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의 교육권 보장에 미지근한 대학가

지난 2018년 공군 김형태(22) 일병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김 일병은 한 인터뷰에서 “훈련소에서부터 일과 후와 주말에 EBS 강의를 들었다”며 “열람실에서 하루 평균 4~5시간 공부하며 수능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 입시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군대와 N수를 합성한 신조어, ‘군수’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 군 복무 중인 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군 e-러닝 제도 ▲군 복무 학점인정제가 운용되고 있으나 아직 대학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하다.

 

군대에서 알짜 시간
자기계발로 이어지다

 

군인도 한 때 학생이었다. 이영민(전기전자·19)씨는 “입대하면 사회와 단절된 채 일 년 반을 지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학업도 단절돼 복학 이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자기계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군인 복무규율」 제 57조에 따르면 지휘관은 일정한 자유 시간과 내무반원의 자유행동을 가급적 보장해야 한다.


이에 국방부는 병 자기개발 지원을 통해 군인의 학업을 장려하고 있다. 군인은 자격증 취득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연간 최대 1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김민서(UD·18)씨는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살 비용을 지원받았다”며 “병 자기개발 지원을 통해 많은 장병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방부는 군인이 대학 수업과 단절되는 것을 고려해 지난 2007년 군 e-러닝 제도를 도입했다. 덕분에 군인들은 부대 안에서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병역법」 제 73조에 따라 입영 또는 복무로 인해 휴학 중인 사람이 원격강좌를 수강해 학점을 취득하려는 경우, 대학은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록을 허용할 수 있다. 대학은 국방부 승인을 통해 군 복무 중인 학생에게 원격강좌를 제공한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강좌를 이용해 군 복무 기간 중에도 1학기 최대 6학점, 1년 최대 12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군 휴학생 역시 재학생과 동일한 강좌를 동영상으로 수강하고 평가받게 된다. 성적 평가를 위해 대개 재학생과 동일한 시험을 보지만 강의자의 재량에 따라 시험 대체 과제물을 제출하기도 한다.

 

e-러닝 대학 원격강좌
들을 수 있는 거니?


국방일보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학기 대학 원격강좌를 신청한 육군 장병은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6천649명이었다. 국방부 인적자원개발과 관계자 A씨는 “아직 2020학년도 1학기 수강 신청이 끝나지 않았는데 수강을 신청한 인원이 1만 1천 명이 넘는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군 복무 중인 학생에게 원격강좌를 제공하는 대학은 도입 당시인 지난 2007년 6곳에서 2020년 159곳으로 대폭 상승했다. A씨는 “대학 원격강좌를 실시하지 않는 대학에 공문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 강의를 열어달라고 한다”며 “설득 끝에 많은 학교에서 원격강좌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2020학년도 1학기 우리대학교 미래캠에도 대학 원격강좌가 신규 개설됐다.


하지만 아직 군 e-러닝 제도는 갈 길이 멀다. 우선 대학 원격강좌가 개설된다 해도 들을 수 있는 강좌 수가 적다. ‘나라사랑포털’에 따르면 지난 2018학년도 2학기에 대학 원격강좌를 실시한 139개 대학 중 68개 대학이 5개 이하의 강좌를 개설했다. 2018학년도 1학기에 대학 원격강좌를 수강했던 김민규(사회·14)씨는 “수강 신청 가능한 수업이 너무 적고 가능한 수업도 모두 교양수업이라 아쉬웠다”며 “수강 신청 폭이 늘어나 전공학점도 취득할 수 있다면 후배들이 더 알차게 군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은 원격강좌를 열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교무처 교수학습혁신팀 김진희 대리는 “대학 원격강좌가 열리기까지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며 “개설과목에 대한 수요, 교수의 의사, 영상 제작 과정 등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 원격강좌를 개설하려면 강의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강의 모습을 촬영하거나 강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각자료가 많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 개설을 꺼린다는 것이 학교 측 설명이다.


학교 측은 전공과 관계없이 들을 수 있는 교양수업이 아닌 전공과목을 개설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특정 전공이나 과목만을 개설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학생들이 전공과목개설을 요청하는 사례가 있다”며 “하지만 일부 전공은 개설하고 일부 전공은 개설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나의 군 생활도
학점이 될 수는 없을까?

 

지난 2019년 경인교육대, 대전대 등 12개 대학에서 최초로 「군 복무 경험 학점인정 추진 업무협약」(아래 학점인정협약)이 체결됐다. 군 복무 학점 인정제는 군 복무 경험 중 일부를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회봉사·인성교육·리더십 등의 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한다. 30년 이상 군인으로 복무한 박 모 대령은 “아직 병사들은 군 복무를 사회와의 단절, 인생의 암흑기로 생각한다”며 “학생들을 위한 더 많은 지원을 통해 군인의 사회활동을 돕는 제도가 확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군 복무 경험 학점인정제가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2020년 1월 기준 학점인정협약을 체결한 대학은 24곳에 불과하다. 이에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군인인 동시에 학생이라는 점에서 국방부와 교육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국방부는 교육부의 역할과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군인의 교육을 위한 대학들의 참여를 독려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역시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제도를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대학들에 공문을 보내 학점인정제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23사단에서 근무 중인 이 모 소위는 “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이라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학생과 사회의 단절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 하지만 아직 대학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하다. 관련 부처의 긴밀한 협력과 대학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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