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전문 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반드시 고독하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수아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한 장소를 찾아 헤매는 일, 그것은 항상 내 글을 이루는 가장 처음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서울에 자기만의 작업실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국가적으로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하는 ‘연희문학창작촌’(아래 창작촌)이 특별한 이유다.

 

 

시민과 함께 쓰는 곳, 읽는 곳, 엮는 곳

 

 

지난 2009년에 개관한 창작촌은 서울시 최초의 문학 전문 창작공간이다. 시사편찬위원회가 있던 공간을 서울시가 인수해 리모델링했다. 1년 평균 120명의 작가가 총 19개의 집필실에 입주해 집필활동에 열중한다. 지난 10년 동안 은희경, 김애란, 오은 등 1천명에 가까운 작가가 이곳에 머물렀다. 한국문단에서 활동하는 작가 대부분이 이곳을 스쳐 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외작가를 위한 국제 레지던스도 운영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한강 작가의 번역가로 유명한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가 이곳에 머물렀다.

입주 작가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다. 공모는 ‘집중지원’과 ‘창작지원’, 그리고 ‘단기지원’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각각 입주 기간과 모집대상이 다르다. 6개월 동안 머물 수 있는 집중지원은 신작 집필을 계획 중인 작가 중 선정한다. 지난 5월에 출간된 『대소설의 시대』는 김탁환 작가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창작촌에 머무르며 마무리한 소설이다. 3개월간 머물 수 있는 창작지원의 경우 집중지원과 달리 문학 전문 번역가까지 포함해 입주신청을 받는다. 입주 기간이 1개월뿐인 단기지원은 급작스럽게 작업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주로 입주한다. 심의위원회는 작품실적, 활동계획 및 적합성, 입주를 통한 기대효과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입주 작가를 선정한다. 

 

그러나 창작촌이 오직 작가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만큼 시민들에게도 개방돼있다. 서울에서 찾기 힘든 조경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산책로로도 좋다. 시민들은 집필하는 작가들을 곁에 두고 울창한 소나무 길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커뮤니티 공간 ‘문학 미디어랩’도 창작촌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방문객들은 각종 문예지와 문학 전집에 둘러싸여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운영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고 책은 열람만 가능하다.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지난 11월에는 ‘서울청년예술단’과 함께 오디오 극과 반려동물 글쓰기 모임을 진행했다.

누구든지 구독할 수 있는 『비유』를 감상하는 것도 창작촌이라는 공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비유』는 지난해 창작촌이 창간한 문학 웹진으로 매달 시,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담아 발행한다. 창작촌이 집필실을 제공해 한국문학을 물리적으로 지원한다면, 『비유』는 작가에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며 한국문학을 풍요롭게 한다. 문학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공간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지금 창작촌이 소중한 이유다.

 

11월 입주 작가가 말하는 “내게 연희문학창작촌이란…”

 

 

#박재연 시인: 시작이다.

“랭보처럼 일찍 천재성을 발휘하는 젊은 작가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저는 강원도의 시골에서 20년간 모시고 살던 시부모님이 백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뒤에야 문단에 올랐습니다. ‘오랜 세월 깊이와 향기를 모아서 써야 한다’는 릴케의 전언이 저의 희망입니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까지 쓰리라’는 다짐으로 창작촌에 입주했습니다. 지금은 그간 모아온 자료를 정리한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창작촌에 있으면 난해한 문장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문리가 트이는 것 같습니다. 1년 치 독서량을 한 달 만에 읽었습니다. 집중도가 높아지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창작에 도움이 큽니다. 늘 안팎으로 생활에 쫓겨 살다가 고요한 공간에 들어오니, 과거를 불러내어 놀고 싸우고 달래고 용서하고 혼자 울기도 합니다. 회과의 장소이자 창작의 공간인 연희문학창작촌은, 제게 섶에 오른 누에처럼 비단실을 준비하는 시작의 공간입니다.”

 

#김한솔 극작가: 돌파구다.

“제가 있는 방에는 TV가 없어요. 무의미하게 TV를 보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없다는 게 창작촌에 와서 가장 달라진 부분이에요. 아침에 대학 강의를 다녀와서 저녁 운동을 가기 전까지, 낮 동안 작품을 씁니다. 우울증에 걸려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집은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 글이 잘 안 써지더라고요. 집에선 안 써질 땐 정말 무슨 짓을 해도 안 써졌는데, 창작촌에 와서 어느 정도 해결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 연희문학창작촌은 돌파구 같은 공간이에요.” 

 

#전미홍 소설가: 희망의 유배지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기에 모든 활동이 경제성으로 저울질 됩니다. 특히 저처럼 주부이면서 작가인 경우엔 창작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받기가 더 어렵습니다. 글이 밥이 되기 전에 가족의 의자가 되고 아랫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글쓰기에 몰입하기 위해 창작촌에 입주했습니다. 하루를 산책과 독서, 글쓰기로만 꾸리며 내년 봄에 발표할 단편소설과 연작소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평소엔 마감일까지 작품을 쓰는 데 급급했지만, 창작촌에 있으면 쓰기에 앞서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 당위성을 찾는데 더 큰 의미를 두게 됩니다. 창작촌 주변을 거닐다 보면, 연희동은 도회지의 냉정함과 시골 특유의 낙천성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절박한 처지인 사람들에게서도 여유로움과 끈질김을 발견합니다. 이 민초의 정기가 창작촌에도 스며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연희문학창작촌은 희망의 유배지입니다.” 

 

#정지윤 시인: 아지트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작 활동도 하고, 조용한 곳에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입주하게 됐습니다. 일상과 작품 활동을 분리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작업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창작촌에서의 하루는 아주 단순합니다.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고, 명상도 하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근처를 배회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 속에서 그저 자유롭게 흘러가는 느낌이지요. 새 시집을 준비하고 있어서 기존 작품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작품이 떠오를 때는 신작을 쓰기도 하고요. 창작촌에서는 작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새로운 작품 아이디어가 잘 떠오릅니다. 작가에게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 연희문학창작촌은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소중한 아지트입니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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