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빈 매거진부장 (영문/정외·18)

내 이름 석 자를 달고 나가는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은 퍽 오랜만이다. ‘새삼스러운 설렘’이라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지난 해 봄, 첫 기사를 쓰던 순간의 느낌이 들 정도다. 글을 써 내려가기 전 제목부터 고민하는 사적인 버릇도 어색한 듯 익숙하다.

「깊은 우리 젊은 날」. 기사를 쓰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너무도 익숙해져 지루함마저 느끼던 때 인터뷰이로 만난 밴드의 노래 제목이다. 남다른 관심이 있던 인터뷰이도 아니었고, 노래도 이들의 대표곡이란 동료 기자의 말에 한 번 흘려들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로부터 꽤 오래 지난 지금도 저 제목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고, 이 글의 제목을 고민하던 와중에도 제일 먼저 떠올랐다. 대체 왜일까.

아쉽지만 내겐 그 이유를 극적으로 포장할 이야깃거리조차 없다. 그저, ‘나도 모르는 새에 중얼거리거나 되뇌었나보다’란 어림을 해볼 뿐이다. 하지만 이 글을 구상하며, 나는 저 네 어절의 문구가 그간 나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저만큼 이곳에서의 2년을 완벽히 담아낼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지난 2년 동안,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내게 매 순간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The Y』 기자’의 자격으로 우리대학교가 속한 ‘신촌’이란 공간의 모습과 정체성을 오롯이, 다채롭게 담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은 그 깊은 날들의 자양분이었다. 기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연희동의 재개발 예정 구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취재했던 기억, 기자가 아니었더라면 한 번도 숙고해보지 않았을 주제 속으로 파고들며 스스로의 얕은 배움을 실감했던 순간은 내 맘 속의 ‘깊은 기억’들로 자리했다.

그리고 그 날들은 나 스스로가 ‘나’란 존재가 아닌 ‘우리’의 일원이었기에 진정 가능했다. 같은 목표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여정은 ‘포기할 수 없다’란 근성과 묵묵함을 갖겠단 결심을 낳았다. 연세 사회와 그 밖에서 나의 글들이 ‘읽히고 있다’는 소식을 하나라도 접하는 순간의 희열도 날 외롭지 않게 해줬다. 그렇게 서서히 ‘우리’의 일부가 된 나는, 내가 여전히 ‘나’였다면 분명 돌아섰을 수많은 벽들 앞에서 뒤돌아서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겐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이제는 조금 먼 곳에서 나를 지켜보며 거대한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글을 읽은 수많은 무명의 독자들이 형용할 수 없이 애틋하고 귀중하다.

이제 남은 단어는 ‘젊은 날’이다. 나는 스물두 살이다. 모두가 “젊다”고 입을 모을 나이다.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젊음’이란 물리적 기간 속에서 나는 분명 독특한 젊은 날을 보냈다. 숱한 밤을 글과 이야기로 가득 찬 치열한 고민으로 보내는 청년이 흔하겠는가. 그 고행을 통해 나는 진정 ‘젊을’ 수 있었다. 어려운 시간 속의 노력이 늘 자의에 가득 차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쉼 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내 속의 말과 생각을 제련한 순간들 덕분에 나는 젊고 생생한 마음을 품은 ‘젊은이’로 살 수 있었다.

매주 실리는 다른 이들의 십계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십계명을 쓸 때,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란 막연한 상상을 하곤 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오랫동안 열심히 고민하고 다듬어 멋진 글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다졌다. 그러나 막상 그 생각이 현실이 된 지금은, 별다른 소회가 없다. 오랜 고민으로 짜낸 글감도 아니다.

이 어색한 무덤덤함을 가지게 된 것은, 나도 모르는 새 내 속에 박힌 ‘깊은 우리 젊은 날’의 존재처럼 이곳에서의 시간 또한 내게 적당한 온도로 스며들었기 때문일까. 아직 여기를 떠난 뒤의 금요일 밤이 그려지지 않고, 이곳에서의 마지막 글을 생각보다 덤덤히 쓰고 있는 내 모습은 그 미지근함의 방증일 테다.

‘깊은 우리 젊은 날’을 접한 순간은 내게 강렬하지 않았음에도 점차 달궈져 내 마음과 그간의 기억을 매듭 짓는 문구가 됐다. 기자 생활을 마무리할 날을 목전에 둔 지금의 무덤덤함도 언젠간 큰 진폭으로 내 맘 속에 불쑥 찾아와, 깊은 기억과 함께했음에 대한 감사, 진정으로 젊을 수 있었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뜨거운 추억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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