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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고 ‘빽’없으면 소송도 못 거는 세상이기기 어려운 공익소송, 지면 돈까지 내야 해
  • 민소정 기자
  • 승인 2020.05.24 19:36
  • 호수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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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호주제 폐지 등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 뒤에는 공익소송이 있다. 우리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제기하는 공익소송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법제 개선의 시발점이 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공익소송의 입지는 좁다.

▶▶지난 2019년 12월 9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현장검증에서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가 언론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날 현장검증에서 시·청각 장애인 당사자와 판사들은 스마트안경 등 보조장비를 착용하고 영화 「밀정」을 관람했다.

사회적 약자 보호하고
권력에 제동 거는 공익소송

공익소송은 장애인, 난민, 여성 등 소수자를 비롯한 다수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행정기관의 과실, 법원의 부당한 판결, 기업의 잘못된 행위 등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공익소송은 피해자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선을 도모한다. 단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종구 교수는 “공익소송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사회문제를 공론화하고 여론을 형성한다”며 “이를 통해 법제 자체의 개선 등 사회 변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공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소송은 전부 공익소송에 해당한다. 민사소송부터 행정소송, 헌법소원까지 소송의 종류와 무관하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모두 공익소송이 될 수 있다.

공익소송의 대표적 사례는 시·청각 장애인이 국내 주요 영화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포함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를 공급한다. 그러나 배리어프리 영화는 상영횟수가 한 달에 1~2번인 데다 관객이 많이 찾지 않는 시간대에 상영된다.

시·청각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을 보장하고자 지난 2016년 시·청각 장애인 4명과 공익변호사 단체가 대형 영화관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 기획에 참여한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4명의 시·청각 장애인이 대표로 제기한 소송이지만, 승소했을 때 편의는 모든 장애인에게 돌아간다”며 공익소송의 의의를 역설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보공개청구 소송도 공익소송에 해당한다. 국민은 지자체 및 정부 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는데, 이를 거부당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사무총장 송상교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 소송은 국민 다수의 알 권리를 위해 인권·시민단체에서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정보공개청구 소송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8년 참여연대에서 사법 농단과 관련해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을 공개하라며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이다.

원고 승소 어려운 공익소송…
법정에서도 재연되는 기울어진 운동장

그러나 원고가 공익소송에서 승소하긴 어렵다. 송 변호사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공익변호사의 경험상 일반소송보다 승소가 쉽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공익소송의 원고는 주로 권리를 침해당한 사회적 약자이고, 공익변호사단체가 이들을 대변한다. 한편, 피고는 국가나 기업 등 거대 조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자 대 약자의 구도에서 발생하는 힘의 불균형이 원고의 승소를 어렵게 만든다.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사회적 약자와 대리인인 공익변호사는 가장 먼저 금전 문제를 마주한다. 소송을 제기할 때 원고는 변호사 수임료 외에 인지대 등 각종 비용을 부담한다. 문제는 사회적 약자 혹은 영세한 시민단체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심급이 올라가면 인지대 등 법원에 지불하는 비용이 증가한다”며 “공익변호사가 무료로 변론해도 이 비용이 부담돼 항소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원고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공익소송에서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민사소송 등에서 원고는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일반적으로 국가와 기업 등 거대 조직 또는 전문가집단에 편재돼있다. 또 사실관계가 복잡해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부조리를 증명하기 어렵다. 이 교수는 “특히 제조물 책임 등과 같은 소비자 소송은 전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피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이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대표적 예시다.

공익소송이 사회에서 굳어진 인식과 법제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 역시 난관 중 하나다. 송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이미 여러 번 패소한 사안에 대해 소송하는 경우가 많아 승소가 어렵다”며 “그러나 낙태죄 폐지, 양심적 병역 거부 사례처럼 그 자체로 사회적 공론화가 되기 때문에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익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패소자부담에
움츠러드는 공익소송

공익소송은 사회구성원 일부가 제기하지만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일반소송과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패소자부담주의는 공익소송을 움츠러들게 한다. 「민사소송법」 제98조 ‘소송비용부담의 원칙’에 따르면, 패소자는 본인의 소송비용에 더해 승소자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한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소송비용은 경제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와 시민단체에 큰 부담이다.

지난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지적장애인들이 수년간 무보수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 구출됐다. 2015년 피해자들은 사업장 감독 의무 불이행 등으로 신안군을 고발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신안군은 약 697만 원에 달하는 소송비용을 피해자들에게 청구했다. 송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가 소송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할 때도 국가가 기계적으로 비용을 청구한다”며 “이는 공익소송을 제기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패소자부담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소송 제기를 어렵게 만들어 공익소송을 위축시킨다. 이에 공익소송에 한해 패소자부담을 감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주언 변호사는 “대부분의 공익소송에서 소수의 사회적 약자와 공익변호사단체가 대형 로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며 “패소할 경우 소수의 약자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지만, 승소하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편의를 누린다”고 말했다. 공익소송 승소로 인한 편의는 모두가 누리지만, 패소의 부담은 소수 원고가 감당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별도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익소송의 요건을 규정하고, 이를 충족하는 공익소송에 한해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의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편면(片面)적 패소자부담주의’*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해외에서는 공익소송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소송을 위한 제도가 없다”고 비판했다. 일례로 미국은 공익소송에 대해서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를 적용한다. 영국, 캐나다 법원에서는 법원 재량으로 공익소송 원고의 패소자부담을 면제하는 명령제도가 있다.

이에 대해 민변을 비롯한 법조계 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하는 등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그 결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 개혁위원회가 지난 2월 관련 법령을 개선해 공익소송 비용부담 감면을 권고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법무부·법원 차원의 움직임은 없다. 개혁위원회 차원의 움직임을 두고 송 변호사는 “처음으로 국가기관에서 공익소송 활성화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은 권리를 침해당하기 쉬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돈 걱정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기조차 어려운 이들에게 권리는 먼 이야기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공익소송 제도를 개선해 사회적 약자의 재판 청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자료사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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