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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 정말 '한국 문화'일까?문화 재생산을 통한 한국 문화 재정립의 필요성
  • 송정인 기자
  • 승인 2020.03.22 18:32
  • 호수 1846
  • 댓글 0

2020년의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문화 강국이다. 한국 문화는 예술, 문학, 음식 등 전 분야에 걸쳐 ‘K-culture’란 이름으로 세계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대한민국 안에서 향유되는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독창성과 정통성을 잃고 있다.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공연장과 콘서트홀에는 늘 관객이 붐비지만, 국악 공연을 위해 기꺼이 그만큼의 금액을 내는 관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한 시대에, 왜 우리의 전통문화는 한국 ‘안에서’ 그 위용을 잃게 된 것일까.

근대화의 뒤안길로 사라진 ‘유봉’들

지난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는 우후죽순 유입된 서구 문화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한 전통문화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1960년대 초, 팔도를 방랑하며 판소리꾼으로 살던 유봉과 그의 밑에서 판소리를 배운 의붓딸 송화는 일본 대중가요인 엔카와 서양 악단의 출현으로 무대와 관중을 잃는다.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수 역할을 해주던 의붓아들 동호까지 그의 곁을 떠났다. 유봉은 송화라도 자신의 뒤를 이어 소리꾼이 되어야만 한다는 집착으로, 송화가 소리 외에는 그 무엇도 마음에 두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멀게 한다.

“너 옆으로 폭포가 있다. 폭포 소리 들리재? 물도 튀겨지재? 차갑고 시원할 것이다. 눈은 암씨랑씨도 않은 것이여. 마음의 눈이 열리고 소리의 눈이 열리믄 온 세상을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여. 마음 다부지게 먹어. 너한테는 소리가 있잖여!”

눈먼 송화를 붙들고 외치는 유봉의 절규는 당시 벼랑 끝에 서 있던 전통문화의 처지를 투영한다. 대청마루 한가운데서 잔치와 춤마당을 시원한 창으로 호령하던 수많은 ‘유봉’들은 그렇게 밀려났고, 대중은 그 광경을 외면했다.

왜 지금, 다시 전통이어야 하는가

그 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한국으로 들어온 수많은 외래문화는 한국 문화를 색다르게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문화로 불리는 것들을 진정한 한국 문화라고 부르기 어려운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너무도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뒤에도 의문점은 남아있을 수 있다. 우리는 왜, 하필 지금,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힘을 쏟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중심에는 전통문화의 감소가 궁극적으로는 그 국가의 문화 도태 현상을 야기한다는 역사 속 근거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례로 16세기까지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성한 문화 수준을 보였던 만주족의 사례가 있다. 만주족의 수준 높은 불교문화와 만주족의 조상인 여진족이 만들어낸 여진 문자는 그들이 한 ‘문명’에 준하는 규모의 문화를 일궈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만주족이 한족과의 전쟁 끝에 승리해 청나라를 세운 뒤, 만주 문화는 한족 문화에 동화되고 만다. 대륙을 정복한 민족이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는 대신 새로운 문화에 눈 떠 고유의 문화를 뒷전으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만주족 고유 언어였던 만주어는 청나라 멸망 후 소수의 사용 인구만 남아있으며,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 2007년 중국 언어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빌려 공식적으로 만주어를 ‘사멸된 언어’로 발표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동화와 수용이란 명목 아래 고유의 독자성을 지키지 못한 민족의 문화는 결국 각인되지 못한 채 생명을 다한다. 또 아무리 전 세계가 ‘지구촌’이란 단어 아래 서로 연결돼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만의 문화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이 바로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 시점에, 우리 문화의 내적 고유성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 재생산’을 통한 전통과 현대의 조우

그렇다면 지구촌 전체, 특히 서구권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돼있는 현재의 한국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과거의 문화 요소와 현대 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문화 재생산’을 제시할 수 있다. 현시점에 요구되는 문화의 방향은 곧 한국적 미와 정서를 강조하는 동시에 시대와 대중의 변화에도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소식은 문화예술계에서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미약하게나마 관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 2012년부터 국립극장은 국립창극단·국립국악관현악단 등의 국립예술단체들과 협업해 지속적으로 전통예술의 세계화를 꾀하는 레퍼토리의 공연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또한 민화 또는 산수화 등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디지털 전시로 활용하는 미디어아트, 전통 문화유산을 우리나라가 아닌 장소에서 실제 전시하는 것과 같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홀로그램 기술 등 그 성공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문화 재생산의 성공과 발전을 가능케 할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들의 호응과 참여다. 전통과 역사를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대중의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유의미하고 지속 가능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미국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세상의 암흑이 얼마나 클지라도, 우리는 우리 각자의 빛을 찾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대중이 ‘가장 한국적인 빛’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의 한국 문화가 진정한 ‘한국 문화’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문장에 전 세계가 오래도록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글 송정인 기자
haha2388@yonsei.ac.kr

송정인 기자  haha238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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