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1운동 백 주년을 맞아 각종 사회단체와 관변 행사가 이어졌다. 일본 한복판에서 있은 도쿄 2‧8 독립 선언 기념부터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그럼에도 한·일 간 과거사를 돌이켜보고 진정한 역사 교훈으로 삼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 7월 일본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화학 물질의 수출을 규제해 양국 간 무역 분쟁을 촉발시켰다. 이 조치는 작년 11월 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회사 측 책임과 보상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하기 위한 외교적 술수였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계를 통한 일괄 타결을 도모하면서 과거사 해결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지소미아 연장 유예 협상은 진행 중이지만, 확실한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보수우익의 아이콘인 아베 정권의 역사책임 회피에서 연유한다.

한·일 외교적 분쟁은 때 아닌 국내 정치권과 학계의 친일 부역논쟁으로 비화했다. 한국경제사학계 원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반일종족주의』라는 도발적 책으로 반일 민족주의적 정서와 비판 운동을 송두리째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조차 왜곡하며 자신의 관점만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비학술적 저작이다. 그럼에도 이를 근거로 성노예 위안부를 정의한 사회학자 류석춘의 행태는 대학교수로서의 학자적 위상과 윤리적 잣대를 의심케했다. 과거사 청산과 역사 인식의 재정립은 1980년대 이래 한국 민주시민사회의 숙원이다. 진보세력이라고 자칭하는 86세대들은 반민주 독재 세력의 청산을 위해 과거사 청산과 친일파 문제 해결을 주창해왔다. 하지만 최근 한·일 갈등 국면을 이용해 민족주의 감성에 불을 지피는듯한 행태를 보였다. 현 국회의장조차 한·일 정부와 국회, 기업 등 3자가 협찬한 기억 화해 기금의 조성이 현 사태의 해결책인 양 띄우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졸속 합의 처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현 집권세력의 자기중심적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010년 8월, 한국병합 백 주년의 이름으로 한·일의 양심적인 시민사회와 학계 지식인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며 새 시대의 공통 역사 인식을 선언한 바 있다. 내년은 110주년을 맞이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갈 수 있다. 기성 정치인들이 과거사 청산을 위해 당위만 주장하거나 타협책으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일제 침략과 인권 침해를 사실 그대로 직시하고, 또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을 진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한·중·일 청년세대들에게도 평화와 공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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