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후 보도부장 (독문·17)

나에겐 과거의 것들을 되돌아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어릴 적부터 세상은 앞으로만 나아간다고 믿었고, 무엇이든 과거보다 현재가, 현재보다 미래가 낫다고 평가해왔다. 그래서 좋든 싫든 지난 장면을 곱씹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만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은 자율주행 같은 게 아니었다. 묻어두지 말고 제대로 후회해야만 변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참 싫었다. 주로 선생님 때문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중에는 성폭력도 있었다. 2015년,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긴 남교사는 숙제를 해오지 않은 벌이라며 여학생에게 안마를 시켰다. 지나서야 성희롱인 줄 알게 된 종류의 발언은 일상이었고, 여자 선배들은 ‘이상한 선생님’이라며 조심해야 할 남교사 몇의 이름과 일화를 말해줬다. 왜 나는 그때, 그게 잘못된 줄 몰랐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7년, '스쿨미투'가 확산하며 그 학교 남교사 몇 명도 신고를 당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여섯 명의 교사들이 성희롱으로 신고된 남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여자 교사도 포함돼 있었으며, 우리 반 담임으로 여자아이들과 동고동락한 선생님도 있었다. 왜 나는 그때, 더 적극적으로 화내지 못했을까.

대학교 2학년이었던 2018년, 친구 중 하나에게 모르는 남자가 관심 있다며 연락해왔다.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느냐 캐물으니, 그 애가 버리고 간 택배 박스를 봤다고 했다. 그러니까, 택배 박스에서 얻은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스스럼없이 연락할 정도로 그 남자는 센스가 없었다. 연애나 여자에 대한 센스 말고, 범죄나 폭력에 대한 센스 말이다. 결국 그 친구는 얼마 안 가서 자취방을 빼고 전화번호를 바꿨다. 왜 나는 그때, 신고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1년 뒤 2019년, 또 다른 친구는 트위터에서 '지인능욕'의 대상이 됐다. 그 계정을 신고하러 들어가니, 트위터는 나에게 비슷한 계정들을 추천해줬다. 친절한 추천 덕에 손쉽게 타고 들어가 다른 계정들도 신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고 버튼을 누르고 또 눌러도 끝이 없었다. 누군지 모를 여자들의 사진과 신상 정보 옆에 '박아달라'는 문구를 보니 구역질이 났다. 왜 나는 그때, 겁에 질려 도망치듯 잊어버렸을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자꾸만 던졌다. 왜 나는 어른들의 세계와 남성의 문화에 화를 내면서도 익숙해져 버렸을까. 여자아이들이 고통받는 건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렇게 생각해 버렸을까. 왜 나는 텔레그램 채팅창 속의 여자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을까. 아니, 오히려 그곳에 가둔 것은 아닐까.

여자, 아이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이코패스 변태, 혹은 돈에 미친 놈. 나는 분노하기보다 죄스러웠다. 2020년에도 여자아이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어린 여자, 나는 말하자면 피해자 그룹에 가깝다.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항상 지닌다. 그럼에도 동시에 나는 무거운 책임과 절망적인 죄책감을 느낀다. 그 아이들보다 몇 살 더 어른으로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기회를 놓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라는 명제는 책임을 분산하고 뭉개버리지만 한편으로는, 이 문제의 진짜 본질을 비추기도 한다. 성착취는 그동안 아주 특수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로, 아니면 그 반대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어느 쪽이든 성착취를 해결해야 할 '사회적 사안'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고, 이 무관심 속에서 성착취 범죄는 성장해왔다. 텔레그램 비밀 방들을 특수하고 유일무이한 사건이라 칭하며 선을 그어선 안 된다. 그러나 성착취 문화가 자연적 본능이나 보편적 질서를 기반으로 한다고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럴 수도 있거나 원래부터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 섣불리 이 장면을 무어라 명명하기 전에, 마음을 다해 후회하는 과정부터 필요하다.

그러니까 모두들, 끔찍하긴 하나 결코 낯설지 않은 이 장면 앞에서 끝없는 죄책감을 느끼시길 바란다. 법안을 짠답시고 아무 말이나 하는 분들, 회원이 몇만인지 세는 데만 바쁜 분들, 뜨거운 감자에 괜히 델까 침묵하는 분들, 모두 후회에 몸서리쳐 보시길 바란다. 그러고 나면 조금은 다른 내일을 맞지 않을까. 여자아이들이 평생 강간당하지 않은 채로 죽을 수 있을 만큼, 그만큼은 자유롭길 두 손 모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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