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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무해(無害)한 시선에 대해
  • 양하림 사진영상부장(정외/경제·18)
  • 승인 2020.04.19 21:58
  • 호수 1850
  • 댓글 4
양하림 사진영상부장
(정외/경제·18)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쥐여준 것과 같은 설렘이었다. 그 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는 내게 일종의 면죄부였다. '알 권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카메라 뒤에 머무르며 마음껏 대상을 바라보고 탐닉했다. 두꺼운 렌즈는 타인에게 시선을 던지는 행위에서 오는 죄책감을 가려줬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불행히도 기자 생활의 반이 지날 동안, 나는 '대상을 중시한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보여주는 거라고 이해했다. 눈앞의 대상에 개입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묵묵히 대상을 바라보며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누르면 되는 거였다. 불필요한 감정을 섞을 필요도 없다. 사진기자는 완벽한 관찰자로서 감정을 배제하고 대상을 바라보면 될 뿐이다. 그게 객관적인 거라, 생각했다.

재개발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처한 세운지구 시위 현장을 취재한 적 있다. '재개발 반대' 문구가 빛바랜, 낡은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몰려들었다. 피로가 쌓여 푸석한 낯빛의 시위참여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지만 시선은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들을 직접 마주하지 않았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뷰파인더 속 대상을 무심하게만 바라봤다. 그 현장에서 '잘 찍은' 사진을 보며 희열을 느낀 나는 얼마나 완벽한 타자였던가. 또 편집국으로 돌아와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척' 기사를 쓴 나는 얼마나 위선적이었던가.

우습게도 내가 직접 사진의 '대상'이 된 후에야, 그때의 내 카메라가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이었는지 알았다. 류석춘 교수 사건으로 학교가 시끄러웠을 무렵, 류 교수와 인터뷰 도중 일순 터트린 웃음이 다른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특정한 순간이 사진으로 현상되자, 순간은 영원이 됐다. 한 장의 사진을 증거로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카메라를 쥐고 있을 때는 몰랐다. 그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니 참으로 무섭더라. 현장에서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그 소리가, 얼굴에 들이 밀어지는 렌즈가 그토록 공격적이고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날, 밤새도록 포탈에 걸린 사진을 보며 손톱을 뜯었다.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생각과 감정을 배제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특정 시점을 담는다는 것이며, 그 시점을 담는다는 건 앞뒤의 맥락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 배제된 맥락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없기 위해선, 사진기자가 대상 그 자체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결국 '대상을 중시한다'는 말은 대상을 공감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걸 기자 생활의 반이 지난 후에야 깨달은 내 자신이 미련하고 어리석다.

원하든 원치 않든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진기자는 이미 누군가의 삶에 깊이 개입해 있다. '완벽한 관찰자'로서의 사진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는 행위가 누군가의 삶에 침입하는 게 돼서는 안 된다. 그의 삶에 방문하는 게 돼야 한다. 공감과 배려 없는 카메라의 셔터음은 총성처럼 대상을 할퀸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순간은 영원으로 남아 두고두고 대상을 괴롭힐 거다. 그 무서움과 무게를 아는 것, 그것이 사진기자의 책임이다.

이제 카메라는 내게 더 이상 어린아이의 장난감이 아니다. 손에 쥐어지는 카메라의 무게는 한없이 무겁다. 설렘보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카메라를 사랑한다. 카메라는 내 세상을 넓혀줬고, 많은 경험을 선물해줬으며, 무엇보다 '바라본다는 것'의 윤리를 가르쳐줬다. 카메라와 함께 한 내 짧은 사진기자 생활이 시리도록 소중한 이유다.

양하림 사진영상부장(정외/경제·18)  dakharim012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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