민운동단체들이 거듭나야 할 때다.
 

*기고자의 의견일 뿐 춘추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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