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빴던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다.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한다. 방학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냥 집에 있으려고”라고 대답하면 동정 어린 시선과 함께 항상 같은 질문이 되돌아온다. “넌 방학에 여행 안 가?” 언제부턴가 여행 없는 방학을 보내는 사람은 청춘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그들은 여행하지 않는 나를 보며 생각할 것이다. 다양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상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다고. 그러나 나는 그들이 틀렸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세상을 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충분히 현재를 누리고 있다.

 

사전은 여행을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에 가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다르다. “청춘은 여행이다. 찢어진 주머니에 두 손을 내리꽂은 채 그저 길을 떠나도 좋은 것이다”라던 아르헨티나 혁명가 게바라의 말처럼, 나에게 여행이란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 ‘길’은 단순히 ‘다른 고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들, 처음 마주하는 경험은 모두 나에게 길이 된다. 나에게 여행이란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는 모든 과정이다.

 

그러므로 나의 정의에 따라 나는 여행자다. 나의 매일은 소소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고장을 가지 않아도 내 앞에는 무수한 길이 펼쳐져 있다. 새로운 글을 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는 매 순간 내가 있는 곳에서 여행 중이다. 일상의 전부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만큼, 어쩌면 그들보다 더 많이 여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이들에게 여행의 의미는 같지 않다. 70억 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여행의 의미 또한 70억 개다.

 

그러나 사회는 일상 속 젊은 여행자들의 여행을 알아보지 못한다. 다른 고장으로의 여행, 정확히 말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무모한 도전정신만을 강요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새로운 경험은 여행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일을 그만두고 떠난 여행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은 자기계발서의 관습적인 주제가 됐다. 길이 당장 눈앞에 있더라도,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떠나는 극단성이 칭송받는 시대다. 무모한 도전정신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덕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사회는 정작 도전 이후 청년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세계 일주를 하는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령 그들이 충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판단해 여행을 끝내면 차갑게 외면한다. 비어버린 시간을 메우고 후회하는 일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그들이 여행을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사회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당장의 과감한 선택만을 바라는 지금의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이니 모든 것에 도전하라.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YOLO’를 강요한다.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막연한 새로움을 기꺼이 마주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분명 우리들의 가치는 무모한 도전에만 그치지 않는다. 매일의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는 이미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글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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