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여론칼럼 십계명
[십계명] ‘총(總)’의 몰락
  • 노지운 총무국장(철학·17)
  • 승인 2020.03.22 21:45
  • 호수 1846
  • 댓글 11
노지운 총무국장
(철학·17)

내가 17학번으로 입학한 이후 세 번의 봄을 더 지낼 때까지 총학생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총학생회가 나오기까지 진행된 3번의 선거 중 한 번은 먼발치에서 파행에 치닫는 선거를 무심하게 관전했고, 나머지 두 번의 선거는 연세춘추 기자로 직접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면서 경험했다. 삼세번 끝에 내가 학교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생겼다.

약 2년만의 비대위를 뚫고 결성된 총학생회는 열심히 일했다. 그동안 산적해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전(前) 총학생회장은 말했지만 기실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어떻게든 피력하려는 총학생회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겠다. '학생회'라는 단어만 들어도 고리타분한 인상을 주는 이 시대에서 총학생회는 자기 존재 이유를 학생들의 편의와 복지에서 찾았고 그래야만 했다. 더 이상 과거 운동권 학생회처럼 어떤 하나의 의제를 끌고 갈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와 사고는 '총(總)'이라는 관형사 하나 아래로 묶이지 않는다. '총'이라는 거대 서사가 몰락하고 남은 자리에는 각자만의 다양한 서사가 대신하게 됐다. 이러한 소규모 서사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상호 간 의견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수 조건임은 자명하다. 자유민주주의의 다양성 보장이 다름 아닌 상호 간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연세 학생사회에서는 총학생회가 학생복지처로 변모하는 '총'의 몰락과 모순되는 또 다른 '총'의 몰락이 있었다. 총여학생회 폐지이다. 총여학생회는 약 30년 전, 학내 여학우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하지만 지난 2019년 1월 총투표를 통해 총여학생회는 사라졌다. 우리는 하나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총학생회의 복지화는 언뜻 다양성의 시대를 비추는 듯하지만, 한쪽에서는 다양성을 말소시키는 투표가 가결됐다. 학내에서 하나의 다양성을 담당하고 있었던 소규모 서사가 다수결로 인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모순에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연세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이 아닌 다수에게 '검증된' 다양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검증된'이라는 단어는 이런 뜻이다.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이 아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정된 범위 안의 다양성이라는 것. 타인을 향한 배려와 이해가 아닌 자기만의 편협한 이성에 근거한 '한정된 범위'라는 것. 이러한 검증된 다양성은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고 기만하는 요소이다. 총여학생회의 특정 선본 잘못을 빌미로 해당 선본의 퇴진이 아닌 총여학생회의 폐지를 주장한 순간, 끝내 총투표로 총여학생회 폐지를 가결했던 순간들은 그래서 연세 사회의 치욕스러운 역사로 분류될 것이다. 학우들이 제 손으로 다양성과 자유를 포기하고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획정지은 그 날의 결정을 말이다.

5학기, 2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연세춘추 기자라는 직함으로 학생사회에 참여했던 일원으로서 나는 2개의 총의 몰락을 지켜봐왔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지금의 총학생회도 이전보다 비권적 색채가 더욱 짙어졌고, 여전히 익명 커뮤니티 상에서는 특정인과 특정 가치관에 대해 무차별적 비난이 가해지고 있다. 볼테르가 의견의 동의 여부를 떠나 "당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는 말을 한 지 300년이 지났지만 나아진 건 없다.

노지운 총무국장(철학·17)  bodo_erase@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1
전체보기
  • 아이러니? 2020-03-30 17:57:42

    아래 댓글에 '사고 방식이 어디서 나왔느냐','멋있을 것 같아서 냐','언어에 사회성이 없다','부끄러운 것임을 알아라'고 하셨습니다. 논점이 아니라 댓글 글쓴이를 공격하신 것이 참 안타까워요.
    저는 1) '편향적' 이라는 비판은 가능하고, 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니지 않냐고 질문드렸습니다. 2) 이런 글을 막았어야 했다고 주장한 적도 없답니다.
    본 기사에 공감하신다면서 논점이 아닌 댓글 글쓴이를 공격하시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아이러니하군요. 댓글은 삭제하지 말아 주실 것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본 기사를 완성하는 것 같아서요.   삭제

    • 아이러니 2020-03-30 09:43:30

      이 기사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총학생회 집행부가 웃겨요를 달고, 기사를 '편향적'이라고 지적하는 게 이 기사가 여실히 맞는 말이라는 걸 너무 잘 드러내는 거 아닐까요. 웬만한 아이러니극도 이 장면보다 우스울 수는 없겠습니다 허허   삭제

      • 편향적 2020-03-29 02:55:50

        글 잘 읽었습니다. 허나 총여의 폐지가 다수에 의한 소수 말살, 다양성 훼손이라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네요. 2018년 인권축제때 남성 비하발언과 대처 그리고 투표 보이콧을 은근하게 외쳤던 그 민낯을 보고도 폐지,퇴진을 안 외칠수가 있었나요? 왜 자기들이 유리할때는 민주주의의 승리고 불리할때는 다수의 폭력으로 둔갑하는건가요? 대학 학보사가 다 그렇지만 이번 글은 유독 편향적이라는 느낌을 받네요.   삭제

        • 김정연 2020-03-28 21:23:55

          잘 읽었습니다. 오늘날의 연세에 꼭 필요한 기사네요.   삭제

          • 권아름 2020-03-28 16:30:46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학생회가 복지나 문화 등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생활에 도움을 줘야 하는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평등하고 다양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번 그리고 현재 학생회가 좋은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기에 좀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삭제

            • 글쎄요 2020-03-25 18:13:56

              10년, 20년 전에는 학생들의 욕구가 '총'이라는 관형사 아래에서 모두 묶였던가? 최근 코로나 관련 여러 문제, 재수강 등의 학사 문제, 총장 선출 문제는 '총'으로 안 묶이는 주제인가?

              전제부터 틀렸다. 총학이 몰락한 것 처럼 보이는건 시대 변화로 인해 총학을 발벗고 할 사람이 부족해 현재 실력이 없어서 그런거지 그런거지 총여학생회 폐지와는 관련이 없다. 몰락한건 실력이 없었던 총여뿐이다.   삭제

              • 잘 읽었으나2 2020-03-25 17:09:49

                '총'이 무너진 것은 결국 '학생 복지'조차 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운동, 여성운동만 외치던 '운동권'이라는 이익 집단 때문이지, 선대 총학이 만든 결과 위에서 어떻게든 총학을 살리려고 '처절한 몸부림'을 하는 후배들 탓을 할 것은 아닙니다.

                총여야 말로 제대로된 의결 기구조차 없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경쟁 선본도 수 개년간 없어 출마만 하면 간신히 당선이였죠.

                가장 치욕스러운 날은 학생회비 지원을 받는 대중 행사에서 다수 학생들의 염려를 '백래쉬'로 규정한 뒤 행사를 강행한, 바로 그 날이 아닐까요?   삭제

                • 잘 읽었으나 .. 2020-03-25 16:36:49

                  목소리를 내는 것과 기구가 어떤 자원(대표성, 예산,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특정 집단이 연세대학교 학생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지/없는지는 다수 학생들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지요. 그들이 대자보를 쓰고, 인권 축제를 열고, 학내 집회를 하는 것을 막은 자가 있나요? 오히려 반대 의견을 제시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단톡방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사건은 있었네요.   삭제

                  • 역시는역시 2020-03-23 14:40:42

                    대연세춘추 총무국장 노지운, 빠꾸는 없다   삭제

                    • 좋은 글입니다. 2020-03-23 13:55:08

                      잘 읽었습니다. 잊고 있던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다수에게 검증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 지금껏 단순하게만 느꼈던 부분들을, 이번 글을 통해 명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삭제

                      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