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F* 트랜스젠더입니다. 등록 포기합니다.” 지난 2월 7일, 숙명여대 합격생 A씨는 학내 커뮤니티 게시판에 입학 포기의 심경을 담은 글을 올렸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그는 자신도 꿈과 목표가 있는 “특별하지 않은 삶을 견뎌낸다”며 “몇 안 되는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두려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0일, A씨의 숙명여대 합격 소식이 알려진 후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학교 안팎에서 쏟아졌다. 입학을 환영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는 원색적이고 격렬했다. SNS에 A씨를 향한 혐오범죄를 예고하는 글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A씨의 입학 포기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한국 사회는 ‘여성은 누구인가’, ‘페미니즘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트랜스젠더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등 중대한 질문 앞에 놓였다.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당시의 논쟁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퍼뜨려진 배제의 논리

 

A씨의 입학에 반대하는 여론은 ‘터프(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TERF)’를 표방하는 학내 일부 동아리와 단체가 주도했다. 터프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중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들의 논리는 XX 염색체를 가진 생물학적 여성만이 ‘진짜 여성’이라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여성은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부장제의 폭력을 겪은 동질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터프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성별 위화감을 착각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성별 정정을 거친 트랜스젠더 여성이더라도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 권력을 누렸으므로 여성에 포함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숙명여대 비둘기학회 ‘날아’가 발표한 입장문 ‘인간은 비둘기가 될 수 없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들은 남성을 인간, 여성을 비둘기에 빗대며 인간이 “비둘기의 외형을 따라 한다고 비둘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비둘기가 될 수 있는 경우는 “비둘기로 태어나 비둘기의 삶을 살며 비둘기에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을 몸소 체험할 때뿐”이라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은 인간과 비둘기의 차이만큼이나 극복될 수 없으므로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18학번이라고 밝힌 한 대자보 작성자 또한 여성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남성은 없다며 “남성은 절대 여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착각하는 남성일 뿐’이라는 터프식 사고는 여성 공간의 안전과 여성의 교육 기회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특히 이번 숙명여대 사건에는 여대가 가진 사회적 특수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터프의 주장에 따르면, A씨의 입학은 남성이 여대에 ‘침투’해 여성의 안전과 교육 기회를 위협하는 일이다. 숙명여대 래디컬 페미니스트 소모임 ‘PIEATER’S’는 ‘숙명의 딸들이여 숙명을 구하라’라는 입장문에서 “많은 숙명인들이 왜 한 남성 때문에 학교 시설 이용에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가”라며 “여성의 능력과 야망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더 이상 남성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범람하는 연대의 물결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숙명여대 법학과 나수빈씨는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마치고 입학요건을 충족한 A씨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 또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입학할 수 없다는 주장은 트랜스젠더 혐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학외 단체의 연대 성명도 빗발쳤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존재들이 나만큼 특별하고 평범한 구성원이라고 믿어지는 세계로 나아가자”며 트랜스젠더 신입생을 환영하는 입장문을 냈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역시 “또 한 명의 여성으로서 법학도의 길을 걸을 A씨에게 한없는 지지와 응원의 의사를 보낸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 개념의 비현실성 ▲생물학적 설명의 위험성 ▲여성과 트랜스젠더 인권의 양립성 등을 근거로 터프의 주장을 비판했다. 숙명여대 사건을 “성소수자 혐오에 의해 트랜스젠더 여성의 교육권이 침해당한 사건”으로 규정한 QUV 박기진 활동가는 “터프의 생물학적 여성 개념에는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성적지향, 계급, 인종 등 다양한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서사를 경험하는 여성은 동일한 경험을 지닌 일괄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 활동가는 “한 사람의 생물학적 성별은 유전적 요인과 내부 생식기의 존재, 영유아기 때의 후천적인 성기 제거 수술 등 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며 “누군가를 여성으로 규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며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XY 염색체를 갖고 있지만 여성형 생식기가 발달하는 경우도 있고, 남성형과 여성형 생식기를 동시에 갖는 경우도 있다. 성염색체를 하나 또는 세 개 이상 갖는 다양한 사례도 존재해 몇 가지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성별을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여성 혐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본질화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억압체계를 재생산한다는 논리다. 그동안 생물학적 환원론은 ‘여성은 가사노동에 적합하도록 태어났다’나 ‘남성은 원래 성욕이 많고 폭력적이다’처럼 성차별과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돼왔다. 이와 관련해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루인 연구원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기 위해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 억압의 핵심 체계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의 안전과 기회를 위협한다는 주장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유니브페미 설목 활동가는 “여성의 안전과 트랜스젠더 배제는 양립 불가능하다”며 “여성이 안전한 세상에서는 트랜스젠더도 안전하고, 트랜스젠더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여성도 차별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과 트랜스젠더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는 공동의 존재이므로, 양자의 권리 또한 동일선상에 있다는 지적이다. 재학 중인 대학에서 여성 공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쳐온 유니브페미 서영 활동가도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는 여성 공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사수하는 데 동참하는 지지자였다”고 회상했다. 또한 “여성과 함께 익명 커뮤니티의 혐오표현에 노출되는 공동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며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풀어 오르는 ‘함께’의 상상

 

숙명여대 사건을 페미니즘 내부의 갈등이나 터프와 트랜스젠더 사이의 대립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루인 연구원은 이와 같은 시각은 “페미니즘과 여대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함과 동시에 구경꾼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재판관의 지위를 준다”며 “사람들 모두에게 이 사건과 어떻게 연루돼있는지 고민하며 함께 사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자는 발언을 가능케 한 사회적 토대를 고려하지 않고 특정 집단만 비난하는 태도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설목 활동가 또한 “여성이 어디에서나 안전할 수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건”이라며 “터프 등 여성들이 A씨의 배제를 주장하게 만든 원흉은 한국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씨에 가해진 혐오표현을 방치한 숙명여대 본부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숙명여대는 A씨의 입학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 이외의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활동가는 “숙명여대 본부가 왜 구성원을 보호하지 않았는지 참으로 의문스럽다”며 “성소수자 혐오와 집단 따돌림을 제지하고 혐오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루인 연구원도 “만약 숙명여대와 비슷한 사건이 재발한다면 대학 당국 차원에서 혐오를 중단하라는 정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사회를 넘어 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활동가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과 가짜뉴스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며 그 방안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들었다. 차별금지법은 인종, 신체조건,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등 차별금지 사유를 적시하고 괴롭힘, 편견 조장, 모욕 등의 차별 유형을 구체화하는 법안이다. 차별의 기준이 정해지면서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인지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은 교육 영역에서의 차별을 엄격히 금지해 이번 숙명여대와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법적인 개입을 가능케 한다. 박 활동가는 “대한민국 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유엔의 권고를 수차례 받은 바 있다”며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제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제하는 과정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에 대한 페미니즘 활동가들의 고민 또한 계속되고 있다. A씨가 입학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해온 여성운동이 더 넓은 의미의 여성보다 더 많은 수의 여성과 연대하기를 택해왔다는 성찰을 하게 됐다”는 서영 활동가는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앞으로도 반폭력을 넘어 반차별 운동에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니브페미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젠더 혐오가 정당화되는 현실 속 페미니스트의 과제’를 논의하는 긴급토론회를 계획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잠정 연기된 상태다.

 

지난 2월 7일, A씨는 입학을 포기하며 학내 커뮤니티에 남긴 글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A씨가 멈춘 자리에는 한국 사회가 답해야 할 중대한 질문들이 남겨져 있다. 우리는 이를 넘고 지금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 A씨가 멈춘 자리로 끊임없이 되돌아가 성찰들을 덧대어갈 때, 그리하여 나와 다른 정체성을 나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일 때, 한국 사회는 비로소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MTF: Male to Female의 약자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를 뜻한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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