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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③]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새로운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법, '생활동반자법'
  • 조재호 기자
  • 승인 2020.05.17 22:31
  • 호수 57
  • 댓글 0

최근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겨나고 있다. 1인 가족부터 시작해 사랑 혹은 친분에 의한 동거,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금전적 목적의 룸메이트 등 각자 환경에 맞게 가족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처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법 혹은 위급 상황 앞에서 한순간에 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과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반영해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름도 생소한 생활동반자법, 너는 누구냐

한국 사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은 아직 생소하다. 일각에서는 법안의 내용을 오해해 생활동반자법이 ‘동성애자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가족 형태에서 파생된 더 많은 형태의 가족을 수용하고 보호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개인이 혈연과 혼인의 관계를 넘어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동반자를 지정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면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이성 혹은 동성 간의 관계도 기존 가족 형태에서와 같이 법적으로 보호받고, 권리와 그에 따른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일례로 현재는 법적으로 관련이 없는 동거인 혹은 룸메이트는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자격이 없다. 동반자가 사망할 위험에 처한다 해도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이렇게 다양한 가족 형태의 구성원이 겪는 어려움과 법적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한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족 구성원의 성별이나 동거 여부 등에 초점을 두지 않고, 서로 돌보며 함께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자발적으로 맺고 지키는지에 주목한다. 과거의 전통적 가족의식에서 벗어나,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정의하고, 서로를 지킬 수 있는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 생활동반자법의 목표다.

서구에서는 보호받는, 한국에서는 외면당하는

아직 한국에서는 그 인식조차 불명확한 상태지만, 이미 여러 서구 국가들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을 인정하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다. 지난 1989년, 덴마크는 세계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인 ‘파트너십 등록제’를 정식 법률로 제정했다. ‘시민 결합’이란 용어로 더 잘 알려진 이 제도는 성별 무관, 성인 2인이 파트너로 등록하면 결혼 수준에 따르는 법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도록 규정했다. 근대 최초의 결혼 대체 제도가 성립된 것이다.

1년 후, 프랑스 또한 덴마크와 유사한 시민결합제도인 ‘팍스(PActe Civil de Solidarité, PACS)’를 제정했다. 팍스를 통해 파트너로 등록된 사람은 배우자로서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지며, 세금 공제 혜택 역시 결혼과 큰 차이가 없다. 또한 팍스를 맺은 이들은 증여·상속·연금 등에서 법적으로 덜 묶여있어 기존의 부부관계에서보다 관계 해지 절차가 더욱 수월하다.

일본에서도 생활동반자법 제정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지난 2015년 도쿄 시부야구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발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법률은 혈연과 혼인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생활공동체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파트너십 증명제도’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이를 보완하고자 한 시도였다고 평가받았다. 비록 법률의 하위에 속하는 조례로 완전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조례가 발표된 해당 구 내에서는 가족 주택 입주, 수술 동의서 작성 등의 자격을 부여받게 됐다.

현재 제정된 세계 여러 나라의 가족 보장 법률의 명칭과 혜택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이 법률들은 다양한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을 ‘가족’ 혹은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 포용하고자 한다는 데 맥을 같이 한다.

한국 생활동반자법, 앞으로의 전망은

지난 2005년 호주제 폐지 후 국내 여성 단체들은 민법 개정안에 가족 범위 규정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법 개정안 제779조(가족의 범위)는 배우자와 직계혈족, 형제자매와 그들의 배우자까지 가족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 포함되지 않는 가족 형태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2014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법안의 실제 제정을 위해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 발의를 준비했다. 법안의 핵심은 다른 국가의 법률과 비슷하게,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 가족 구성원들이 기존 가족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법률안 발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법률 제정을 꾀하려는 불씨는 건재하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과 정의당은 일본 도쿄의 파트너십 법안과 유사한 서울특별시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 제정을 공동 공약으로 발표했다. 또한 2017년에는 동반자 등록법을 촉구하는 청와대의 국민청원이 약 6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가족’이란 공동체의 형태 변화는 사회 변화와 발전에 따라 수반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가족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족 형태들은 아직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이다’란 인식이 형성된다면, 모든 형태의 가족 구성원이 불안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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