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1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사람들이 그만큼 여행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서울서베이가 지난 2018년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방증한다. 시민들에게 주말에 어떤 여가를 즐기는지 물었을 때, 여행을 떠난다는 답변이 29.6%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여행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행의 어원은 고생, 고역, 노동을 뜻하는 ‘travail’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어떻게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랐을까?

 

농경 사회가 되기 이전까지 인류는 오랫동안 여기저기를 떠돌며 수렵, 채집 생활을 했다. 그리고 식량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당시에는 어떠한 교통수단도 없었을뿐더러 이주하는 곳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기존에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상황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반한 쾌락으로 이어졌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인류는 생존에 대한 보상으로 생겨난 쾌락을 즐기기 위해 끊임없이 여행을 떠났다.

 

한편, 행동주의 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동기에 따라 달라진다. 『여행의 심리학』의 저자 김명철씨는 이를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로 설명한다. 접근 동기란 뭔가를 얻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상을 받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하면, 이는 접근 동기다. 반면에 회피 동기란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것이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부모님의 꾸중이 있을 것이라 가정해보자. 이때 꾸중이 두려워 공부를 선택한다면 이는 회피 동기가 작용한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접근 동기가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는 여행을 통해 긍정적인 정서를 얻는 것, 일상의 삶에 만족하는 것, 문화 지능을 향상하는 것 등이 있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얻고자 여행을 떠난다. 회피 동기에 의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고자 여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국가 중 하나다. 지난 2017년 기준 한국 근로자 1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천24시간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 OECD 36개국 연평균 노동 시간보다 약 1.7개월을 더 일하는 셈이다. 이렇게 현대인들의 여행은 근로 중에 받은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회피 동기의 산물이 됐다.

 

긍정심리학적 관점에서 여행을 해석할 수도 있다. 긍정심리학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지속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본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할 때 행복감은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가졌으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불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추억은 비교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행에서의 경험은 타인의 경험과 비교되지 않음으로 행복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경험을 회상할 때,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다. 피크엔드(Peak-end)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험 전체를 기억하기보단, 경험을 하면서 감정이 가장 고조됐을 때와 가장 마지막에 느낀 감정을 종합해 기억한다. 여행을 통해 긍정적인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면 여행 당시의 부정적인 경험을 미화해 기억한다. 부정적인 기억은 미화되고 나빴던 순간은 잊힌다. 그 결과 여행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생존에 대한 보상으로, 다양한 동기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은 시련을 부과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견디고 못 견디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한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서, 혹은 내가 익숙한 곳에서 겪는 어려움이 자아 성찰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 여행하고 있는가? 이번 겨울 여행을 떠나며 스스로 질문해보자. 결국,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닐까.

 

*행동주의 심리학: 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객관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심리학 분야.

 

글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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