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박순찬 작가를 만나다

「경향신문」을 대표하는 만평이 있다. 동글동글한 그림으로 매일의 시사를 다루는 시사만화 ‘장도리’다. 25년간 장도리를 연재해 온 박순찬 작가(천문대기과학·89)를 만났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박순찬의 '장도리'를 최고의 시사만화로 만들어낸 원동력은 만화에 대한 그의 열정이다.

 

Q. 천문대기과학이라는 전공과 만화가라는 직업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만화가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무엇인지, 대학 시절 경험이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A. 그림을 그린 아버지의 영향으로 만화를 많이 그렸다. 만화가 생활의 일부가 되다 보니 어떤 전공이나 직업을 갖든 만화를 그리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해왔다. 원래 자연과학에 관심 있기도 했고, SF 만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천문대기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부전공인 건축학도 만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선택했다. 대학 전공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될 학문을 선택하는 단계에 불과할 뿐, 전공이 직업이나 삶의 전부를 지배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부생 시절 만화동아리인 ‘만화사랑’에서 활동했다. 당시 집회 현장의 걸개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건물 한 면을 꽉 채울 정도의 그림을 다 같이 색칠하던 기억이 난다. 집회 현장이 나와 잘 맞진 않았지만,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고 도움이 된다.

 

Q. 지난 25년간 「경향신문」 만평을 그려왔다. 만평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A. 인쇄술의 발전으로 한두 컷의 그림을 인쇄해 농민과 시민들에게 나눠준 것이 만화의 시작이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권력자들을 풍자한 내용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만화의 시작은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원시적인 형태가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것이 만평이다. 우리 주변의 포장되고 거짓된 이미지를 벗겨내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만평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현재 연재 중인 장도리는 네 컷 만평이다. 네 컷 안에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데 어려움은 없나.

A. 정보가 많이 없던 시절엔 진실을 판가름하기 힘들었다. 가짜뉴스도 많았다. 만평을 그리기 위해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나 세상의 진짜 모습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또한 만평은 짧게 압축해 사태를 묘사·전달해야 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어려움도 있다. 요즘엔 만화를 진지하게 읽는 독자들이 많아져 등장인물의 표정과 자세, 표현 의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동작, 표현, 대사 뉘앙스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워진다. 
우리 사회 내 어떤 사건도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우리 사회 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따라서 사건을 하나만 관찰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 원인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건을 표현하는 데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이 모든 사건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Q. 25년간 장도리를 연재하며 작가로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

A. 장도리를 연재하는 동안 사회도 많이 변했다. 그러니 만화를 그리는 자세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다.
초창기에는 보편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개인이 취사선택할 수 있을 만큼 정보가 많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신문에 연재하는 만화도 보편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 특별한 얘기를 하기 쉽지 않았고, 특별한 내용 없이 일반적이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주제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넘쳐나는 정보를 선택하는 시대인 만큼, 방식에 변화를 줬다. 보편성만을 추구하면 만화가 가지는 메시지가 사라져 이제는 내 생각과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Q.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등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도 있을 것 같다.

A. 아무 일이 없는 날은 없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사람은 관찰하면서 살아야 하고, 그런 것들을 관찰하는 일이 내 일 중 하나다. 내가 그리는 것은 세태풍자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기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연결된 문제점을 찾고 그려낸다.
지난 15일 발간된 만화에서는 돌아가신 아파트 경비원을 소재로 그렸다. 사람이 죽는 일은 많지만, 그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은 다르다. 대한민국 대표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자살을 택한 것, 과연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찾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죽음의 의미를 찾으려는 거다.

 

Q. 시사만화가로서, 혹은 인간 박순찬으로서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회적 이슈가 있나.

A. 아무래도 코로나19 사태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다른 선진국들은 앞 세대에 이뤄놓은 것들이 많아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지지 않았던 한국이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등의 실험적인 시스템을 도입해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새로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시스템으로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 오히려 독이다.

 

Q. 뉴미디어가 발달함에 따라 대중이 과거보다 종이신문을 찾지 않는다. 독자들도 지면보다는 온라인에서 장도리를 접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

A. 독자들이 많아졌다. 온라인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경향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만 장도리를 봤다. 그런데 온라인이 활성화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 장도리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늘었다. 또 종이신문을 그리던 시절에는 국장에게 결재를 받아야 했다. 항상 마감 시간에, 결재에 쫓겨 뛰어다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부터 디지털화되면서 이젠 내가 직접 그리고 스캔도 한다.

 

Q. 장편 작품에 대한 계획은 없나. 

A. 준비하고 있는데 매일 만평을 그리면서 장편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단행본 두 권을 낸 적이 있다. 장도리와 겸하다 보니 작업 내내 식사시간을 줄이기 위해 1년간 매일 짜장면을 먹고 잠을 줄였다. 지금은 과거보다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으니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준비 중인 두 작품을 올해 내엔 꼭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나는 그림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일종의 학습서로, 캐리커처를 그리는 법에 대한 만화다. 또 하나는 인물전이다. 과거에는 여성 인물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역사는 기존에 다루지 못했던, 관심 갖지 않았던 일들을 조명해야 발전할 수 있다. 다양한 역사적 여성들을 조명해야 역사가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성 화가에 대한 인물전을 준비 중이다.

 

Q. 마지막으로, 우리대학교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만화도 그렇고, 결국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중요한 건 자기 확신이다. 자기 확신이 생기려면 자기 분야에 대한 내 실력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또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기존의 방식이 통하지 않고 직업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상상력이 필요하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선 내가 관심 없던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꾸 봐야 길이 보인다. 그런데 특정한 일을 하게 되면 다양한 것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일 때,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것들을 접했으면 한다. 남들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의 길일뿐이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나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글 변지현 기자
bodo_aegiya@yonsei.ac.kr
김수영 기자
bodo_inssa@yonsei.ac.kr
조성해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사진 조현준 기자
wandu-k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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