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와의 연을 끊을 뻔했던 태국 여행

나는 친언니와의 태국 여행이 가장 생생히 기억나. 태국에 갔던 건 수능이 끝난 직후였어. 언니가 먼저 여행을 제안했지. 언니랑 둘이서 어딜 간다는 게 처음이라 기대가 많이 됐어. 공항에서까지만 해도 우리는 사이좋게 다녔어.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지. 언니가 숙소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거야. 언니가 좀 욱하는 성격이거든. 휴대폰이 없어졌으니 난리가 났지.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숙소가 온통 뒤집혔어. 언니는 몇 번씩이나 가이드분한테 찾아가서 성질을 냈고 패키지 팀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화풀이했어.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같이 천천히 찾아보자고 침착하게 말했어. 근데 언니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언니한테 입에 담을 수 없는 심한 욕을 들었지. 그렇게 첫날 밤을 정신없이 보냈어. 근데 다음날, 나한테 언니 휴대폰을 찾았다고 연락이 오더라. 언니 침대 밑에 있었대. 이것 말고도 언니와의 여행은 여러모로 힘들었어. 나는 사진기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 사진을 찍어주다 지쳐서 막상 내 사진은 하나도 못 찍었지. 나는 멀미도 심하게 하고 음식이 안 맞아서 밥도 못 먹었는데, 이런 내 옆에서 언니는 멀미도 안 하고 음식도 잘 먹더라. 여행이 끝나고 남은 깨달음이 있어.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 맞는 건 아니구나...’

 

#런던에서 만난 이상한 예술가

난 올해 갔던 런던이 가장 기억에 남아. 다들 내 얘기를 들으면 신기해하더라. 둘째 날 밤에,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혼자 나갔어. 내가 갔던 런던 대교 근처에는 셰익스피어 관련 지역이 있어. 그곳의 벽화를 지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붙잡는 거야. “이 그림 정말 예쁘지 않냐”길래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 사람은 그때부터 나한테 시시콜콜한 질문을 쏟아내더니 나한테 런던 투어를 해주겠다고 했어. 나도 심심했던 터라 그러자고 했지. 주변을 다 돌고 나니까 그 사람이 자기 집에 가 보지 않겠냐고 물었어.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그 그림을 구경하라는 거야. 집에 가서 보니 유화를 그리는 사람이더라.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날이 자기 생일이었는데 아무에게도 축하를 받지 못하고 혼자 보냈대. 너무 외롭다고 나한테 술을 마시자는 거야. 당연히 거절했지. 내가 급하게 숙소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어. 비가 오니까 우산을 빌려주겠대. 난 그 우산을 쓰고 숙소로 돌아왔어. 나중에 런던에 사는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살아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하더라. 다시 생각해 보니까 무서웠어. 그 사람 집이 다리에서 꽤 멀었고 주변에 가로등 같은 것도 없었거든. 여행은 참 이상해. 출발 전부터 엄청 들뜨게 되잖아. 사람을 되게 감성적이게 만들고. 그래서 내가 경계심이 없었던 것 같아. 다행히 이번에는 아무 일 없었지만 언제든 아무나 믿고 따라가면 위험할 것 같아. 감성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 내내 이성적인 사고를 완전히 놓아서도 안 되는 거더라.

 

#반려견과 함께했던 수험생의 가족여행

나는 수험생이라서 여행 다닐 여유가 없었어. 항상 막연하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사실 며칠 정도는 빼서 여행을 갈 수 있는데 막상 그러자니 불안하잖아,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그러던 와중에 부모님이 고맙게도 먼저 가족여행을 제안했어. 이번 여름의 가족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어. 처음으로 가족 모두가 함께했거든. 우리 집 강아지들까지 모두. 가족 모두가 집을 비워야 하는 날이면 우리 집 강아지들은 항상 빈 집에 있어야 했어. 우리 언니가 진짜 주책맞게 강아지들을 생각하는데, 항상 이게 마음에 걸렸나 봐. 강아지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자고 계속 졸랐다더라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바다가 있는 곳의 애견 펜션으로 갔지. 여행 당일에 비가 내려서 바다에 못 가게 됐어. 아쉬운 대로 펜션에 있는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지. 그런데 아이들이 여기를 너무 좋아하는 거야. 난 우리 집 강아지가 다리가 짧아서 수영은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오산이었어. 그 짧은 다리로 헤엄을 엄청 잘 치는 거 있지. 물속에서 얘가 헤엄치는 뒷모습을 찍었는데 이게 수능 때까지 내 힐링 영상이 됐어. 수영이 끝나고 우리는 삼겹살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어. 나는 재수를 했으니까 술을 마실 시간이 없었잖아. 그래서 이 술자리가 너무 좋았어. 힘이 되는 말도 많이 들었고, 다들 각자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는 시간이었어. 사람들이 왜 술자리에서 친해지는지 알 것 같더라. 사랑하는 이들과의 여행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글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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