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독과 힘을 겨누어 결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기어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26살 소설가 구보는 목적지도 없이 종로를 배회한다. 1934년, 경성의 일상을 바라보며 그는 내면의 고독과 마주한다. 구보가 거닐던 경성의 모습은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수록 그가 느꼈던 감정이 선명해지는 것은 왜일까.

 

마땅한 직업도, 아내도 없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등지고 구보는 집을 나섰다. 광교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음을 옮기기로 한다. 

 

화신 백화점 앞에서 젊은 가족 내외의 ‘행복’을 본 구보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전차에 오른다. 현재는 화신백화점 대신 종로타워가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대로다. 

 

혼자인 처지를 곱씹던 구보는 연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이뤄지지 않은 과거의 인연처럼 행복은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전차가 은행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된 고민은 오히려 그를 피곤하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구보는 골목을 걷다 우연히 옛동무를 마주한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는 벗의 차가운 태도는 구보에 적잖이 상처가 됐다.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던 구보는 덕수궁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의 고독한 처지와 맞닿아있는 듯 덕수궁은 초라하게만 보였다.

 

외로운 구보는 기쁨을 찾고자 숭례문 밖으로 몸을 옮겼지만, 그곳에서조차 서운한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고독을 잊고자 약동하는 무리가 있는 경성역으로 향한다.

 

하지만 경성역의 삼등 대합실에 들어선 구보는 온정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눈길 속에서 더 큰 고독을 느낀다. 당시 경성역의 행인들과 오늘날 서울역을 바쁘게 오가는 이들이 별반 다를 것 없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도 달라진 것은 없다. 

 

어느덧 밤이 되고, 구보의 발걸음은 광화문 거리에서 멈춘다. 그는 자신과 다르게 사랑을 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응원한다. 광화문 거리 일대에는 소설가 박태원이 느꼈던 고독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하루 동안의 방황 중 벗에게서 들은 “좋은 소설을 쓰시오”라는 말은 구보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희망을 안은 채, 구보는 자신을 기다릴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박민진, 김수빈, 정여현, 조현준, 홍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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