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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바로쓰기] 모래성 위에 세워진 여성 권익 신장의 꿈75년 만의 여성주의 정당, 시작부터 휘청휘청
  • 조현석 기자
  • 승인 2020.03.22 18:27
  • 호수 1846
  • 댓글 0

“이부진 사장님!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 더 사먹을 수 있도록 딱 1억만 돌려주세요. 한국 여성의 미래에 투자하세요.”

지난 10일 여성의당 트위터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재벌들의 이름을 부르며 1억 원을 투자해달라는 글이었습니다. 게시물 하단에는 류영숙 여성의당 행정국장의 개인 계좌도 있었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올라온 직후 거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자금법」 제31조에 따라 국내외 법인·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습니다. 법인·단체의 장 또는 구성원이 개인 자격으로 기부하더라도 연간 2천만 원 이상, 대통령후보자등후원회를 제외한 후원회에 연간 5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할 수 없습니다. 특정 정당 소속 인물이 개인 계좌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것 또한 불법입니다. 그러나 여성의당은 해당 사항을 모두 어겼습니다. 특정 기업의 대표에게 지원을 부탁한 것도, 지원받을 수 있는 규모 이상의 금액을 요구한 것도, 개인 계좌로 정치자금을 부탁한 것도 전부 위법입니다. 정당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기본적인 법안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논란을 만든 것입니다.


여성의당은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외에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등의 이름을 부르며 기부를 강제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기부는 개인의 자유에 달린 것이지 강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호명된 사람이 마치 여성의당에 빚을 진 듯한, “돌려주세요”와 같은 표현 역시 논란을 더했습니다.


비판이 계속되자 여성의당은 게시물을 삭제했고, 지난 11일 공동대표 7인의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여성의당은 사과문을 통해 “여성의당은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당원 모집과 창당이 이뤄져 조직 구성, 업무 여건 등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절박한 사정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다른 전략을 써보기로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여성의당은 특정 인물을 지목해 기부금을 요구하는 잘못된 행위를 정당 홍보와 자금 모집을 위한 전략으로 포장했습니다.


SNS로 인해 빚어진 논란은 여성의당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하면 아쉬운 행보입니다. 여성의당은 1945년 임영신 중앙대 초대 총장이 창설한 조선여자국민당 이래 첫 번째 여성주의 정당입니다. 75년 만에 등장한 여성의당은 대단한 포부를 갖고 창당됐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 해소와 동수민주주의 실현이 여성의당의 목표입니다. 국제의원연맹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7%로 전 세계 118위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하면 국회 의석의 83%를 남성 의원이 차지한 것입니다. 이처럼 국민을 위한 법안을 만드는 국회에 한 성별이 절대다수를 차지할 경우 편향된 법안이 우선 처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성의당은 여성을 국회에 진출시키기 위한 발판을 제공하고 국회 내 여성 의원의 자리를 늘리고자 합니다.


정계의 양성평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당 창당은 분명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여성의당은 포부를 실현하기 위한 토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급하게 창당됐습니다. 그 이면에는 오는 4월 15일 시행되는 21대 총선부터 적용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됨에 따라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거대 정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 30석을 가져가기 힘들어졌습니다. 덕분에 소수정당이라 할지라도 의석을 확보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런 특수성에 힘입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맞춰 정당을 만들다 보니 내실 있게 창당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월 1일 창당을 결의한 여성의당은 27일 동안 약 8천200명이라는 인원을 모아 3월 8일 창당됐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이 창당을 결의한 후 실제로 창당하기까지 약 5개월이 걸린 것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 내 모든 과정이 이뤄진 것입니다.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지를 보내는 당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이용하는 빠른 행동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를 통해 완성도 높은 정당을 만드는 것이 지지자를 위한 길이자 정당의 창당 의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입니다.

글 조현석 기자
justice_socio@yonsei.ac.kr

조현석 기자  justice_socio@yonsei.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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