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죄의식 없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에 엄중한 처벌 필요해

여자는 사람이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단체대화방 안에서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해자는 그저 포르노일 뿐이라 말하지만, 피해자는 지옥이라 말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장난도, 포르노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여성들은 ‘우리의 삶은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텔레그램, 빠져나올 수 없는 성범죄의 늪이 되다

 

‘텔레그램 N번방’의 존재는 지난 2019년 말 언론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끔찍한 성착취 범죄가 자행되고 있음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텔레그램에 존재했던 8개의 단체대화방을 일컫는 ‘N번방’에는 운영자와 구매자가 있다. 운영자는 N번방에 여성의 성행위나 성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올린다. 해당 영상은 일정 코드를 입력하고 N번방에 입장해야 볼 수 있다. 구매자는 운영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코드를 받는다. ‘갓갓’이라는 운영자의 N번방을 시작으로 텔레그램 내에서는 셀 수 없는 성착취 범죄가 벌어졌다.

단체대화방에 업로드되는 영상은 운영자가 여성들을 협박해 받아낸다. 운영자는 다양한 경로로 여성들을 협박한다. 먼저 피해자의 SNS를 통해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찍은 사진‧영상 등 수위 높은 게시물을 올리는 ‘일탈계’를 운영하는 여성은 특히 협박에 취약하다. 운영자는 경찰을 사칭하거나 해킹 링크를 보내 일탈계를 운영하는 여성의 신상정보를 알아낸다. 해당 여성뿐 아니라 주변인의 정보까지 수집한 운영자는 부모나 지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밖에도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며 접근하기도 한다. 피해 여성 중 상당수가 협박에 취약한 미성년자 혹은 사회 초년생이다.

운영자는 피해자들의 약점을 빌미로 성착취물을 찍어 보내라고 협박하거나 이들을 강간하는 등 심각한 성범죄를 일삼았다. 구매자들에게는 영상과 함께 피해 여성의 신상정보가 제공됐다.

텔레그램 내 성착취 소문이 퍼지고 운영자들의 불법 수익이 높아지며 모방 범죄가 생겨났다. N번방에 업로드된 피해 영상을 공유하는 단체대화방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지난 2월에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모방한 범죄자 66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지난 17일, 텔레그램 내 성착취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운영자 ‘박사’가 검거됐다. 그러나 박사 역시 수많은 운영자 중 한 명일 뿐 사건이 일단락됐다고 보긴 어렵다. 텔레그램 이용자들은 또 다른 메신저 서비스인 ‘디스코드’로 도피해 범죄행위를 이어갔다.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 근절 프로젝트 ReSET’(아래 리셋)은 “N번방 사건의 주요 공모자가 검거됐다고는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채팅 플랫폼에서 여전히 N번방 성착취물이 공공연히 거래‧유포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N번방을 모방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해자들의 범죄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장소만 바뀌며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가해자의 놀이, 피해자의 악몽

 

‘웹하드 카르텔’, ‘텔레그램 N번방’ 등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신종 성범죄는 꾸준히 사회적 논란이 됐다. ▲여성 혐오 재생산 ▲피해자 신상 노출로 인한 피해 ▲경찰 대처의 어려움이 디지털 성범죄의 문제로 꼽힌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영상‧사진 유포를 통해 자행된다. 피해자의 직업과 나이 등 신상정보도 업로드된다.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다수의 성범죄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여성 혐오가 여실히 드러났다. 가해자는 성착취 영상을 시청할 뿐 아니라 피해 여성의 신상을 이용해 성적으로 욕보인다. 피해여성을 능욕하는 일은 대화방 안에서 놀이나 마찬가지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신성연이 활동가는 “피해여성을 얼마나 자극적으로 능욕하느냐가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의 기치”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텔레그램 N번방에서 시작된 온라인 성착취 네트워크가 여성 혐오를 연료로 한다며 비판한다. 가해자들이 여성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아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에게 언어 성폭력을 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얼굴과 신체 부위를 ‘스티커’로 만들어 단체대화방 내에서 사용했다. 신성 활동가는 “텔레그램에 업로드되는 영상은 가학적이고 잔인한 것이 많다”며 “‘여성 노예’에게 굴욕적인 행위를 시켜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단체대화방의 집단성과 실시간성은 디지털 성폭력의 기폭제가 된다. 수천 명에 달하는 참가자가 피해 여성의 촬영물을 보고 일제히 성폭력 발언을 한다. 성범죄를 놀이처럼 자행하는 단체대화방에서 피해 여성의 인격과 성범죄에 대한 죄의식은 말소된다. 신성 활동가는 “참가자들이 모두 성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죄의식은 옅어진다”며 “가해자들은 심지어 자살한 피해 여성을 모욕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피해 여성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피해 촬영물과 신상정보가 업로드되면 순식간에 퍼져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윤덕경 연구위원은 “피해영상물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피해자들은 언제 어디에 촬영물이 다시 업로드될지, 누가 영상을 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피해를 당한 후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상유포에 대한 공포는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가해자들로부터 경찰에 신고할 경우 영상을 퍼트리겠다는 협박을 당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포하는 일명 ‘지인 능욕’ 범죄가 대표적이다. 생소한 남성이 SNS 사진을 캡처해 유포한 사건부터 최측근 남성에게 피해를 입은 사건까지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상당수의 여성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지만, 피해 사실 자체를 모른 채 이에 대처하기란 어렵다.

경찰 수사가 어렵다는 점 역시 문제다. 가해자들은 수사망을 피하고자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웹사이트나 SNS를 이용한다. 이 경우 경찰이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확보하기 어렵다.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해외 기업이 우리나라 경찰 수사에 협조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엄격하게 보호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다.

단체대화방 폐쇄도 기업의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시민단체와 경찰, 방송통신위원회가 기업에 폐쇄를 요구하지만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 폐쇄가 늦어지는 동안 피해는 계속된다. 단체대화방을 ‘폭파’하는 데 성공해도 금세 새 단체대화방이 생겨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게 뭐가 문제야?”
가해자 웃고 피해자 울어

 

지난한 수사 과정을 거쳐 가해자를 검거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률이 부족해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판결을 받은 5천699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5.2%에 그쳤다. 판사가 유죄판결 후 형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사정을 참작해 감형하기 때문이다. 윤 연구위원은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는 법정최고형이 5년이지만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며 “징역형 선고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이 점점 교묘해지는 가해자들의 수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확보한 피해 촬영물 중 일상 사진을 도용 및 합성한 경우가 전체의 26.2%에 해당하는 1천33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음란물에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거나 지인의 사진과 함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성행하고 있지만 이를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없다. 사진에 피해자의 신체가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디지털 성범죄에 적극적인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성 활동가는 “수사에 적극적인 곳도 있지만,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텔레그램 지인 능욕 피해자가 서울 강남경찰서에 신고했지만 반려당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내 성착취 사건에 분노한 국민들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특화된 법률제정을 요구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강화 ▲디지털 성범죄 전담 부서 신설 ▲국제 공조 수사 강화가 골자다. 청원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서 논의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의 이름으로 지난 5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청원의 핵심 요구 사항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논란이다. 법안은 딥페이크(deep fake) 포르노 판매 가중처벌만을 다룬다. 이는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의 수법 중 하나일 뿐 디지털 성범죄 전반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다. 리셋은 “청원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법안이 졸속 처리됐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딥페이크 제작‧유포 외에도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성 활동가 역시 “디지털 성범죄는 한 명의 피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집단의 조직적 범죄”라며 “피해 여성의 고통과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필요가 있다”며 추가 입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소라넷’, ‘웹하드’를 거쳐 텔레그램까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려는 민관의 노력이 무색하게 범인들은 점점 더 교묘하고 뻔뻔해진다. 신성 활동가는 “디지털 성범죄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야 근절될 수 있다”며 “인식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 마련이 절실하다.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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