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문화상 60주년, 성석제를 만나다
평범한 누군가도 그의 펜을 거치면 특별해진다. 그의 해학은 날카로운 통찰로 독자를 관통한다. 누구든 빠져들게 하는 위트 속에는 눈물도 숨겨져 있다.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 동문(법학·79)을 만났다. 포근한 주름이 내리 앉은 소설가의 눈은 여전히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애정으로 빛났다.
성석제가 ‘문학’을 만나기까지
성 작가의 글은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는 분야를 넘나드는 지식과 통찰력이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인 궁금증”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그는 아주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무한한 호기심을 가진 성 작가의 어린 시절, 어른들은 ‘틀’을 제시했다. 당시 어른들의 세계에서 문학은 불경한 것, 단순 유희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학은 성 작가에게 틀을 파괴하는 돌파구가 됐다. 성 작가는 “나에게 문학이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었다”고 설명했다. 성 작가는 무협지에 빠진 유년 시절을 거쳐 박지원을 읽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이 시기가 일생을 바꿨다고 말한다.
성 작가에게 우리대학교는 창작의 출발점이었다. 대학에 오면서 비로소 고향을 벗어나게 된 그는 “대학은 마법의 세계 같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야기는 곧 글이 됐다. 성 작가는 “놀라운 사람과 사건을 끊임없이 마주쳤고, 이 경험은 문학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학 시절 시를 운명으로 여기고 펜을 놓지 않았다”며 “당시 벗들과 문학으로 연결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벗 중 하나는 기형도(정외·79) 시인이었다.
문학을 사랑한 성 작가와 친구들은 연세문화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수많은 시도에도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다 단숨에 써 내려간 「고 이대복」이 연세문화상 가작에 선정됐다. 성 작가는 “「고 이대복」은 당선작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가작으로 선정된 글이었다”며 “창피해서 연세춘추사를 피해 다녔다”고 회상했다. 그는 부끄러워 시상식에도 가지 않았다. 몇 달 후 성 작가가 우연히 우리신문사에 들르면서 상패와 8만 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상금은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다. 상금으로 성 작가는 타자기와 세계문학 전집을 샀다. 그는 세계문학 전집을 통해 현대문학의 새로운 세계를 봤고, 타자기를 이용해 이를 글로 옮겼다. 성 작가는 “그때 구입한 타자기로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냈다”며 “그때의 글은 내 소설의 밑천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의 대표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가 탄생했다.
‘사람’을 향한 ‘사랑’
많은 이들은 성 작가의 소설을 인간적이고 정답다고 말한다. 그는 흘러가듯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을 사랑했다. 성 작가는 “눈여겨보면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삶이 녹아든 그의 소설은 더이상 허구가 아니다. 그가 만난 인물들은 그의 작품에서 살아 숨 쉬고, 행동한다. 성 작가의 소설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유다.
그의 서사 속 인물들은 다채롭다. 성 작가는 이를 “작품을 환경에서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그가 농촌에서 쓴 작품 속에는 농부가 등장한다. 그는 ‘경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다양한 경험은 다양한 작품으로 이어진다. 젊은 시절의 방랑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을 안겨줬다. 어느 겨울, 성 작가는 빈 절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의 이야기를 그는 소설로 옮겼다. 성 작가가 삶을 고정해두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찾아 떠나는 이유다.
성석제의 이야기가 청년에게 가닿으면
시대가 바뀌며 활자의 위상은 낮아졌다. 청년들은 짧고 자극적인 컨텐츠에 열광한다. 젊은 세대의 이런 소비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성 작가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당시 어른들은 클래식이 아닌 팝 음악을 듣는 우리를 경박하다 했다”며 “그러나 나이가 들면 ‘견디는 작품’이 저절로 좋아지게 되더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에 오래 남는 예술 작품을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팝 음악을 듣던 그는 지금 클래식을 듣는다.
혹자는 지금을 ‘청춘이 힘든 시기’라고 표현한다. 이 시기 속 문학의 역할을 묻자 성 작가는 로마시인 호라티우스를 언급했다. 그는 “호라티우스는 문학의 기능으로 교화(Teaching)와 기쁨(Pleasing)을 들었다”고 말했다. 교화는 주변을 알게 하고, 기쁨은 주변에 공감을 만든다. 성 작가는 이를 ‘인류적 연대감’이라 칭하며 “문학 속 연대감이 청년을 소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청년에게 주체성을 강조했다. 주체성 없이 휘둘리는 삶에는 공허만 남기 때문이다. 그는 “고독과 자립, 경험은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준다”며 “홀로 서서 대상을 느끼는 경험에서 주체성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삶은 속도 경쟁이 돼가고 있다. 청년들은 낙오되지 않으려 쉬지 않고 달린다. 하지만 성 작가는 ‘느림’을 강조한다. 성 작가는 빠르게만 달리는 이들은 영화 『인터스텔라』 속 우주선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빨리 달리기만 하다 돌아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 작가는 “‘느림’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언어와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며 “청년들이 느림의 가치를 재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 작가는 후배들에게 “늘 나뭇가지 끝의 별을 바라보되, 발밑의 구덩이를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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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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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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