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년들은 왜 힙합에 열광하는가

2020년, 대한민국 대중에게 힙합이라는 장르는 어떤 이미지일까. 아마도 청년들이 술잔을 들고 비트에 맞춰 춤을 추거나, 신촌이나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사회 속에 녹아든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별개로, 힙합은 이미 한국 청년 문화의 한 축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힙합은 어떻게 청년들을 대표하는 문화가 됐으며, 이들이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2년, ‘국힙’의 시작

 

힙합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를 통해 처음 대중에게 소개됐다. 이 시기의 곡들은 대중성을 고려해 댄스와 힙합을 결합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므로 이때의 힙합을 완전한 힙합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170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대중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통 힙합을 탄생시켰다고 인정받는 가수는 힙합 듀오 ‘듀스’다. 이들의 데뷔곡 「나를 돌아봐」는 이전 국내 가요계에서 접할 수 없었던 강렬한 비트와 자메이칸 래핑으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듀스의 등장은 한국 힙합의 무대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에 힘입어 타이거 JK, 윤미래, 김진표 등 힙합 대가들이 데뷔할 수 있었고, 이들을 롤모델 삼아 등장한 래퍼들은 한국 힙합의 성장을 이끌었다.

 

언더와 오버, 그 경계가 희미해지기까지

 

1992년부터 대한민국 힙합계에는 수많은 래퍼가 데뷔해 음반을 발매했다. 그러나 힙합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란 이름표를 달고 청년 세대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까지도 힙합이란 장르엔 여전히 ‘마니아’, ‘마이너’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힙합의 대중화가 유독 더뎠던 이유에는 래퍼들의 뇌리에 자리한 힙합의 기본 정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힙합은 본래 ‘가난한 음악’이란 표어 아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담아 부른다는 정신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장르다. 이에 입각해 래퍼들은 ‘진정한 힙합이란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지 않은 채 오직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란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또 이들은 대중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채 음반 및 믹스테이프(Mix-tape)* 제작, 공연 활동에 집중하며 ‘가난한 음악’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곧 이들은 방송에 출연하며 곡 제작 과정에서도 대중성을 감안하는 ‘오버그라운드’(아래 오버)와 기존의 힙합 정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언더그라운드’(아래 언더)로 나뉘었다. 언더 래퍼들은 오버 래퍼들이 돈을 벌기 위해 힙합 정신을 포기했다고 비난했으며, 그들의 자부심 섞인 비난은 언더와 오버의 극명한 대립구조를 양산했다.

2012년 시작된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는 이러한 평행 구도에 큰 변화를 일으킨 전환점이다. 『쇼미더머니』는 ‘국내 최초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슬로건 아래 현재 한국 힙합의 주류에 있는 수많은 래퍼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쇼미더머니』의 등장은 오버와 언더의 경계를 희석함과 동시에 한국 청년 세대에게 대중문화로서의 힙합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과거 직접 공연장을 가거나 앨범을 구매해야만 들을 수 있던 언더 래퍼들의 음악이 대중의 시야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는 힙합이란 음악 장르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더불어 힙합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환기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과거 대중들이 힙합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서구 힙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머니 스웩(Money swag), 여성에 대한 비하 등 부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쇼미더머니』에 등장한 여러 래퍼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적 가사를 통해, 힙합이 가지는 진정성과 솔직함이 대중에게 확실히 전달됐다. 이러한 요인들이 한데 모여, 『쇼미더머니』의 성공 이후 비슷한 여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힙합이 각종 대중매체에서 각광 받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며 힙합의 대중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가사 속에 녹아있는 청년들의 삶

 

힙합은 대한민국에서 태동 후 오버와 언더 간 대립의 격동기를 거쳐,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의 한 축에 자리 잡게 됐다. 대중매체의 힘을 빌려 일시적으로 주목받은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청년들이 힙합에 마음을 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의 한가운데에는 ‘공감’이란 단어가 존재한다. 다른 장르와는 달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가 녹아있는 힙합 장르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방황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송민호 「겁」 中), 삶 속에서 차마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아픔에 대한 묘사 (‘앞에만 가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이사를 간 집 모양도 모르는 거야 미안해’ 빈첸 「전혀」 中), 인간의 존재 이유가 막연해지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모순 가득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불편함과 동질감, 나 그 두 감정의 딱 중간에 서 있지만, 거짓말들만 주고받는 우리가 참 불쌍해’ 우원재 「또」 中) 등이 그 예다. 이와 같은 ‘남 일 같지 않은’ 고백이 담긴 힙합에, 청년들은 반가움과 고마움을 느끼며 다가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조차 꾸리기 벅찬 청년들에게, 힙합은 단순한 장르 이상의 존재가 되고 있다. 그들에게 힙합이란 위로이며 공감이다. ‘진정한 힙합은 자신의 삶 전부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힙합 정신은 현실에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청년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힙합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을 단순히 ‘대중화’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믹스테이프(Mix-tape) : 힙합, R&B, 레게 등의 음악 장르에서 다른 가수의 곡에 리믹스해 발매하는 카세트테이프의 일종

 

글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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