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역배우들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는 불법”. 지난 2018년 배우 허정도(42)씨가 한 언론사 기고 글에 적은 구절이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명시된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역배우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때까지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방송‧영화 촬영 현장에서 이는 지켜지지 못한다.

 

 

촬영장에서 혹사당하는 아동‧청소년
‘뭣이 중헌디’

 

배우의 노동시간은 길다. 촬영 자체가 길고, 촬영을 위해 장시간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야외촬영이 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대기 장소도 야외인 경우가 많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성상민 기획차장은 “우리나라 방송‧영화 촬영현장은 장시간 대기와 야간 촬영이 특징”이라며 “언제 자기 차례가 돌아올지 몰라 배우들은 현장에서 종일 대기한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은 아역배우의 기본권을 크게 침해한다. 지난 1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03명의 아동‧청소년 연기자 중 36.9%가 12~18시간, 21.4%가 18~24시간 연속 촬영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신‧신체가 미성숙한 아동과 청소년이 성인에게도 버거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침해되는 기본권은 수면권과 건강권이다. 아역배우는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밤까지 대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역배우는 건강권을 보장받기 힘든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아동‧청소년은 유해요인에 성인보다 취약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며 “2차 성징 전후에 있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호르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역배우가 정규교육을 이수하기 힘들다는 점 역시 지적된다. 보호자는 아동‧청소년에게 중학교까지 교육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진로로 배우를 택한 아동이나 청소년이라도 중학교 정규교육까지는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학습권을 보호받지 못한다. 성 기획차장은 “아역배우는 촬영 기간 종일 촬영장에 있어야 해 사실상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다”며 “이로 인해 기초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배우 외 다른 진로를 택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영국 노동법은 아역배우들이 촬영 중 매일 3시간 동안 학교 커리큘럼에 맞춰 공부하도록 규정한다. 일부 촬영장에서는 교사를 고용한다.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은 연기력을 이유로 험한 대우를 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보통 성인보다 대본 숙지 기간이 길고 문제해결력이 부족하다. 때문에 방송 촬영 직전에 대본을 나눠주는 ‘쪽대본’ 관행에 더 취약하다. 성 기획차장은 “아동·청소년 연기자가 대본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면 언어폭력을 당하기도 한다”며 “이는 성인이 돼서도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양동근(40)씨는 지난 2015년 한 방송에서 “아역배우 시절 감독의 명령에 따라 연기하지 못하면 감독이 담배 연기를 눈에 대는 등 폭행했다”며 “보호해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보호해야 했던 경험 때문에 방어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정신건강엔 안 좋아

 

촬영장에서의 대우뿐 아니라 아동‧청소년이 촬영장에서 연기하거나 보게 되는 장면 역시 문제다. 아동‧청소년이 영화‧드라마 촬영장의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에서 아역배우들은 폭력피해자를 연기했다. 이들은 칼로 사람을 살해하려 하거나 성폭행당하는 장면에 그대로 놓여졌다. 영화가 촬영된 지난 2011년 아역배우 평균연령은 12.6세였다. 최 전문의는 “폭력의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 역할을 맡는 아동‧청소년은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취약하다”며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심리 상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2012년 영화진흥위원회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와 업무 제휴 협약을 맺고 아역배우가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초기 상담비용을 지원했다. 그러나 해당 협약은 예산 부족의 이유로 폐기됐다.

아역배우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KBS, MBC를 비롯한 방송사 아동 보호 가이드라인에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불건전하거나 부당한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규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규정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가이드라인은 방송사의 자율에 불과해 지키지 않아도 가해지는 조치는 거의 없다. 영화계에도 통일된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아역배우를 보호하는 시도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이들이 충분한 보호 없이 유해 장면에 노출되는 일이 반복된다. 지난 2013년 MBC 드라마 『보고싶다』에서도 아역배우가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영화 『우리집』의 한 장면이다. 하나, 유미, 유진 역을 맡은 아역배우들이 물놀이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아역배우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리집』 촬영수칙은 아역배우가 상처받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주의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배우가 아닌 아역”…
이젠 아동‧청소년도 프로로 존중해야

 

아역배우가 촬영장에서 겪는 문제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아동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결합된 결과다. 성 기획차장은 “스태프, 배우를 배려하지 않는 현장에서 약자인 아역배우는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에 아역배우를 촬영장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배려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집』 촬영 수칙이 대표적이다. 촬영 수칙의 부제는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 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이다. 여기엔 아역배우만의 특징을 배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어른의 행동과 평가에 아동‧청소년이 영향받을 수 있음을 고려해 행동을 주의하고 아역배우를 프로 배우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아역배우에 대한 배려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김두나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노동을 비생계형 단기 노동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아역배우는 장시간 노동, 인격 모독 등 인권침해에 노출된다”며 “감독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역배우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동시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기획차장은 “현행법은 선언적 의미만을 갖는다”며 “법을 위반할 경우 촬영 허가를 취소하거나 실형을 선고하는 등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없는 촬영장의 특성상 법을 위반해도 적발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법적 강제력을 가진 감독관을 촬영장에 두는 대안이 제시된다. 영국, 프랑스 등에서 실시하는 ‘샤프롱(Chaperones)’ 제도*를 참고한 방안이다. 제3자를 투입해 아동의 인권침해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성 기획차장은 “우리나라에서 드라마‧영화를 감독의 작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만드는 공동창작물”이라며 “창작 현장에서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여러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배우의 권리가 방송‧영화 촬영을 이유로 배제돼서는 안 된다. 아역배우가 한 사람의 배우로 인정받을 때까지, 스크린 앞 시청자의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샤프롱(Chaperones)제도: 영국의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보호제도다. 샤프롱은 촬영 현장에서 아동과 동행하며 이들을 보살피고, 아동의 법적 권리가 침해당했을 시 노동 당국에 즉시 알린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자료사진 다음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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