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에서 실마리를 찾다

최근 K-패션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K-패션이 이렇게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지난 2015년까지 K-패션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조용히 인기몰이할 뿐이었다. 유럽과 미국은 높은 장벽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K-패션 기업들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그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일례로 삼성물산의 패션 브랜드 ‘구호(KUHO)’는 ‘쇼핑의 메카’라 불리는 뉴욕 소호에서 글로벌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지난 2018년에는 신세계백화점의 편집숍 브랜드 ‘분더샵’ 컬렉션이 파리의 유명 백화점 르 봉 마르쉐(Le Bon Marché)에 입점하기도 했다. 한국 고유의 패션 브랜드들이 전 세계 패션 전문가들과 최고급 백화점의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성과가 K-패션 열풍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 열풍이 단순한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가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실마리는 바로 ‘자포니즘’에 있다.

 

자포니즘을 낳고 기른 ‘쌍방향적 교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탕기 영감의 초상화」다. 배경에서 '자포니즘'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1887년에 그린 「탕기 영감의 초상화」다. 그림을 감상할 때 배경에 집중해보자. 일본풍으로 그려진 일본 여성들이 눈에 띈다. 이전 유럽 회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다. 그렇다면 고흐는 왜 일본풍의 그림을 그렸을까? 바로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 때문이다.

자포니즘의 역사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영상그림상자(peep box)’로부터 시작된다. 영상그림상자는 렌즈를 통해 그 속의 그림을 구경하는 기구다. 영상그림상자 속 그림에 사용된 다채로운 색과 원근법은 감상자에게 엄청난 몰입감과 환상을 선사했다. 1750년대에 영상그림상자가 일본에 전파된 뒤, 일본 화가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본 회화를 포함한 동양회화는 단색 위주였고, 평면적이었다. 그러나 영상그림상자의 유입을 기점으로 일본 화가들은 자국의 전통판화인 우키요에**에 입체감과 다채로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일본 고유의 피사체를 유럽 화법으로 그린 우키요에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처음 유럽에 소개됐다. 일본과 유럽의 쌍방향 교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우키요에는 일본 도자기가 운반되는 중 깨지지 않도록 돕는 완충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독특한 각도에서 과감한 색채로 대상을 그려낸 우키요에의 매력에 유럽인들은 열광했다.

우키요에는 특히 프랑스 화가들의 화풍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본래 이들은 ‘그림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고, 그 대상은 왜곡 없이 온전히 담겨야 한다’는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우키요에를 통해 그들은 기존 규칙에 완전히 반하는 새로운 화풍을 마주하게 됐다. 곧 우키요에 화풍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유럽 화가들의 작품에 녹아들었다. 발명품 하나에서 시작된 유럽과 일본의 쌍방향 교류가 반세기 동안 유럽 전역을 강타한 자포니즘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후 유럽과 일본은 끊임없이 자국의 문물을 교류하며 자포니즘을 발전해 나갔다.

 

‘자포니즘’은 사라졌어도…계속되는 영향

 

아무리 무엇인가가 전무후무한 열풍을 일으켰다 해도, 언젠가 그 열풍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자포니즘도 여타 유행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자포니즘의 영향은 곧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자포니즘은 장식미술, 응용미술이라 불리는 현대 디자인으로 이어졌는데, 그 계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바로 ‘아르누보(Art Nouveau)’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아르누보 작가들은 단조로운 미술 양식의 반복에 반감을 느꼈고, 그에 반하는 새로운 양식을 지향했다. 과거 우키요에 특유의 뚜렷한 윤곽선, 독특하고 복잡하지 않은 구도, 강렬한 색채 등이 이들에게 영감이 됐다. 곧바로 산업혁명 이후 늘어난 출판물·광고물·공산품 등에 자포니즘 색채가 입혀지기 시작했다.

초기 아르누보의 장식적이지 않고 유기적인 곡선에서도 자포니즘이 드러난다. 이는 이후 스코틀랜드와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기하학적인 무늬를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것으로 변형돼 근대 모더니즘 디자인의 단초가 됐다. 잇따른 발전과 변형은 현재의 일러스트, 만화라는 양식을 탄생시켰다. 이렇듯 자포니즘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예술사적으로 볼 때, 자포니즘을 단지 유럽의 ‘일본 취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유럽의 영상그림상자가 일본에 일차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물이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 유럽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은 반복돼 서로 N차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적 발전을 이끌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곧 자포니즘이다. 서로의 것에 감탄하고, 서로의 것을 배우는 교류는 상호발전의 초석이 됐다. 다시 말해 자포니즘이 자포네즈리***를 넘어 고유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쌍방향 교류의 공이 컸다.

 

K-패션, 자포니즘처럼 자라다오

 

자포니즘이 K-패션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가 유럽과 미국 패션쇼에 서고, 백화점에 입점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성과다. 하지만 현재 K-패션 열풍이 단지 과거의 자포네즈리에 그칠 현상은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 

결국 K-패션이 ‘문화’로 발전하기 위한 과제는 ‘쌍방향적 교류’다. 일방적 수출은 해외 시장 흐름을 따라갈 수 없게 한다. 여기서 K-패션은 문화적 정서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품을 선전할 때 ‘아이들도 쓸 수 있을 만큼 순한 화장품’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 전략은 서구권 국가에 적용해선 안 된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어른의 화장품을 아이들에게 쓰게 하는 것이 ‘아동학대’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적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수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K-패션이 해외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화적 정서를 고려해야만 하는 이유다.

또한, 자포니즘의 성공 사례에서 K-패션이 본받아야 할 것은, ‘본질’을 잃지 않은 일본 화가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일본 특유의 소재와 일본 풍속화의 독특한 구도를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외래문화를 적극 수용해 새로움을 추구했다. 이는 K-패션의 또 다른 문제점인 ‘불충분한 현지화’에 해답을 던진다. 미국과 유럽 패션 관계자들은 K-패션의 강점으로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창작하는 능력’을 꼽는다. 하지만 현지의 문화가 충분히 녹아있지 않은 탓에 현지인은 다가가기 어려워한다고 지적한다. 수십 년 전 일본의 화가들이 그러했듯, K-패션은 자신의 강점을 유지하며 해외 소비자의 요구, 해외 패션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녹여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K-패션은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세계 시장에서 그 매력을 충분히 발휘할 것이다. 

 

K-패션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선호하며 신(新)한류의 이미지와 함께 소비될 수 있는 패션’으로 정의된다. 프랑스 유명 패션 브랜드인 샤넬(Chanel), 루이뷔통(Louis Vuiton) 관계자들은 “K-패션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K-패션이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자포니즘의 원동력이었던 ‘쌍방향 교류’를 기억해야 할 시점이다. 적극적인 상호교류가 뒷받침될 때 K-패션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문화’로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것이다. 자포니즘의 성공을 닮은 K-패션의 세계화가, 한국 문화의 숨결을 더욱 넓은 곳으로 퍼지게 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자포니즘: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 및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

**우키요에: 일본 무로마치시대부터 에도시대 말기에 제작된 회화 양식. 속세의 ‘우키요’, 그림의 ‘에’가 합쳐진 풍속화라 할 수 있다. 

***자포네즈리: 일본의 문물 또는 일본풍의 것들에 열광하는 취향

 

 

글 정여현 기자
jadeyj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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