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휴직, 일·가정 양립 가능한 사회를 위해

 

 

북유럽에서는 유아차 끄는 아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끄는 모습에 이들은 ‘라떼파파’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다.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아빠 육아 예능이 인기리에 방영됐지만, 현실에서 육아는 대부분 엄마의 몫이다. 

 

아빠도 쓰고 싶지만…
그림의 떡인 육아휴직제도

 

육아휴직제도는 근로자가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복지제도다. 육아휴직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 사용 가능하며 2020년부터는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육아휴직제도가 많이 알려지면서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노동부에 따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지난 2015년에 5.6%에서 2017년 13.4%, 2019년 21.2%로 늘었다.

육아휴직은 가정과 업무 양쪽에 긍정적효과를 제공한다. 지난 2019년 고용부의 육아휴직 경험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성 중 95%가 가족관계가 좋아졌고 81.9%가 업무 생산성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이처럼 가족관계 증진과 업무 생산성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육아휴직 사용이 어렵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2019년 1천141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32.4%로 나타났다. 이때 성별에 따른 차이가 컸다. 여성 직장인은 37.5%가 육아휴직을 사용했으나 남성 직장인의 사용률은 20.8%에 불과했다. 남성과 여성은 사용률뿐만 아니라 사용 기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지난 2019년 노동부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육아휴직 사용 기간은 9.7개월로 5.8개월인 남성에 비해 길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육아휴직이 자리 잡지 못했고, 특히 남성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육아휴직제도 못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소득 손실

 

직장인이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소득 손실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급여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육아휴직 급여뿐이다. 일부 대기업에서 복지를 위해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하기도 하지만 이는 기업의 선택사항이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육아휴직 급여는 첫 3개월까지 통상임금의 80%까지고 상한액은 150만 원이다. 4개월 이후부터는 50%까지만 지원되며 상한액이 120만 원으로 조정된다. 지난 2019년 기준 정부가 책정한 3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는 225만 6천19원이다. 육아휴직 시 최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최저생계비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셈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 수의 절반가량이 외벌이 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육아휴직은 치명적인 소득 손실을 의미한다.

외벌이 가구가 아니어도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한국의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은 32.8%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소득대체율은 근로자가 기존에 받던 소득 대비 육아휴직 급여를 의미한다. 육아휴직 사용 시 기존 소득의 3분의 1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각각 97.9%, 76%의 소득대체율을 보였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더라도 심각한 소득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나라 소득 구조상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특히 어렵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남성 가구원의 소득이 가구 소득 중 큰 비율을 차지한다. 지난 2018년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기준 남성 대비 여성 임금비율은 66.6%였다. 남성 임금이 100일 때 여성의 임금은 66.6이다. 남성의 임금이 여성보다 높다 보니 가구 소득이 남성의 소득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양성평등 연구 및 사업 단체 관계자 A씨는 “남성의 소득이 더 높아 생계 부양 차원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많은 부부들이 남성 가구원 소득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가구원의 소득을 포기하고, 여성이 육아를 맡게 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남성이라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더 어렵다. 기업 규모·고용 형태별로 육아휴직 사용률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먼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육아휴직 도입률에서 차이를 보인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중 93.1%가 육아휴직제를 도입했지만 10~29인 기업의 도입률은 46.1%, 5~9인 기업은 33.8%에 그쳤다. 중소기업의 도입률이 낮은 이유는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업주에게 대체인력 1인당 6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사회학과 권현지 교수는 “중소기업은 한 직원이 여러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의 공백이 크다”며 “단순히 기간제로 대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애초에 육아휴직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육아휴직 급여제도는 고용보험 가입자로 한정돼있어 비정규직·자영업자·특수직 근로자는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낸 보험료로 구성된 고용보험기금이 육아휴직 급여의 재원이기 때문에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은 이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이들을 위한 육아휴직 급여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부모보험’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온 바 있다. 직업·소득과 관계없이 부모라면 모두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아빠는 회사에, 엄마는 집에?
모두를 위한 일·가정 양립 정책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으로 구별된 성 역할 때문이다. 남성과 육아를 분리하는 인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지난 2019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시민 1천20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남녀 모두 직장에서 바꾸고 싶은 성차별 언행으로 ‘결혼, 출산, 육아’ 관련 내용을 1위로 꼽았다. 이때 남성 응답자는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야”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문제로 지적했다. 

기업 내에서 육아휴직을 남녀 모두에게 권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 교수는 “동료나 상사가 육아휴직에 우호적이지 않다면 육아휴직을 쓰기 힘들다”며 “국가 차원 제도뿐 아니라 기업이 자체적으로 규범을 마련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인사 담당 B씨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주변 직원의 업무가 가중될 수 있어 눈치 주는 분위기가 생긴다”며 “업무가 가중된 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육아휴직제가 시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육아휴직의 취지를 살리려면 복직 이후의 정책도 중요하다. 육아에 필요한 기간이 최소 7~8년인 데 비해 육아휴직 기간은 1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권 교수는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처럼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노동 친화적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녀 육아휴직 할당제가 실시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성과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해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전체 육아휴직 기간 9개월 중 6개월은 남녀가 의무적으로 3개월씩 번갈아 사용해야 한다.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Magnea Marinosdottir) 아이슬란드 복지수석고문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취재에서 “남성의 의무적인 육아휴직은 남성도 육아를 해야 할 권리가 있으며 아이 양육의 책임은 남녀 모두에게 있다는 것, 성 평등을 실현하는 것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제도가 마련돼도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육아휴직은 무용지물이다. ‘남성은 일, 여성은 육아’라는 성 역할의 구별이 뚜렷할수록 남성의 육아 참여는 제한된다. A씨는 “육아휴직이 현재는 조직 내에서 소수 여성만의 일이지만, 남녀 구별 없이 조직 전체의 고려대상이 된다면 근로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려면 ‘슈퍼맨’이 돼야 한다. 육아휴직을 쓰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산이 많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 모두가 일과 가정을 지키려면 육아휴직에 따른 소득 보전과 실질적인 지원, 그리고 성평등적 문화의 정착이 모두 필요하다. 

 

 

글 박준영 기자
jun0267@yonsei.ac.kr

<자료사진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