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법 제안자 황두영 작가에게 묻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감소하고 독거노인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 사회의 풍경은 달라지고 있다. 지난 2018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29.3%를 차지하며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국민 다수가 법적 가족을 구성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다수 법 제도는 혈연·혼인 관계를 기준으로 설계돼있어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돌봄 공백은 커지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진선미 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한 황두영 작가는 생활동반자법의 명칭과 내용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생활동반자법이 ‘가족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he Y』는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역설한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출간하며 관련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는 황 작가를 만나봤다.

 

▶▶황두영 작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안한다.

 

Q.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2000년대 초반, 팍스(PACS)법이 국내에 소개됐다. 당시 내용을 접하고 패러다임을 깨는 법인 것 같아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진선미 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호주제 폐지를 변론하기도 했던 진 의원은 현재의 가족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인도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살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는데, 국회의원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 신고를 해야 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가족관계도 공개된다. 진 의원의 서류에 남자친구가 올라있지 않자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이에 수세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다양한 가족 담론을 법적으로 구체화하는 기회로 삼자는 생각에 생활동반자법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생활동반자법이 현 한국 가족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정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Q. 생활동반자법은 무엇인가. 

A. 두 성인이 서로 돌보면서 함께 살겠다고 약속한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라고 한다. 성별과 성애적 관계 여부에 상관없이 서로 돌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국가에 생활동반자 관계를 등록하면 함께 사는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과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이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성립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법이기도 하다. 

 

Q. 생활동반자 관계의 요건에 대한 논쟁이 있다. ‘두 명’의 ‘성인’만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A. 물론 가족이 세 명 이상일 수도 있고, 다양한 공동체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그러나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땐 최소단위부터 시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남용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임대주택 입주권을 부여하는 등 혜택을 보장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결혼제도를 통해 이성‧성애적 관계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이에 준하는 혜택을 두 명의 생활동반자 관계에 보장하더라도 차별과 남용의 소지가 적다고 봤다. 세 명 이상의 공동체를 법적으로 가족과 유사하게 규정하는 방법에 대한 개인적 고민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현행 민법은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법률 주체를 성인에 한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성인의 기준이 되는 나이가 높다고 생각하나, 민법이라는 큰 틀을 생활동반자법이 넘어설 순 없다고 봤다. 생활동반자 관계에는 서로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수도 있다. 현행 민법상으로는 이러한 법적 책임을 청소년에게 묻기 힘들다. 

 

Q. 기존의 혼인 관계보다 돌봄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생활동반자법의 취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법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기존의 결혼제도로 가족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돌봄 공백이 커지고 있다.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나 결혼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령 사회가 되면서 사별‧이혼 등으로 결혼제도 바깥에서 살아야 하는 기간이 보편적으로 늘고 있다. 결혼할 의지가 있더라도 경제적 이유나 젠더 간 입장 차이 때문에 흔쾌히 결혼할 수 없는 환경이 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일생을 걸쳐 혼인 밖에서 살아야 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1인 가구가 폭증하고 있다. 사별‧이혼한 1인 가구나 사회경제적 이유로 결혼하기 힘든 사람에게 ‘결혼 아니면 혼자’라는 선택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돌봄 공백을 줄일 수 있도록, 이 사람들이 가족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서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것이다. 

 

Q.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1인 가구들이 서로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돌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 아닌가. 

A.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다. 정부로서도 1인 가구를 돌보는 게 부담스럽다. 우선 1인 가구를 돌보는 게 다인 가구보다 재정 부담이 크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만 봐도 1인 가구에 40만 원을 지원하는 데 비해 2인 가구에는 60만 원을 지원한다. 1인 가구에 생활비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10년 사이에 사회복지재정이 2.5배 증가했다. 노인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이들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고독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고독사를 막기 위해 요구르트 배달원에게 집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등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하면 된다. 그러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고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그렇다고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 살게 할 순 없으니,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마음 맞는 사람과 돌보며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와 국민은 ‘윈윈’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고, 생활동반자 관계는 이에 대한 대가로 사회복지 혜택과 세제 혜택을 받게 된다. 이처럼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게 하는 정책은 드물다. 

 

Q. 그런 의미에서 저서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을 보수적인 법이라고 표현했다. 기존의 사회시스템에 더 많은 사람을 통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일부 보수 세력은 생활동반자법이 동성애자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며 제정에 반대한다. 이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안을 만들 때 동성애자들만 도려내듯이 배제할 수는 없다. 생활동반자법은 다양한 연령과 맥락을 가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법이다. 많은 사람이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면, 동성애 혐오 정도는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성애자 커플은 결혼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꿩 대신 닭’처럼 생활동반자법을 이용하려는 면이 크다. 실제로 생활동반자법 초안이 공개됐을 때 일부 성 소수자 활동가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혼인 관계가 갖는 권리 전부를 생활동반자 관계에 부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생활동반자법은 개개인의 성별과 성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서로 돌보겠다는 의지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동성혼과는 다른 맥락의 제도다. 동성혼에 대한 논의는 그것대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Q. 그렇다면 생활동반자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A.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굳이 한 집단만 꼽으라면 노인층인 것 같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노인들에게 사회복지 혜택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문제다. 이는 노인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자식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자니 성인으로서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혼자 사시게 하자니 매정한 자식이 되는 것 같다는 고민을 많은 사람이 하고 있다. 그럴 때 친구들끼리 “너희 어머니랑 우리 어머니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데,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독거노인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남편이 먼저 사망하면 혼자 말년을 보내는 여성이 많다. 상당수의 여성 노인들은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로망을 실제로 공유하고 있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이 로망을 건드린 TV 프로그램이었다. 평균 나이 60세인 여성 배우들이 전원주택에서 함께 살며 맛있는 음식도 해 먹고 텃밭도 가꾸는 내용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토요일 오전에 방영하며 주 시청자를 노인층으로 삼았는데 최고시청률 10%를 기록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면 평범한 사람들도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처럼 살 수 있다. 

 

Q.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권리를 보장한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권리를 꼽는다면.

A. 주거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주거공간이 있어야 동거 관계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거정책에는 가족 정책이 반영돼있다. 법외 가족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 신청을 할 수 없고 청약 가점도 받지 못한다. 부부가 아니면 보금자리 대출이나 디딤돌 대출 같은 금리가 낮은 전세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 생활동반자 관계도 동등한 주거정책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법적 가족이 아플 경우에만 돌봄 휴직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데, 생활동반자 관계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생활동반자가 아프거나 생활동반자의 아이를 돌봐야 할 때 등 혈연관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도 돌봄 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한다. 

 

Q.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면 혼인율과 출산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생활동반자법이 없는 현 상황에서도 출산율은 하락세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모든 나라와 시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서 더 떨어질 수 있으므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기존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획기적인 대안을 추진해야 한다. 

물론 생활동반자법이 출산율 상승의 만능키는 아니다. 프랑스는 팍스와 함께 강력한 반차별 정책을 시행해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철저히 금지했고, 가족 환경에 상관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보육·교육정책도 강화했다. 우리나라도 생활동반자법 제정과 함께 강력한 반차별 정책을 시행해야 출산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Q. 진선미 의원이 의지를 갖고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발의조차 못 했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A. 당연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에도 동거 가구에 대한 차별 해소 정책이 포함돼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도 현재의 결혼제도만으로는 한국 사회를 재생산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에도 재생산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시장과 노동력이 재생산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제도 개혁’은 앞으로 5~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될 것이다.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시장의 입장에서도 필요한 법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제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다양성과 기본권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인지가 마지막 변수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사진 홍예진 기자
yeppeuj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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