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와 힙합을 논하다

“나를 진지하게 위로해 준 이는 래퍼들뿐이다.”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는 힙합의 효용에 대해 얘기하며 한 취업준비생의 말을 인용했다. “역경을 딛고 노력 끝에 성공한 래퍼들의 음악을 들으며 큰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힙합 음악에는 자수성가(Self-made), 허슬(Hustle)과 같은 자기 계발적인 요소가 많다. 거의 모든 래퍼의 노래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린 보기 좋게 해냈지 언제나 함께 해왔네 긍정의 에너지

90프로의 노력과 약간의 재능이 여기로 나를 데려왔지”

- 도끼, 더콰이엇의 「My wave」 중

 

이와 반대로 “힙합을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도 많다. 힙합의 여성 비하적인 요소 때문이다. 남을 비방하는 용도로 ‘bitch’ 등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쓰거나, 거느리는 여성의 숫자를 성공의 지표로 여기는 등 힙합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문제로 꼽힌다. 수많은 래퍼의 가사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고, 지난 2019년 12월에는 여성 래퍼를 성적으로 비하한 남성 래퍼에게 모욕죄 판결이 확정되기도 했다.

노력 끝에 꿈을 성취한 이야기로 귀감이 되기도 하지만, 문제적인 가사로 누군가에겐 폭력이 되기도 하는 힙합. 이 매혹적이고도 논쟁적인 음악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김씨는 글을 쓰고, 강연하고, 방송을 제작하는 등 힙합을 주제로 온갖 일을 하는 17년 차 ‘힙합 저널리스트’다. 총 17권의 힙합 서적을 펴냈고, 두 차례의 힙합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랩을 하지 않을 뿐 ‘글’과 ‘말’로 힙합을 한다”는 그에게 힙합에 대해 물었다. 힙합 특유의 자신감이 몸에 밴 그는 어떠한 질문에도 호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는 서적을 집필하고 힙합 영화제를 개최하며 힙합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어떤 일을 하는가.

A.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든 직함이니까. 음악 평론가로 불리기도 했는데, 두 가지 이유로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직함을 만들었다. 첫째, 평론가라는 직함이 가진 부정적 뉘앙스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평론가를 향한 좋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고루하다거나 대중과 괴리돼 있다거나. 물론 그렇지 않은 평론가도 있지만, 나는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치 않았다.

둘째, 평론가는 나의 활동을 정의하기에 협소한 단어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영화를 수입해 상영한 적도 있고, 라디오 방송을 제작하기도 했다. 지금은 대중과 플레이어를 잇는 음악 미디어 ‘매디’를 운영하고 있다. 힙합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나는,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전에 없던 직함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힙합 저널리스트다.

 

Q. 힙합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2003년 4월, 대학교 2학년 때 대중음악 웹진 『가슴』에 앨범 리뷰가 당선되면서 음악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힙합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 카세트테이프와 CD를 끼고 산 기억이 난다. 또, 내가 잘하는 것은 글쓰기다. 수학, 과학보다 영어, 국어 과목의 성적이 좋았고, 학교 백일장에 나가면 매번 상을 받았다. 대학생이 돼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내가 잘하는 글쓰기를 결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힙합 저널리스트가 됐다.

 

Q.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비결이 궁금하다.

A. 큰 어려움은 없다. 나는 모든 일을 ‘그냥’ 할 뿐이다. 하고 싶거나, 필요한 일을 찾아 그냥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힘듦을 힘듦이라 여기지 않는다. 비결 또한 없다. 나는 그냥 전에 없던 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10년 넘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성실히 살다 보니 래퍼들의 신뢰를 받는 힙합 저널리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같다.

 

Q. 이제 본격적으로 전문 분야에 대해 질문하겠다. 힙합은 무엇인가.

A. 제일 어려운 질문 같다.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는데 힙합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에너지 같다. 힙합의 기원에는 흑인들이 고난과 역경에서 출발해 자기의 인생을 바꾸려는 맥락, 즉 ‘self-made’ 정신이 담겨있다. 그래서 항상 바닥에서 정상까지 가는 것 같다.

 

Q. 최근 힙합 음악의 장르가 세분되고 다양화되고 있다. 최근 힙합 음악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A. 전통 힙합에 개의치 않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미국에서 인기 있는 젊은 래퍼들의 음악은 힙합의 전통과 무관하다. 랩을 안 하기도 하고 사운드도 이전과 다르다. 전통 힙합이 계승은 되고 있지만, 모양새는 많이 달라지고 있어서 앞으로의 힙합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이러면 힙합이 아니야”라고 치부되던 노래들까지 이제는 힙합으로 불리고 있다. 만약에 더 극단으로 가 힙합과 너무 멀어지게 된다면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Q. 음원사이트에서 힙합 음악이 매번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등 힙합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A. 힙합이 인기를 누리는 본질적인 이유는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의 매력에 있는 듯하다. 힙합은 다른 장르보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꾸밈없는 자기 고백이 많다. 그러한 진실성이 주는 리얼한 느낌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진실한 성격의 곡들이 청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힙합은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는 음악이다. 이에 많은 사람이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Q. 반면 힙합이 여성 등 소수자를 차별하고, 지나치게 물질 지향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A. 힙합에 분명 그런 요소가 있다. 그런 점에 있어 힙합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왜곡 없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힙합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힙합은 미국 역사에 기반을 두고 쌓아 올려진 미국 사회의 산물이다. 그 산물에는 성별과 인종을 잣대로 한 차별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만을 두고 힙합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한국의 일부 여론은 옳지 않다. 힙합의 세계는 굉장히 넓고 방대하며 복잡하다. 하나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그 이해가 부족하다. 아직도 온전한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기자들도 래퍼 혐오 논란에 대해 받아쓰기만 한다. 모두가 힙합을 깊게 이해하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힙합의 방대한 세계에 대해 균형 있는 조명이 수반되는 환경에서 칭찬도 하고, 비판도 했으면 좋겠다.

 

Q. 힙합 산업은 크게 팽창했지만, 아직 그 무대가 특정 플랫폼 및 프로그램에 국한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

A.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유튜브로 나온 힙합 프로그램 ‘다모임 랩게임’ 4부에서 자세히 나와 있다. 영상에서 래퍼 염따는 “시작이 어디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모든 프로그램과 플랫폼, 더 나아가 힙합의 대중화를 가능케 한 시작이 래퍼와 힙합 그 자체란 뜻이다. 따라서 힙합의 성장은 유명매체에 의해 선택받는 것이 아니다. 래퍼와 음악 그 자체가 만들어낸 바이브와 움직임이 성공을 결정짓는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힙합을 좋아하는 대학생‧청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A.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힙합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악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힙합의 정신질환 완화 효과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나도 정신의학 전문의와 함께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대중 또한 힙합의 어두운 면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면모를 편견 없이 바라보며 즐겨줬으면 한다. 힙합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한국힙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지난 1월 24일 출간된 『래퍼가 말하는 래퍼』를 추천한다. 김씨의 17번째 단행본이다. 이 책에서 김씨는 창모, 더콰이엇, 팔로알토 등 7명의 현직 래퍼와 일리네어레코즈 장한별 이사, 힙합플레이야 김용준 대표 등 9명의 힙합씬 종사자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래퍼로서의 생활, 래퍼가 갖춰야 하는 자질, 『쇼미더머니』 이후 힙합씬에 대한 고민 등 ‘리얼’한 힙합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일례로 래퍼 창모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작업실로 간다며 이렇게 말했다.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아마추어예요. 프로는 번뜩이는 곡과 가사를 계속해서 내놓아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요. 매일 규칙적인 삶을 살며 계획적으로 곡을 만들어야 하죠.” 내부자의 시각에서 날 것 그대로의 ‘국힙’을 느끼고 싶다면 펼쳐보길 권한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송정인 기자
haha2388@yonsei.ac.kr

사진 홍예진 기자
yeppeuj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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