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만든 후 이를 공유·유포하거나 성폭력 범죄를 직접 자행한 'n번방 사건'에 대해 온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에는 지난 24일 현재 560만이 넘는 서명자들이 n번방의 운영자와 가입자의 신상 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대통령과 경찰청장,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모두 나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처를 다짐하였고, 서울경찰청은 성착취 촬영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포토라인에 세우며 신상정보를 일부 공개했다.

지금까지 성착취 관련 범죄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n번방 사건에서도 반복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지난해 10월 아동 성착취물 22만여 건을 유통한 혐의로 검거된 손모씨도 징역 1년 6개월에 불과한 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 여성들은 지인들에게 성착취 영상을 유포할 것이라는 조주빈의 협박에 신고조차 못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다. 그간 수많은 유사 성범죄가 자행됐던 것을 고려하면, 디지털 성범죄에 희생된 피해 여성의 규모와 이들의 고통은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해도 상당수의 피해 여성은 학업과 직업, 혼인까지도 포기한 채 평생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 

피해 여성을 위해 국가는 범죄피해자보호법을 근거로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 검찰청에 위치한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생계·의료·심리·법률 등의 지원을 실시하고 있으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특화된 상담 및 피해 영상 삭제, 법률·의료·보호시설 연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이 센터의 경우 피해자 신고만으로도 지원이 가능하나, 국가의 구조금은 피해자의 사망 또는 중상해 등의 조건이 필요하고,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역시 형사사건의 피해자임이 특정화돼야 지원이 가능하다. 이에 각 기관에서는 지원 대상의 기준을 완화하고, 민·관이 하나가 돼 피해자 지원을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를 구조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도록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제도나 법률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직면하는 우리의 자세는 가해자에 대한 공분 그 이상의 것이야 한다. 성범죄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엄중히 요구하되, 피해자의 목소리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피해 여성들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이들과 그 가족을 마음 속 깊이 위로하고, 다함께 연대해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독방 속 피해 여성의 손을 잡아 일으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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