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너는 회피형 인간이야. 너 같은 사람은 상처받아야 해’ KBS joy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등장한 가스라이팅 사례다. 가스라이팅은 교묘히 타인의 심리를 자극해 한 사람을 통제한다.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가스라이팅에 노출된다.

 

 

 

가스등을 조작하다,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은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가스라이팅은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됐다.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며 아내를 탓한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 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상황과 심리를 교묘히 조작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학대 행위를 의미한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정신적 학대에 노출돼 스스로를 의심하고 판단력을 잃는다. 

가스라이팅은 주로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한다”며 “가스라이팅의 본질은 권력과 통제”라고 말했다. 잡지 『VOGUE』 홍국화 에디터는 「당신을 조종하는 ‘가스라이팅’」에서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행동 단계는 ▲1단계 관계 형성 ▲2단계 기억 왜곡 ▲3단계 미니마이징 ▲4단계 무시 등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후, 거짓말을 통해 피해자의 기억을 왜곡하거나 피해자가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무시하도록 막는다.  가해자는 누구보다 자신이 피해자를 더 잘 안다며 피해자가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무시하도록 막는다.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면서 가해자에 종속된다. 피해자는 신체적 폭력을 당해도 ‘난 맞아도 되는 사람’ 혹은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때로는 가해자의 불합리한 행위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개인 대 개인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단체가 개인의 심리를 조작하기도 한다. 종교단체에서 사람의 심리를 조작하는 것 역시 가스라이팅에 해당한다. 신천지의 실체를 고발한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의 저자들은 신천지 교육이라는 조작된 상황 아래 계속해서 스스로를 의심하며 판단력을 잃게 됐다고 밝혔다.

 

가스라이팅의 위험성, 어디까지?


 
가스라이팅은 스스로 피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어렵다. 피해자 A(21)씨는 “당시에는 신고할 생각도 전혀 못 했고,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들었다”며 “어느샌가 신체적인 폭력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또다른 가스라이팅 피해자 B(20)씨는 “당시에는 폭력인 줄 몰랐다”며 “시간이 지나고 신체적으로 폭력이 가해지기 시작한 후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적인 학대를 당할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튜브 채널 ‘쎈마이웨이’엔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이 연인으로부터 ‘죽고 싶으면 죽어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연이 제보됐다. 여성은 연인에게 폭언을 들은 후에도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도리어 물었다. 폭언 후에도 연인과 헤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가스라이팅, 알고 계신가요?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스라이팅 관련 인식이 부족하다. 가스라이팅을 정서적 학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은 남편이 아내를 강압하고, 연인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단속하는 행위, 부모가 아이에게 정서적인 폭력을 가하며 통제하는 행위 등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너 키우느라 내 인생은 엉망이 됐다’는 등의 이야기 모두 가스라이팅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통제하고 종속하는 행위가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스라이팅을 처벌하는 법안도 미비하다. 가스라이팅은 정서적 학대로서 피해 사실을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이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져야만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최근 데이트폭력 사건의 원인으로 가스라이팅이 대두되면서, 데이트폭력 처벌에 가스라이팅이 참작 요인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대화의 경우, 증거를 남기기 어려워 신고가 어려울 때가 많다.

 

가스라이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미흡하다. 가스라이팅은 말 한마디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다. 따라서 모두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글 조서우 기자 
mulk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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