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특집
[2019 연세문화상] 스탠바이

[박영준 문학상(소설 분야) 당선작]

스탠바이

윤종환(문정·14)

*

가끔 내가 탄알이 가득 찬 총 같다는 생각을 한다. 총이 되기 싫지만, 이 형상을 자처한 적 없지만 어느새 되어 있다. 언제든 장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누구라도 겨냥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전쟁 같은 이 세계를 살아가는 만반의 준비이자 탄생의 신호탄 같은 것이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용기 있는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그곳을 버텨낸 이들이 남기는 희망의 메시지. 앞으로 더 나은 우리의 사회생활을 위한다며 전하는 간절한 충고이다. 이 말들을 듣자니 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생긴 것인지 내가 알지 못한 기존의 감정에 덧입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형용할 수 없이 뒤섞인 안도와 불안, 공포와 자신감, 현실과 이상이 나를 조립한다. 조립식은 복잡하지만, 동시에 정교하고 내밀하다.

나는 걸어 다니는 받들어총 자세다. 이 자세로 매일을 걷자니 제법 무겁다. 무게를 덜어내고 싶다. 내 안을 비워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발 씩 쏴야 한다. 무엇인가 대상을 겨누고 탄환을 발사한다. 목표를 만들어야 하고, 조준을 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을 위해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어쩌면 겨냥하기 위해 먹는 것인가. 나는 정녕 보호와 유지를 위한 기계인가, 살상과 경쟁을 위한 도구인가. 언제나 긴장해야 한다. 실수와 용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잘못 쏜 한 알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잘못 조준한 한 시선은 누군가에 상해를 입힌다. 언제나 성공해야 하고, 명 조준해야 한다. 실패는 얼마간 생명과 맞바꿔진다. 총이 된 자들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총 하나의 무게와 함께 도보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일이다. 피로한 일과 피로한 사회. 내 안에 가득한 탄알을 비워내야 한다. 그러나 비워내면 총은 더 이상 총이 아니다. 쓸모없는 몸뚱이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 나는 다시 내 안에 탄알을 채우고 언제든 장전을 할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는 왜 늘 준비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왜 총처럼 기능적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의 밖에는 총의 모습을 한 수많은 다른 이들이 보인다. 거리에 무수한 받들어총들이 지나간다. 집에도, 학교에도, 대학에도, 사회에도 우리는 내면에 숨겨진 저격수를 얼마간 강요받으며 산다. 차갑다. 나를 이루고 있는 조각, 부품들이 차갑다. 언제 뜨거워질 수 있는가. 총이 된 채로 생각한다. 장전. 그리고 발사. 발사하는 가운데에 생겨난 폭발적인 에너지. 이 에너지야 말로 차가운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동력 같은 것일까. 이 빌어먹을 심장과 빌어먹을 몸. 나는 전쟁이란 개념보다 늦게 태어난 생명이다.

*

윤의 입대 일은 3월 2일이었다. 꽃샘추위가 기세를 부려 바람이 매서운 때였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줄곧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왔을지라도, 햇볕을 빙자한 바람의 사기극에 속아 넘어 감기에 들기 십상이었다. 호흡기가 좋지 않은 윤은 입대 이틀을 앞두고 몸살감기에 걸렸다. 감기는 실패한 작전의 대가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고부터 시작도 안 한 군 생활의 고난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요즘 군대가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낯선 땅 낯선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훈련을 받는 것은 상상만 해도 힘든 일이었다. 가뜩이나 자의로 나선 것도 아니었다. 이때쯤이면 가야할 것 같은 무언의 압력에 떠밀리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필수조건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가진 건 디지털 무늬의 전투복 밖에 없는 군대 초임에게는 몸 하나가 전부인 셈이었다. 그런데 전부인 몸 하나가 아프다니. 그런 생각을 하니 윤은 금세 우울해졌다. 아직 훈련소가 있는 경남 진해에 가지도,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지도 않았다. 훈련소로부터 백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인천에서, 그는 아픈 것을 인생의 큰 고난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인근 내과에 들러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 받은 후 며칠 푹 쉬면 나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조직의 낙오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불안이 철모처럼 윤의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에 열이 오르고 있었고, 시간은 늘 그렇듯 자연스레 흐르고 있었다. 병원에 가보자니 입대 하루 전인 삼일절은 공휴일이었다. 인근 편의점에서 사 먹고 하루 만에 병이 낫는, 종합감기약의 숨겨진 효능을 기대할 뿐이었다. 윤은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진해로 내려갈 짐들을 싸고 있었다. 그때 윤의 생부가 약간 흥분한 어조로 걱정하는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몸 관리를 잘 했어야지. 옷도 두툼하게 챙겨 입고 말이야.”

“내가 감기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건 아니야. 세상에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윤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의 신경은 이미 곤두서 있었다. 입영전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범하고 당당한 척을 하면서도 속으로 끓어오르는 불안을 곱씹는 것이 입대 전 날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가뜩이나 우울한 윤에게 입대 코앞에서 들리는 부모의 걱정은 잔소리에 불과했다. 어쩌면 감기 바이러스가 온몸을 다해 걱정을 잔소리로 듣도록 명령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이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윤의 이성은 이미 훈련소에 내려가 있었다. 어찌하면 이 아픈 몸뚱이를 이끌고 훈련소를 잘 수료할 수 있을지 걱정할 뿐이었다.

“전자레인지 위에 쌍화탕 올려놨으니까, 출발하기 전에 데워서 마시고 가.”

“그래서 감기를 막기 위해 평상시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건데? 두껍게 옷 입고 운동 열심히 하고 밥 잘 먹어도 감기 걸리는 사람은 많은데.”

“뭘 물어 봐. 걸리는 사람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얼른 짐 챙기고 빠뜨린 거 없는지 체크해.”

“아플 환경과 때를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윤은 입대에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챙겨 가방을 맸다. 그 속에는 입영 통지서, 신분증, 나라사랑 체크카드, 로션, 선크림, 필기구, 수첩 등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알림장에 준비물을 기록하고, 시험과 면접을 수차례 보면서 늘 준비물을 챙겨왔다. 중학생 시절부터는 알림장 같은 건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준비할 것들은 복잡하게 등장했으며, 끊임없이 제시되었다. 그때마다 펜으로 기록하거나, 핸드폰에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혹은 통으로 암기해오며 쉽사리 놓치지 않았다. 그때 그의 가방으로 계모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가방 속에는 꿀생강차 티백이 몇 개 담겨있었다. 가끔은 예상 밖의 준비물이 생기기도 한다.

“진해 내려가서 타 먹으라고. 저녁 먹고 한 잔, 밤에 자기 전에 한 잔. 그리고 혹시 몰라서 다음 날 아침 것까지 넣었어.”

“알겠어. 고마워.”

윤은 가족들과 함께 인천종합버스터미널로 나왔다. 부모가 미리 예매한 마산·창원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제법 앞자리인 좌측 창가 쪽 7번 좌석이었다. 버스가 정시에 출발했고, 그는 멀어져가는 인천의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늘 보던 풍경들이 점차 속력을 내며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낯익은 것들도 속도가 겹쳐지면 낯설게 보이는 구나. 나는 얼마나 낯선 것들을 지나쳐 왔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가는 낯선 곳은 어떤 속도로 지나갈까.’ 그는 초점 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햇볕이 강하게 들자 커튼을 쳤다. 핸드폰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군 입대를 위하여 3월 2일 오후 1시부터 자동 비활성화를 예약해놓은 스마트폰이었다. SNS를 들여다보니 개강을 하루 앞두고 분주한 대학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옷을 입을지, 동기와 어떤 음식점을 갈지, 어떤 수업을 신청하고 어떤 수업을 철회 할지, 그리고 이번 학기는 또 어떻게 버텨낼지. 설렘, 회피, 반가움, 지루함 섞인 저마다의 계획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윤은 온라인 피드에 쏟아지는 계획들을 읽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혹시 감기가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제법 깊은 잠에 들었다.

*

“이제 자녀분들과 애인을 들여보내 주십시오. 필승 해군, 명예 해군이 여러분의 귀한 아들과 애인을 별 탈 없이 훈련시킬 것을 약속합니다.”

진해 해군 기초군사훈련단 대운동장 스피커로 어느 군인 간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운동장은 어수선했다. 울고 있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엎드려 절을 하는 사람, 입맞춤을 하는 사람, 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리의 절반은 살갗이 하얗게 드러나도록 빡빡 깎은 머리로 있었다. 윤은 입교를 환영한다고 쓰인 훈련소 철문 입구를 바라보며 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까슬까슬하고 삐죽한 것들이 나 있고, 제법 촘촘하기도 했다. 문득 휑하고 부는 바람에 느껴지는 공허함 같은 것이 듬성듬성 만져지기도 했다.

“나도 이만 들어가 볼게. 죽으러 가는 거 아니고, 전쟁도 날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훈련소 6주면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


“이거 들고 가져가서 몸 어디에 꼭꼭 숨겨놨다가 우려먹어.” 윤의 계모는 주머니에서 꿀생강차 티백 하나를 꺼내 윤에게 건넸다.


“됐어. 이런 거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큰 일 나. 집에 조심히 올라가.”

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직한 말로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능한 빠른 걸음으로 훈련소 철문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가다가 뒤돌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들고는 있는데 가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오는 입대 동기들과 철문 앞까지 따라오는 수많은 인파 때문에 윤의 부모는 가려진 듯했다. 그래도 윤은 평소 보다 조금 오래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자마자 참았던 기침을 여러 번 토해냈다. 목에 심장이 있는 것 같이 펄떡펄떡 거렸고, 가슴부터 머리끝까지 쿵쿵 울렸다.

윤은 수 시간 동안 입소 절차를 밟았다. 입영통지서와 나라사랑 카드를 제시하며 새로운 훈련 번호를 부여 받았고, 각종 군인 피복과 물품들을 전달 받았다. 각종 설문지와 정신 검사 질문지, 인사기록카드를 작성하였고 키, 몸무게 측정 따위의 신체검사도 받았다. 복명복창 방법을 간단히 교육받았고, 훈련소라는 사회에서의 특수 어휘를 지도 받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말하는 방식을 새롭게 익혔다. 윤은 이름을 말하기 전에 큰 목소리로 ‘1중대 5소대 48번 훈병’이라고 외쳐야 했다. 자기 이름보다 ‘1548’이라는 네 자리 숫자가 앞서 제시된다는 약속도 따르게 됐다. 구구단 공식처럼 툭하면 나오도록 외워야 했지만, 윤은 몸에 힘이 부족했고 학교에 다닐 때처럼 암기도 잘 되지 않았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고, 머리엔 미열이 감돌고 있었다. 목이 쉬어갔다. 하지만 윤에게는 첫날부터 새로 들어간 곳에서 아픈 사람으로 보이는 것만큼 못 견딜 병은 없었다. 그는 가능한 힘을 주어 속부터 올라오는 기침을 되삼키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상급자의 말에 대답하였다. 틈이 날 때마다 ‘일오사팔 훈병’을 속으로 외우며 스스로 제 몸에 항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스로와 고군분투하던 그가 동기들과 줄을 맞춰 생활관 복도에 나란히 앉아 있었을 때였다.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이 들어와 윤이 속한 5소대의 훈련병 모두의 이목을 한 데 끌어 모았다.

“5소대!”

“예!”

“더 크고 짧게 말한다. 5소대!”

“예!”

“이것들 봐라. 다들 군대에 들어올 때 어떤 준비자세를 갖추고 들어 온 거야! 목소리들이 이렇게 작아. 모두 엎드려뻗쳐.”

“엎드려뻗쳐!”

윤은 자신의 목이 찢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큰소리로 대답했다. 자기의 옆 사람도, 앞뒤 사람도 윤의 귀를 찌를 듯이 대답했다. 소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오 분 여간 엎드려뻗쳐 자세로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자, 지금부터 교관이 간단한 조사를 하겠다. 해당 되는 사람은 조용히 손만 든다. 알겠나.”

“예!”

“자, 지금부터 본인의 가족, 친척 중에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군인, 그리고 경찰 있는 사람 손을 들어 귀에 붙여.”

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어 명이 손을 들었다. 그들의 눈치를 보고 몇몇의 사람들이 따라 손을 들었다. 어정쩡하게 손을 드는 사람도 보였다.

“거기 너부터 관계 밝히고 해당 가족 및 친인척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과 지위, 계급 등을 가능한 짧게 말해.” 엄숙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오이삼 훈병 강신후. 아버지가 해군 2함대에 계시고 중령이십니다.”

“일오삼칠 훈병 천홍섭. 어머니가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기자이십니다.”

“일오육팔 훈병 이경로. 삼촌이 해양경찰로 근무하고 계시고, 계급은 총경입니다.”

그들의 대답은 버벅거림이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준비해온 멘트 같았고, 이 순간을 위해 갈고 닦은 듯 매끄럽게 튀어나왔다. 정교하게 각 맞춰 떨어지는 굵고 짧은 말이었다. 대학 면접 시간보다 더 긴장감 넘치는 순간. 윤은 이들이야말로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입대 전 안내사항에 친인척 관계 사항 알아오라는 말은 분명 없었다. 윤은 이들을 준비물을 잘 챙기는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다가도, 허가되지 않은 물건을 들여온 밀수꾼처럼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꿀생강차 티백 하나 양말 안에 넣어오는 건데.’하며 침을 삼킬 뿐이었다. 교관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그들의 이름과 발화 내용을 받아 적었다. 그도 준비물을 적는 것 같은 정교한 자세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 불안한 눈빛으로 손을 든 한 훈련병이 대뜸 손을 들며 한 마디 했다.

“일오칠구 훈병 이로운. 가족이나 친인척은 아니지만, 오래 만난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서 지역구 국회의원이십니다!” 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모두의 이목이 이로운에게 집중됐다.

“그래? 좋다. 여자 친구라 했지. 여자 친구 예쁘나?”

“예! 예쁩니다!”

“시끄럽다. 조용히 얘기해라. 눈치 없는 놈을 봤나. 여자 친구 사진 가지고 왔나.”

“예! 사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여자 친구 사진 얼른 꺼내 와라.”

그리고 그는 허겁지겁 자신의 소지품을 뒤져 애인 사진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애인의 동성 친구들 사진을 모조리 가져왔다. 그리고 완벽히 준비된 사람의 미소를 보였다.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은 사진 여러 장을 하나 둘 유심히 넘겨보았다. 그러다 한 사람의 사진을 들어 올리며 이로운 훈련병에게 되물었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이 네 여자 친구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만난 지는 얼마나 됐고. 아버지는 어디 국회의원인지 말할 수 있나.”

“만난 지는 이 년 쯤 됐으며, 아버지께서는 부산광역시 XX구 구의회 의원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교관은 그의 이름과 그의 애인에 대한 정보를 수첩에 적지 않았다. 해당 훈련병에게 그는 몇 살인지, 애인은 몇 살인지 물을 뿐이었다. 그 외에 별다른 명령이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알았다. 사진 돌려받고, 원래 위치에 가서 앉아라.”

묵묵히 제자리에 돌아와 앉은 이로운의 낯빛은 점차 가라앉았다. 교관은 무전기로 “5소대 완료됐습니다.”라고 무전기에 응답한 후, 사라졌다. 동기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로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있었다. 그 양 옆에 앉은 동료들에게 사진을 나누어주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윤은 점차 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목에 있던 통증은 머리통을 뚫고 나올 것처럼 퍼져 코끝으로 전이됐다. 눈에 얼마간 힘이 풀려 전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훈련병들을 쳐다봤다. 그 옆으로 ‘건강한 체력. 체력은 국력’이라는 생활관 표어가 보였다. 윤은 아무것도 제대로 가지고 온 게 없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무사히 완수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은 과연 진실일까 고민했다. 한편, 윤은 그들을 내심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가 준비할 수 없는 것들을 잘 다듬어 오는 동기들의 유연한 솜씨와 능력을 부러워했다. 그 능력이 본인 태생의 것이 아닐지언정,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한 집단에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처럼 생각됐다. 전쟁이 나면 그들의 무기가 가장 큰 파급력을 일으킬 것이라 짐작했다. 그들의 정교한 입모양과 발음, 눈빛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건강했다. 그에 비해 윤은 끊임없이 열이 오르는 존재였다. 기침은 점점 거세졌고 횟수도 잦아졌다. 이로운을 보면서 윤의 심장이 더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겠지.’ 이해를 시도하지만, 이해를 하기에 이미 바이러스는 윤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도록 혈관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이로운의 애인이 이 사실을 알까.’ 윤은 참았던 기침을 거듭 토해낼 뿐이었고, 주위 훈련병들은 윤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

입대 2주차 월요일. 입대한 훈련병 전원이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정훈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군인으로서 가져야할 책임과 태도 같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윤은 교육장에 들어서며 지루한 상상을 했다. 얼마간 틀에 박혀 진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안보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희생한 영령들을 기리고, 그들을 본받으며 우리도 그들처럼 용맹무쌍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장병들이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것. 시험 보면 까먹고 마는 지식 같은, 최초의 살상 무기 개발자를 외우는 광경을 예상했다. 입대 전 인터넷을 검색을 통해 이러한 내용이 전개되리란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윤은 미리 관련 정보를 수집해 어느 것을 버리고 취할지 미리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떤 군인이 가장 사람을 많이 죽였는지, 얼마나 정확히 머리를 조준해서 총알을 관통시켰는지, 총의 개머리판으로 목 관절을 으스러뜨렸는지 따위의 끔찍한 이야기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교육장인 대강당의 무대 위로 제법 무게가 있어 보이는 간부가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신을 주임원사라고 소개했다.

“밥들은 잘 먹었나. 밥 먹었으니까, 목소리 크게 낼 수 있지.”라는 말을 시작으로 정훈교육이 시작되었다. 주임원사는 연달아 ‘편하게’를 반복했다.

“얘들아 편하게 들어, 편하게. 이 삼촌은 막 너네 힘들게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거 아니야. 이 삼촌이 재밌는 거 하나 보여줄까?”

주임원사는 허리에 찬 무전기 하나를 뽑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무전 신호만 보내면 훈련병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교관들 누구든 30초 안에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7소대 소대장인 교관을 호출했고, 해당 교관은 긴급 명령 대기조처럼 17초 만에 강당 무대로 올라왔다. 어떤 일이십니까, 하고 묻는 교관의 말에 주임원사는 ‘아니야’ 대답뿐이었다. 급히 달려온 교관은 홀연히 강당을 나갔다. 주임원사는 강단에 서서 조금 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때? 나 이런 사람이야. 재밌지? 이번엔 몇 소대 소대장 한 번 불러볼까? 한 번에 총집합 시키고 선착순으로 누가 일, 이, 삼 등으로 오는지 해볼까?”

천 명이 넘는 훈련병들은 정말 편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계급 가장 말단에 있는 자신들을 억죄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누른 후의 웃음 같았다. 윤은 옆에 있는 동기 훈련병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왜 하나도 재밌지가 않지? 넌 재밌어?”

“응. 난 재밌는데? 근데 진짜 저 사람 얼마나 높은 사람일까. 무전기 하나만 가지고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잖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근데 이제 갓 들어온 훈련병이 뭘 할 수 있겠냐. 구경이라도 해야지. 존나 웃기네.”

윤은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당장 쥐락펴락할 것 같은 상급자에게도 더한 상급자가 있구나. 우리가 준비태세를 갖추어 언제나 각진 모습만 보여야 하는 사람도 깍두기 같은 머리를 직각으로 조아릴 준비를 하며 사는구나.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도 언제나 웃길 준비가 된 채로 사는구나. 그런데 정작 만반의 준비를 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 윤은 무전기를 찬 교관의 허리가 어쩌면 저들의 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척추를 곧추 세우게 하고, 몸의 균형감각을 좌우하며 직립보행의 생존체로 성립하게 하는 허리.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 꿋꿋하게 펴야 하는 허리가 자신에게도 달려있다는 사실에 얼마간 슬퍼졌다. 직선의 허리로 누군가의 메시지와 신호를 들어야 한다. 그 사회적 신호에 대한 응답은 언제나 빠르며 신속하다. 항상 곤두선 자세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잘 들어야 자격이 생기고, 집중해 들어야 조건이 생기며, 자세히 들어야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들으면 기회는커녕 낙담만이 기다리고 있다. 윤에게 허리는 전쟁 같은 현실에 필요한 우선적인 준비물처럼 느껴졌다. 그때 주임원사가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여기에서 사회에 있을 때 내가 돈 좀 모았다, 저축 좀 했다 하는 사람 있나? 혹시 오백만 원 모았다는 설마 한 번 손 들어봐.”

그러자 약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주임원사는 칠백만 원, 천만 원 액수를 높여가며 끝까지 손을 들고 남아 있는 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이백만 원에서 손을 든 사람이 다섯 명 남았을 때, 주임원사는 바지 주머니에서 몽쉘 초코케이크 파이 한 봉지를 꺼내 들며 가장 많이 저축한 이에게 주겠다고 선포했다. 당첨자는 삼천오백만 원을 모아두고 입대한 4소대 박수웅 훈련병이었다. 박수웅은 주임원사에게 초코케이크 파이를 받기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달콤한 입맛 하나를 얻기 위해서여도, 사전에 거금의 돈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한 개에 오백 원 밖에 하지 않는 초코케이크 파이를 위하여 박수웅은 삼천오백만 원 상당의 밑천을 모아둔 셈이었다. 윤은 뜨겁게 달아오른 목 너머로 기침을 삼키고 내뱉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박 훈련병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이십 대 초반에 그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졌다. 궁금증에 대한 답을 그자에게 들을 수 없으니, 이내 부러움이 생겨났다. 한편으로는, 군대에서 그의 소지금액을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 박수웅이 우리 모두를 속인 것이란 의심까지 했다. 그러다 이 모든 정황이 사실이든 아니든, 윤 자신은 정작 준비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부딪쳤다. 진실이라면 그만큼의 돈을 모으지도, 거짓이라면 그만큼의 깜냥과 자신감을 모으지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기회,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온 박수웅에 어깨동무를 하며 주임원사는 의례적인 한국인의 질문들을 나열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가족관계 같은 것들. 돈 많아서 부른 것이니, 그 돈을 어찌 벌게 됐냐는 질문도 했다. 박수웅은 열심히 아껴서 모았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때 주임원사가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사귀는 여자 친구는 있나?”

“예! 있습니다!”

“사귄지 얼마나 됐나?”


“일 년 반 정도 됐습니다!”


“일 년 반? 오래 사귀었네. 여자 친구 보고 싶지?”


“예! 그렇습니다!”

주임원사는 한 손에 초코케이크 파이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박 훈병의 여자 친구와 즉석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박수웅의 시야에서 핸드폰을 쥐고 흔들며 몇 가지 질문을 더 이어갔다.


“여자 친구랑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나?”


교육장에 앉아있는 훈련병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박수웅은 몇 번이고 주임원사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갈 데까지 다 갔습니다!”


“짜식 봐라. 평상시에 끼고 했어 안 끼고 했어?”


주임원사의 질문 수위는 도를 넘어서가고 있었다. 그는 이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였다. 윤은 훈련장 한 번 훑어보았다. 누군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회색빛 뒤통수들이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있었다. 곧추 선 허리만큼 귀가 열려있는 듯 보였다. 똑같이 생긴 그 머리통이 결국은 자기의 것과 닮았을 것이란 사실에 힘이 빠졌다. 속에서 끊임없이 기침이 올라오고,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래가 끓어오르고 목에 칼칼함이 돋아났다. 그러나 모두가 주임원사와 박수웅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윤은 일제히 웃음으로 반응하는 교육장의 사람들 틈에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만 있는 자신을 온몸으로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떨어지려는 콧물을 추켜 들이마시고, 목구멍을 역류하여 올라온 가래를 되마시며 기침을 참을 뿐이었다. 식은땀이 나는 듯했고, 따뜻한 물을 마셔 목을 축이고 싶었다.


“보통은 끼고 하지만, 안 끼고 하니 더 좋습니다!”


주임원사는 시원하게 웃고 있었고, 박수웅의 오른 팔에는 초코케이크 파이가 쥐어져 있었다. 훈련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무리 군대여도 정말 미친 거 아니……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윤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의 좌우에 앉은 동기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윤은 심호흡을 하고 다시 생각했다. ‘정훈 교육, 정훈 교육, 지금은 정훈 교육 시간.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윤은 거듭 고민했으나 의논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의논할 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끊임없이 기침을 내뱉으며 조여 오는 숨통을 부여잡을 뿐이었다.


“농담인 거 알지? 다 혈기왕성한 우리 장병들의 성교육을 위해 한 말이야.”


기회라는 것은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윤은 기침을 하는 만큼 스스로에 물었다. ‘기회를 기회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에겐 동전의 뒷면 같은 면면이 있는 거겠지?’ 박순웅이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자신의 애인의 존재를 팔아넘기면서도, 그리운 애인과의 영상 통화 기회를 얻는 것. 박순웅이 입대 전 삼천오백만 원을 저축한 이 훈련소의 부자를 자처하면서도 초코케이크 파이 한 봉지를 얻고 싶어 발악하는 것. 박순웅의 대답도 목표를 위해 준비된 멘트 같았다. 박순웅, 주임원사, 훈련병, 그리고 윤. 이들 모두는 어긋난 머리카락처럼 무질서하게 앉아 있으나 멀리서 보면 그저 회색빛 도는, 빡빡 깎은 머리일 뿐이었다. 윤의 뒤통수와 비슷한 모양, 비슷한 색깔, 비슷한 구조의 머리통. 윤은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고, 기침을 할 때마다 흉강이 울리는 듯했다. 윤은 목 너머로 삼켜버린 가래 같은 더러운 말들이 머릿속에 공명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임원사의 일방적인 도입부와 함께 두 시간 가량의 정훈 교육이 끝났다. 훈련병들은 교육관을 나와 일제히 군의관이 있는 신체검사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모든 병사들은 흰색 보급용 팬티만 입고 있어야 했다. 피부병과 피부 질환 검사, 구타 및 가혹행위 상흔 검사, 그리고 입대 부적응자의 자해 흔적을 확인을 위함이었다. 수백 명이 넓은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 흰색 삼각팬티만 입고 일렬로 줄을 서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여서 팔을 엑스 자로 꼬아 제 몸들을 감싸고 있었다. 윤도 그 자세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 1548번이 불리자 군의관과 장교가 앉아 있는 커튼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윤에게 만세를 부르고 천천히 세 바퀴를 돌라고 명령했다. 윤은 아무 말 없이 돌았다. 한 번 더 돌고, 한 번 더 돌았다. 속이 비칠 듯한 하얀 면 삼각 면 팬티만 입고 호숫가의 백조처럼 조곤조곤 돌고 있자니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이 또한 누군가의 자해와 폭행을 막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숨을 골랐다. ‘나의 수치의 이면에는 나의 안전함이 보장된다. 나의 부끄러움 이면에는 나를 위하는 시선이 들어있다.’ 그들도 불명예스러운 일을 예방하는 것이며, 생활 안전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명목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기능과 질서를 생산하는 힘이 있었다. 윤의 입에서 몇 번 마른기침이 쏟아져 나오자 군의관은 어디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그저 숨을 쉬다가 사래 들린 것이라며 둘러대고 커튼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누군가에 쫓기듯이 재빨리 옷을 주워 입었다.

*

내 안에는 전쟁 같은 현실을 기피하고 싶은 불안하고 연약한 인간이 있다. 받들어총 자세로 각진 걸음을 옮기지만, 그 발걸음은 언제나 무겁고 무섭다. 불가피하게 총대를 메야 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은 불운이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보다 우위를 점하며 사는 것은 인간애를 잃는 것이다. 나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책임이 있다. 공존, 협력,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자유롭고 따뜻한 분위기. 늘 그러한 인간이 되고 싶다고 고민한다. 총구를 허공에만 겨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며 잠들고 일어나면 언제나 피로하다. 깊게 자도, 얕게 자도, 피로라는 바이러스는 혈기왕성하게 운동한다. 언제나 전시상황처럼 준비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것은 왜 우리에게 체화되어 있을까. 이 세계가 내린 압제적 명령을 매순간 거역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반역자로 살고 싶다. 하지만 내겐 반역자의 삶을 살 수 없을 만큼 요구되는 과업들이 즐비하다.

내 삶을 위해 나보다 앞서 나가는 나의 동물 같은 면면도 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상대를 위협한다. 본인이 가진 능력의 우위를 과시하며 존재를 규정하는 욕심의 동물에 다름 아니다. 그 모습은 생의 저인망에 엉켜 있으면서 언제나 외부로 돌파할 기회를 노린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얼마간 오염된 에너지로 추동을 엿보고 있다. 그러다 욕구를 참지 못하면 난데없이 질주하여 나를 앞질러 나간다. 기회를 물고 놓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조건이든, 내게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기회의 수혜자 범위에 들어가기를 갈구한다. 기회가 떠나려는 순간에도 ‘나까지만’이라는 한 마디를 놓지 않는다. 넘치는 수요와 제한된 공급의 그물망에 안착해야 할 안정된 순간을 필요로 한다. 타인의 얼굴과 눈은 보이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앞을 향해 질주하는 동물적인 나는 총구를 사람에 겨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등허리를 조준한다. 내 뒤를 쫓아오며 나를 앞질러 가려는 이들을 겨냥한다. 언제든 쏘아도 좋다. 방아쇠를 당겨 장전된 총알을 발사하는 것만큼 뜨겁고 강렬한 추동은 없다. 움직이는 것이라면 일단 쏜다.

살기 위해서 타인보다 앞서야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내가 걸어 온 것이 비로소 길이 된다. 나는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너무도 잘 알아서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 방향감각을 기르기 위해 언제든 준비된 나침반처럼 살아간다. 그 노력의 결실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누구도 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너무도 남을 위하는 연약한 나는 어떠한 선구자의 깃발도 세울 수 없다고 믿는다. 왜 스스로를 갉아 먹으며 힘들어 하는가. 살아라, 약육강식의 생태망에 안주하며 최선을 다해라. 자신의 순진한 일면을 믿다간 뒤쳐지고 말 것이다. 이 험준한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 선점은 생명과 등가 교환된다.

*

훈련병들은 3주차를 각개전투와 전술 훈련으로 바삐 보냈다. 전술훈련은 육해공 구분할 것 없이 하는 공통훈련이라 입대 전 대중매체로 익히 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윤은 여전히 몸살감기를 떨치지 못했다. 하루도 쉴 틈 없이 고된 훈련과 체력단련을 받느라 심신은 지쳐 있었다. 한 동기 훈련병은 덕분에 다이어트도 하고 체력이 늘어 상쾌하다고 하였는데, 윤은 더욱 야위어갈 뿐이었다. 공동체 훈련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동기들의 몫이란 생각에 그는 병자 열외도 요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비실비실 임하자니 그 또한 타인에게 고통만 실어주는 꼴이라 생각했다. 윤은 언제나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훈련을 감행했다. 내부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은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을 버텨냈다. 그가 유일하게 준비한 것은 ‘척’이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은 척을 하는 표정 전술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가르쳐주지도, 보고 배운 것도 아니지만 감각적으로 지닌 생득적 비상 무기와도 같았다.

4주차에 접어들자 해군의 필수코스인 전투 수영 훈련이 시작되었다. 전투수영은 바다에서 함정 생활을 할 때 전시상황이나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실시하는 것이었다. 해군 훈련병은 장정 일주일 내내 2m 가까운 깊이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완수해야 했다. 그리고 각 7m, 10m 높이에서 떨어져 입수하는 이함 연습을 해야 했다. 윤은 이 사실을 모두 알고 해군 입대에 지원했다. 그는 사실 어려서 두 번이나 물에 빠져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했다. 물 공포증은 당연 그의 것이었다. 한 번은 아주 어린 유년기에 동네 목욕탕 성인 풀에서였고, 다른 한 번은 인천 송도유원지의 물썰매장에서였다. 윤은 그 이후로 수영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지만, 해군에 입대 신청을 한 후부터 동네 생활체육센터 아침 수영반을 신청해 꾸준히 배우러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강사에게 교습을 받았고, 그 외는 매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자유 수영 연습을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물에서 숨을 쉬는 것에 적응을 잘 못하고, 배우는 속도도 느렸다. 그는 이럴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입대 세 달 전부터 초보자 코스의 평균 수영 능력 습득 기간을 알아보고 더 이른 시기에 센터에 접수한 것이다. 윤은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수영클럽 노인들과 같은 레인에서 수영을 배웠다. 그렇게 3개월간의 연습 끝에 윤은 20m 레인을 두 어 번 왕복할 수 있는 자유형, 평형, 배영을 익혔다. 그 역시 무언가 준비된 상태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정작 훈련소 물속에서는 그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윤 자체의 기초체력 문제가 아니라 몸살 문제에 크게 기인했다. 지난 3주 넘게 병원에 가지도, 제대로 된 약을 처방받지도 못했다. 쉬는 시간도 없었고, 땀 흘리며 깊게 자려는 날이면 불침번을 서야 해서 꼭 새벽 2, 3시 경에 눈을 떠야만 했다. 언제나 병사의 대열 안에서 긴장해야 했으므로, 매 순간 에너지를 방출하는 고초를 겪어야했다. 수영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이함 훈련이야 눈 딱 틀어막고 두 번 뛰어내리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2m 깊이와 25m 길이의 수영장 레인을 제한 시간 안에 왕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윤은 자신의 다크서클처럼 깊은 물속에 몸을 담그자마자 발을 굴려야 했다. 평균 성인 남성의 키보다 깊은 물속은 마치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켜왔다는 듯이 고요했다. 윤은 몸에 물이 닿는 순간부터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생존 수영을 진행하기도 전에 이미 생존을 위한 움직임을 이끌어내야 했다. 총 두 차례 진행되는 수영 평가 중 제1차 테스트에서 윤은 통과하지 못했다. 시도는 했지만, 레일의 반도 못가서 의식을 잃고 물에 잠기는 바람에 낙제했다. 그는 아무 힘도 없이 물속에 가라앉는 그 순간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와 동반되는 평온함을 느꼈다.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처럼. 그 세계는 아무런 사람도 없고 간섭도 없어 오롯이 자신만이 유일한 순간의 정점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사람의 인기척 없이 평온하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교관의 호각소리가 들려왔고, 급히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헤엄쳐 오느라 생긴 물살의 속력을 느꼈다. 윤은 정신을 차리고 발을 움직여 수면위로 얼굴을 들어올렸다.


“죄송합니다! 저의 집중력이 잠시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윤은 물에서 나와 교관에게 큰 목소리로 잘못을 고했다. 교관은 떨고 있는 윤에게 D등급을 부여했다. 그 알파벳은 낙제였다. 수영 훈련에 낙제한 이들은 누구나 받는 기본 훈련을 이수한 이후에도 특별 훈련을 추가로 더 받아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다. 보통 훈련병의 0.2%가 해당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기수 당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 한 것인데, 윤이 그 상황에 놓일 위기에 닥친 것이다. 윤은 아픈 몸을 이끌면서 낙제의 두려움까지 가득 안고 생활관에 돌아왔다. 이틀 뒤에 있을 재평가에 대한 고민에 잠겨 한숨을 내쉬다가도 이내 기침을 연거푸 내뱉고는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 이후, 모든 훈련병이 훈련소 운동장에 집합했다. 윤도 가지런히 정렬된 대열에서 박제된 점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기침을 하는 것이 줄을 흐트러뜨리는 원인이라 생각하여 숨까지 참으며 빳빳하게 섰다. 그때 구령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군인 간부가 공지 방송을 하였다.

“이번 훈련병 중에서 자기가 컴퓨터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자 있으면 즉각 대열 앞으로 열외 한다. 실시.”

‘이거다!’ 윤은 단순한 이 한 마디를 속으로 외친 후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윤처럼 대열 앞으로 나온 훈련병은 윤 외에도 20명 쯤 되어 보였다.

“너무 많은 인원이 나왔다. 이 교관은 딱 2명만을 필요로 한다. 2명에 선발된 자는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수영 평가에서 ‘특별히’ 제외한다.”

윤은 수영 평가를 건너 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바지 주머니에 담긴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사등분으로 접힌 종이 뭉치는 바로 컴퓨터 자격증 사본이었다. 워드프로세서 1급, 컴퓨터 활용능력 2급, 그리고 문서실무와 ITQ 같은 국가공인기술 자격증을 복사해온 것이었다. 입영통지서에 자격증 소지는 의무사항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소지품 검사 현장에서 수첩 대용 메모지로 가져온 이면지라 하고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2명을 선별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대답하도록. 지금부터 본인의 타자 속도를 제시한다. 좌측부터 빠르게 외치도록. 시작.”

“380타입니다!” “420타입니다!” “550타입니다” “490타입니다” “600타입니다!” ……

그리고 윤의 차례가 왔다.

“저는 750타입니다!”

서 있는 자리에서 키보드를 쳐볼 수 없고, 간부가 모든 병사들의 타자를 실증할 자가 아니라는 동물적 판단이 윤의 머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윤은 타자 검증을 한 지 수년이 지나 기억도 나지 않는 타자수를 일단 높여 불렀다. 그 말이 진실인지, 진실이 될 수 있는지는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옆 사람보다 얼마나 더 높은 숫자를 부를 수 있을 것인지 찰나의 순간에 판단하였고, 본연의 육감대로 말할 뿐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이성은 이틀 전 수영장에서 잠수하는 동안 수중으로 흘러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이성을 찾으러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에 그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그때 윤의 오른 편에 있는 다른 훈련병들도 큰 목소리로 외쳤다.

“760타입니다!” “760타입니다!” “저는 800타 넘게 칩니다!”

모든 훈련병의 우렁찬 보고가 끝난 후, 윤은 이대로 최종 2명에 들을 수 없을 것이란 불안에 휩싸였다. 윤은 장전된 총을 연발로 발사하듯, 주머니에서 구겨진 자격증 사본 종이들을 펼쳐보며 외쳤다.

“저는 국가공인 컴퓨터 자격증이 여섯 개나 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대답에 놀란 훈련병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윤은 반쯤 불안하고 반쯤 흡족해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천 명이 넘는 훈련병들이 일제히 자기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의 앞에서 마치 ‘난 이만큼 준비된 사람이야’ 하는 의기양양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와 나란히 앞에 선 이들은 이미 따발총을 맞은 부상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들 중에도 분명 자격증 같은 사회적 표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실물 종잇장을 앞서 내며 죽기 살기로 목청을 높이는 윤의 에너지에 압도된 듯 보였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간부는 윤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라고? 방금 여섯 개라고 대답했나?”

“예! 그렇습니다!”


“이거 장난 아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정말 네 자격증 여섯 개 맞나?”

“예! 모두 제가 취득한 것 맞습니다!”

“좋다. 일단 방금 대답한 너, 몇 중대 몇 소대 몇 번인지 큰소리로 말해봐.”

“일 중대 오 소대 사십팔 번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군 간부는 800타가 넘는다는 자를 추가로 호명한 후 윤처럼 훈련병 번호를 기록했다.

“좋아. 이 둘은 점심 식사 후, 수영 훈련을 가기 전에 각자의 소대장에게 보고한 후, 3층에 있는 제2사무실로 올라오도록.”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은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대답하고 원래의 대열 자리로 돌아와 섰다. 그리고 작은 몸짓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교관의 호루라기와 구령에 맞추어 진행되는 아침 운동을 곧잘 따라했다. 그에게 어디로 불려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맡게 될 책임이 무엇인지 제시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컴퓨터’라는 말이 군대라는 환경에서 일으키는 충돌, 충돌에서 발생하는 단어의 감각 같은 것을 가장 동물적으로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느낌이 가는대로 필사적으로 반응한 게 전부였다. 그는 스트레칭을 하며 입대 전 날 마신 꿀생강차를 떠올렸다. 비록 그 티백을 몰래 반입해오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달콤한 것을 맛보고 있노라 장담했다. 윤은 얼마간 기쁨에 젖어있었다. 허공에 헤엄치듯 팔을 뻗으며 이 순간이야 말로 자유자제로 헤엄칠 수 있는 수영장 같은 곳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유로워졌다고 믿었고, 어느 자세로든 수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됐다. 윤은 제법 찬 아침 공기 가운데에서도 유독 기침을 하지 않았다.

훈련소 너머로 보이는 산에 분홍색 띠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진해에 벚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군항제를 준비하는 봄의 생목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훈련 5주차는 큰 훈련이나 무리 없이 지나갔다. 각종 군 장비와 총을 메고 인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행군 훈련이 한 번 있었지만, 훈련소 수료가 고지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간 피로를 잊게 하는 환각제로 작용했다. 훈련병들은 스스로 생산한 합법적 환각제에 취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명예 해군으로 탄생한 듯 행동했다. 이들은 곧 있을 6주차 수료식을 위해 제식 훈련을 거행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발을 맞추고 총검술을 연습했다. 윤도 훈련병의 대열의 통일성에 충실히 기여하는 일개 병사였다. 그는 그 와중에도 행군부터 제식훈련까지 항상 소지하던 총의 무게가 제법 가볍다고 생각한 자신을 다소 자랑스러워했다.

수료를 닷새 앞두고 제식 훈련을 하는 윤이 소지한 총의 탄창은 비어 있었다. 훈련병이 쓰는 총에는 탄알이 들어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윤은 마치 자신의 K2소총으로 몇 발은 쏴 목표물을 명중시킨 것처럼 생각했다. 스나이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나를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 상대에 명중백발 할 수 있을 것 같군.’ 총검술을 하며 하늘에 총구를 높게 찌를 때, 윤의 동작은 제법 가볍고 절도 있었다. 훈련을 하면서도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입맛이 돋아났다. 그날 윤은 저녁을 과식했다. 취침 전 교관에게 소화제를 받아먹은 후 생활관 침대에 누웠다. 그는 소등한 침실에 누워 캄캄한 천장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불침번 순번도 아니어서 간만에 여섯 시간 이상을 깊게 잘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윤은 금세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대학가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해온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윤은 총의 부품이 되어 총의 몸체로 들어가 총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새로운 무언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옛 조상들은 이것을 물아일체라 불렀구나. 생각보다 굉장한 걸?’ 총이 된 윤은 허리를 곧게 펴고 미지의 길을 개척하듯 걷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강렬한 느낌에 휩싸였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장착되어 몸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것은 스무 발의 총알이었다. 그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대학가 한 가운데를 활보하고 있었다. 두려울 게 없는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수료식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3월 2일로부터 6주가 지난 수료식 날은 진해 군항제가 한창이었다. 수료식이 이루어지는 기초군사훈련단 운동장 둘레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이따금씩 옷깃을 스치는 시기긴 했지만, 그에 따라 흩날리는 벚꽃 잎들에 수료식은 더욱 아름다웠다. 운동장에는 아들, 애인의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이로운과 그의 애인, 박수웅과 그의 애인도 무리도 보였다. 사랑한다고 믿는 이들은 더없이 가깝게 달라붙어 있었다. 윤은 자신을 보러온 식구들의 얼굴을 단숨에 찾아냈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건강한 웃음을 보였다. 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이가 선명하게 드러난, 약간은 핏빛의 잇몸 때문에 윤은 수료생답게 보였다. 그는 부모로부터 핸드폰을 받아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SNS에 올리며 자신의 근황을 공유했다.

이날은 수료한 모든 훈련병에게 여섯 시간의 특별 외출 시간이 주어졌다. 6주 간 구경하지 못한 사회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밖에 나가 맛있는 음식도 사 먹을 수 있었다. 윤 역시 가족들과 진해 시내에 나가 점심으로 중화요리를 먹었다. 식사를 끝낼 즈음 윤의 계모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윤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고 싶었지? 사람들이 그러던데, 훈련소에서는 이런 초코케이크 파이 같은 거 먹고 싶어서 안달이라던데. 후식으로 먹어. 달달하니 오늘 날씨에도 어울린다.”

“아냐 괜찮아. 지금 별로 먹고 싶지 않아. 훈련소 안에서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딱히 그리운 맛은 아니네.”

“많이 먹었다고? 내가 듣기로는 훈련소에서 외부 음식 못 먹는다고 했는데…….”

윤은 처음엔 사양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비축할 계획으로 다시 건네받았다. 그리고 해군 정복 가슴 안쪽에 밀어 넣으며 훈련소 검문소를 통과할 아찔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윤의 볼은 제법 살이 올라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또 낯선, 새로운 곳으로 발령을 받아.”

“어디로 가든 몸조심해야 돼. 저번처럼 또 몸살 걸려가지고 고생하지 말고.”

“나 이미 다 나았어. 보면 모르겠어?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며칠 만에 다 나았어. 이젠 거뜬해.”

윤은 자신 있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윤의 생부는 그런 윤을 다시 한 번 다그쳤다.

“그래도 언제나 긴장을 늦추면 안 돼. 늘 준비된 자세로 임해야지. 그래야 안 다치는 거야.”

“알겠어. 너무도 잘 알 것만 같다. 준비라는 거. 지긋지긋하게도 잘 알 것 같다.”

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모금 물을 마셨다. 마지막 들이킨 물 몇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어 넘기며 다시 들이닥칠 미지의 장소를 떠올렸다.

‘이제 다 나았는데, 왜 다시 아픈 것 같은 느낌일까. 이 두려움은 무엇일까. 나는 분명 씩씩한데. 살아남았는데……. 왜 반쯤 죽어 움직이는 기분일까.’

바다 냄새 섞여 실려 온 진해의 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꽃잎들은 따스한 봄볕에 포개어져 생기가 도드라져 보였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열등감 2019-12-16 22:49:40

    열등감에 젖어 있는 분들이 악플을 다는 것 같네요. 저는 오히려 좋게 읽고 갑니다. 날카로운 사회 분석의 힘을 잃지 마시고 계속 밀고 나가시길 바라요.   삭제

    • 캐릭터가없는건지 2019-12-06 11:37:31

      아니면 게이 두 명이서 얘기하는 건지, 윤과 그 생부라는 자의 목소리가 초보 배우가 서툴게 1인 2역하는 인형극 보는 것 같네요. 묘사는 군더더기가 많고 문체는 과시적인데 이걸 '수작'이라고 칭하며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1960년대에서 답보 중인 듯한 소설인데 그렇다고 김승옥을 뛰어넘기에도 한참 모자라 보여 수상에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싶네요.   삭제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