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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0번째로 찾아온 봄을 맞이하며5·18과 ‘서울의 봄’을 기억하는 사람들
  • 김수영 이현진 기자
  • 승인 2020.05.17 22:48
  • 호수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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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봄, 서울은 민주화를 향한 희망에 들떠 있었다. 대통령긴급조치(아래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조치 위반자들이 풀려나며 유신 정권의 압박으로부터 숨통을 틔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군부의 비상계엄 조치가 서서히 죄어 오는 폭풍전야였다. ‘서울의 봄’으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1980년의 풍경과 연세를 되짚어본다.

▶▶ ‘1980년과 2020년의 연세’ 민주화를 염원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던 1980년과는 달리 2020년의 정문은 적막하다.

「연세춘추」로 살펴보는 ‘백양로의 봄’

박정희 정권 독재 시기, 우리대학교에서도 민주화 및 교내소요사태로 인해 수많은 교수가 해임되고 학생들이 제적됐다. 그러다 지난 1979년 12월 7일 긴급조치가 해제됐다. 이후 우리대학교 교무처는 11일 교무위원회를 열어 해임 교수와 제적 학생의 복교에 합의해 11명의 교수와 56명의 학생이 교정으로 돌아왔다. 또한 학원 민주화와 자율화를 목표로 한 학칙 개정도 검토됐다. 백양로에 바야흐로 ‘서울의 봄’이 찾아온 것이다. <관련기사 866호 1면 ‘긴급조치 위반 교수 학생 학교로 다시 불러들여’>

당시 복직된 故김찬국 명예교수(우리대학교·구약사)는 우리신문사가 주최한 복직교수 간담회를 통해 “잠깐 다녀오자는 말로 6년을 배회하다 이제야 그때 그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일제시대에 여러 선생님들이 해직된 이후 우리대학교의 두 번째 수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868호 2면 ‘역사적 불행 되풀이 말아야’>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학원의 민주화는 단지 어떤 특정체제에 대한 단순한 반발의 차원은 결코 아니다. 앞으로의 더 큰,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을 다지는 작업인 것이다.”
「연세춘추」 867호 4면 ‘학원 민주화의 문제와 나아갈 길’ 中


우리신문사 역시 이전보다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지난 1980년 1월 7일에는 ‘긴급조치가 풀리기까지 알리지 못했던 학생소요 일지’라는 기사를 냈다. 유신 시대의 외압으로 말할 수 없었던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의거를 소개한 기사였다. 이어 정부에서 임명해 총학생회 격으로 활동하던 학도호국단의 폐지가 거론됨에 따라 학생사회 속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높아졌다.

지난 1980년 2월 26일 우리신문사가 1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75.7%가 총학생회장 직선제를 요구하고 81.9%가 정당 가입 등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학생들은 민주화를 외쳤다. <관련기사 제867호 4면 ‘학생들이 바라는 민주화’> 그리고 4월 17일과 29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국 공개 토론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5월 6일부터 10일까지를 ‘민주화 대행진’ 기간으로 지정하고 캠퍼스 내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등 전운이 감돌았다. <관련기사 875호 1면 ‘철야농성하며 민주화위한 평화적 시위’>

▶▶ 1980년 서울의 봄,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노천극장에 모여 민주화를 외쳤다.

40년 전, 민주화 열기로 가득했던 서울

10·26사태로 유신체제가 종결되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전국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한 이 시기를 일컬어 ‘서울의 봄’이라고 부른다. 한국정치사회연구소 정주신 소장은 “18년간 장기 집권한 박정희의 죽음은 독재자 타도를 의미한다”며 “국민들은 민주화를 쟁취할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국민의 기대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 장악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생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군부 세력의 득세를 막기 위한 전국의 학생 세력과 신군부 사이 대립이 본격화한 것이다. 서울에서는 우리대학교·고려대·서울대 등 대학생 10만여 명이 5월 15일 서울역에 집결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철야농성까지는 이어가지 못하고 학교로 되돌아갔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 사건이다. 정 소장은 “당시 신군부 세력이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이미 서울역을 포위하고 있었다”며 “학생들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군부에 쿠데타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후 민주화 열기를 억누르고 정국을 장악할 빌미를 만들기 위해 5월 17일 신군부 정권이 비상계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국 단위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정 소장은 “5월 18일 군인들이 전남대 캠퍼스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신군부에 분노한 학생들이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중심으로 대학로와 전남도청에 집결하며 5·18 민주화 운동이 발발했다.

‘서울의 봄’은 1980년 5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기는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 소장은 당시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대학생들에게서 그 의미를 찾았다. 정 소장은 “학생들의 시위를 따로 떼서 좁게 해석해선 안 된다”며 “당시 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한국 사회 전체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40주년을 기리는 움직임

매해 5월 18일이 다가올 때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연세민주동문회(아래 민주동문회) ▲연세대학교 518 광주기행 기획단 ▲총학생회(아래 총학) 등 학내외 여러 단체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광주MBC와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토크멘터리’ 「오월행」을 함께했다. 배우 김의성씨와 표창원 의원, 심용환 작가가 각각 광주, 서울, 부산, 마산을 여행하며 민주화 움직임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촬영의 일환으로 지난 4일, 이한열기념관 이경란 관장과 표창원 의원은 우리대학교 캠퍼스에서 이한열 열사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둘러봤다.

한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예정됐던 행사에 제동이 걸렸다. 민주동문회에서는 매년 5월 둘째 주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을 정비한다. 그러나 올해는 진행되지 않았다. 민주동문회 관계자는 “공식 행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취소했다”며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현장 방문을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광주기행 기획단’은 우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5월 18일 전후로 광주기행을 진행해왔다. 지난 2019년 8회 기행에서 참가자들은 1박 2일간 5·18 민주묘지 등을 방문하고 민주주의에 대해 논했다. 그러나 올해는 진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총학생회장 권순주(기계·16)씨 역시 “매년 진행하던 광주 묘역 방문 등의 행사가 있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짧았던 서울의 봄이 마흔 돌을 맞았다. 코로나19로 사회 전체가 위축된 상황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민주 열사들의 투혼과 연세의 민주화 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유신 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특별조치. 조치 위반자는 체포·구금 등을 통해 기본권을 침해받을 수 있었다.
**전국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계엄사령부가 국방부 장관의 통제에서 벗어나 행정, 입법, 사법을 사실상 장악하게 됨으로써 5·17 내란의 핵심적인 사건이 됨.

글 김수영 기자
bodo_inssa@yonsei.ac.kr
이현진 기자
bodo_wooah@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사진 제공 연세대학교 박물관>

김수영 이현진 기자  bodo_inss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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