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신촌·국제캠
안전한 사회를 위해 범죄와 마주하다1세대 프로파일러 이수정 교수를 만나다
  • 박진성 김수영 조현준 기자
  • 승인 2020.03.22 20:29
  • 호수 1846
  • 댓글 0

범죄심리학 연구에만 20년을 몰두한 사람이 있다. 수많은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성범죄자 전자감독 제도에 앞장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 1세대 프로파일러이자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인 이수정 동문(심리·82)이다.

▶▶지난 2월 25일 우리신문사는 이수정 동문(심리·82)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범죄심리학을 통해 여성·아동 대상 범죄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 1세대 프로파일러다.

Q. 민주화운동의 열기로 가득할 때 학교에 다녔다. 당시 어떤 학생이었고 교정의 분위기는 어땠나.

이수정 교수(아래 이) : 교정의 분위기는 최루탄밖에 기억나는 게 없다. 수업 거부가 빈번하고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수업 시간에 사복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이 같이 수업을 듣는 등 전반적으로 삼엄한 분위기였다.

나는 수업은 꼭 들어갔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부당함은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운동권 동아리 내 반여성적인 분위기도 수용하기 힘들었다. 대신 신림동 고아원에 봉사를 하러 가는 교외 동아리로 눈을 돌렸다. 당시는 여자들이 대학에 많이 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내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아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깨닫게 됐고, 현실과 유리된 실험 심리학보다는 현장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Q. BBC 선정 ‘2019년 100인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 :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이춘재, 고유정 같은 범죄자의 심리 분석과 의견서 작성에 참여했다. 최근 ‘스토킹 방지법’ 입안 노력 등의 활동도 인상 깊게 비친 것 같다.

선정 소식을 듣고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심리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실천이 아닌 연구였기 때문에, 현장에 직접 뛰어들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배 연구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BBC가 그 시간들을 인정해준 것 같아 큰 의미가 됐다. 남은 시간도 지금처럼만 나아가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Q. 여성, 청소년, 아동 안전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 지금껏 주류 범죄학자와 법률가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여성인 내 눈에 보였을 뿐이다. 우리나라 형사사법 제도 내에서 피해자는 언제나 증인에 불과하기에 그들을 위한 사법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피해자가 눈에 들어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Q. 범죄 심리학자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이 : 제일 먼저 본 여성 범죄자는 배우자 살인범이자 평생 가정 폭력에 시달린 피해자였다. 범행 동기에 ‘부부 간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남편을 살해’라고 적혀 있었다. 평생 가정 폭력에 시달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수없이 오갔던 여자의 경험이 ‘앙심’으로밖에 반영이 안 된 것이다. 심리학자로서 나는 앙심이 아닌 ‘죽일 수밖에 없던 공포’로 봐야 한다 생각했다. 앙심에는 고의성이 있지만, 공포는 아니지 않나.

당시 형사들은 방위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순간을 앙심으로 쉽게 단정했다. 대부분 남자였던 강력계 형사들이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대변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고, 나마저도 피하면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실험실에서 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현장에 나가서 고생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여자가 아니었다면 외면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여자고,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Q.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같은 온라인상 성 착취 행위의 수사와 처벌이 어렵다고 알고 있다.

이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전혀 새롭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는 200개가 넘는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 성관계를 위해 청소년을 유인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소년 성매매, 성 착취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제 강간* 연령도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어린아이들의 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제도권 교육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착취라는 구조적 문제로 흘러든다. 그 구조 속에서 아동음란물이 범람하고 이것이 ‘텔레그램 N번방’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 성매매 사건을 다룰 때 청소년도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함정수사 기법 상 차이가 여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경찰이 ‘청소년’으로 위장해 온라인상에서 성매매를 시도하는 성 매수자를 유인한 후 그들을 처벌한다. 경찰이 ‘12살 가출청소년입니다. 잘 곳이 필요합니다’ 하고 글을 올리는 식이다. 아동 청소년은 보호 대상이니 보호 대상에 접근하는 성 매수자들을 처벌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찰이 ‘성 매수자’로 가장한다. 그렇게 청소년을 유인해 처벌한다. 그러고 나서 청소년의 성을 매수했던 사람들을 처벌하는 식으로 성매매 단속을 한다. 그러니 이것이 아동·청소년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Q. 전반적으로 강력범죄 양형기준이 낮다는 여론이 많다. 법과 국민 정서 사이 괴리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 양형기준은 이미 높아져 있다. 문제는 높여둔 기준을 재판부에서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선량한 젊은이를 범죄자로 만들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있어, 초범이라거나 대학생이라는 이유 등으로 형이 줄어든다. 그러나 매번 아동음란물을 들여다보는 자가 어떻게 선량할 수 있나.

Q. 전자감독 제도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 2018년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전자감독제도 도입 후 성폭력 재범률이 1/8로 감소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 있다.

이 : 우리는 형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성범죄자들을 전자발찌를 통해 보호 관찰한다. 문제는 보호 관찰관이 너무 적어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명의 관찰관이 많은 범죄자를 담당해야 해 대면 관리보다는 범죄자의 지리적 위치 위주로만 관리하게 된다. 전자발찌를 차고 집에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초등학생을 불러 범죄를 저질러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호 관찰관 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이다. 주의가 더 필요한 사람에겐 직접 방문함으로써 항상 주시하고 있고 감시 대상이라는 인식을 반복적으로 심어줘야 한다. 자발적 통제가 안 되는 이들에게 타율적으로라도 통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Q. 범죄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처를 입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 영미법 하에서는 범죄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범죄 피해자들이 ‘운이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이를 국가의 책무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미권 국가들은 범죄자에게 받은 벌금의 많은 부분을 피해 복구 예산으로 전환한다. 우리나라에는 ‘피해자구조기금’이라는 것이 있지만 벌금의 아주 낮은 비율만 쓰이고 대부분 법무부 예산으로 쓰인다. 피해자의 피해 복구를 위해 쓰지 않고 행정 예산으로 돌려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Q. 수십 년간 많은 범죄를 마주했다. ‘인간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 :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이고, 범죄자라 해서 다른 것은 없다. 다만 우리는 인간다운 행위를 하고자 교육을 받아 조절력을 얻었다. 범죄자들은 조절이 어렵게 타고났을 수도, 가정환경에서 조절력을 잃었을 수도, 교육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수없이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느낀 가장 중요한 진실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화 과정과 교육의 차이일 뿐이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해 한 마디 부탁한다.

이 :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힘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도 조바심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별생각 없이 성실히 살다 보니 지금의 지점에 도착했다. 그러니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 돕고 관심을 가지며, 성실히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힘냈으면 좋겠다.

*의제강간: 성교 동의 연령에 이르지 않은 사람과의 성행위를 강간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것. 기준 연령은 우리나라는 만 13세이며 미국과 영국은 만 16세 이상이다.

글 박진성 기자
bodo_yojeong@yonsei.ac.kr
김수영 기자
bodo_inssa@yonsei.ac.kr

사진 조현준 기자
wandu-kong@yonsei.ac.kr

박진성 김수영 조현준 기자  bodo_yojeo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