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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세상 모든 ‘나이브’함을 위해
  • 김민정 사회부장(신학·18)
  • 승인 2019.12.02 00:34
  • 호수 1844
  • 댓글 6
김민정 사회부장
(신학·18)

“기자님, 그건 나이브한 생각이죠” 인터뷰 도중 취재원이 말했다. 대화의 맥락상 칭찬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동안 ‘순진한’ 정도로 생각해온 나이브의 뜻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사전을 찾아봤다.

(경험·지식 부족 등으로) 순진해 빠진, (모자랄 정도로) 순진한

사전에 적힌 글자에 혼나는 기분이었다. 사전은 친절히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브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탓이라고. 이때의 순진함이란 모자라다는 뜻이라고.

교실에 얌전히 앉아 시키는 공부만 했던 나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감정적으로 분노했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미르·K스포츠재단, 비선실세, 승마 같은 단어들은 알아도, 그것들을 연결할 줄은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능동적으로 찾아보지 않아서다. 신문을 뒤적여 심층 기사를 정독하는 건 고사하고, 검색창에 ‘국정농단’이라고 쳐 본 적도 없다.

그런 사람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보사에 들어왔다. 정보의 최전선에 있어야 하는 언론사에서, 정보력이 0에 수렴하던 나는 숨 가쁘게 따라갔다. 학보사 기자가 학내 사안을 모른다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매주 우리가 만든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수강변경 기간은 놓쳐도, 올해 故노수석 열사의 추모행사가 어땠는지는 말할 수 있었다. 또 기사의 소재를 찾기 위해 온갖 사이트를 헤집고 다녔다. 우리 사회에 이토록 다양한 시민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어느 분야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기사 ‘더 보기’ 버튼을 30번쯤 누르고 국회입법조사처 발간물 목록을 18페이지째 넘길 때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만큼 찾아봤으면 아는 편이라 여겼다.

그런데 취재원에게 나이브하다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 기사의 뼈대를 잡은 사실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현장의 감각이 떨어지는 기사는 나이브하다. 그런 기사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통렬한 자아 성찰 이후, 나는 받아들였다. 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난 여전히 몰랐다. 40도 무더위에 가스검침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몰랐고, 아현동 재건축 현장에서 강제 철거민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작정 현장을 찾고, 질문했다. 당사자를 붙잡고 이 상황에 처한 당신의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들은 학생 기자의 무례한 요구에 응해줬다. 그들은 나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얕은 지식으로 채워 간 질문지가 초라해지는 인터뷰도 있었다. 질문 자체가 적절치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취재원들은 감사하게도 취재를 뿌리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씩 알려줬고,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아줬다.

이런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물론 수업 과제들과 피로도 함께 쌓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편집국에 들어가면 나처럼 고통받으며 취재하는 동료들이 한가득이었다. 이번 기사는 잘 풀린다, 안 풀린다, 하는 얘기를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문제는 일주일간 파고들며 알아가던 기사 소재가 다음 주에는 바뀐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주 기사 마감을 끝내고 돌아서면 또 낯선 영역이 버티고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 다시 전화를 돌리고, 현장을 찾고, 취재원에게 혼나가면서 배워야 한다. 이 과정을 2년간 반복했다.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나는 학보사 활동을 그만둔다. “춘추 나가면 행복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고생 그만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나는 춘추에서 겪은 과정이 기사 쓸 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기사 쓰는 일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망연하다. 나이브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안전한 영역은 발 딛고 선 공간보다도 좁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점은 학보사를 한 덕분에 나의 ‘순진해 빠짐’을 깨달았다는 거다. 그리고 나의 무지함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음도 배웠다. 기자가 오보를 내면 안 되듯, 잘못을 저질러놓고 “몰라서 그랬다” 말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기자 생활은 끝났지만 ‘기자 마인드’를 장착한 채로 살아가려 한다. 안다며 대충 넘기지 않고, 귀를 곤두세운 채로. 이게 세상 모든 나이브함에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민정 사회부장(신학·18)  whitedwarf@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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