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비난’이 아닌 ‘비판’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멀리해선 안 된다 생각해왔다. 그렇게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도 존중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요즘 대학가가 시끌벅적하다. 내가 경험으로부터 내린 판단과는 동떨어진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란의 원인은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위로 인한 갈등이다. 이 시위를 반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과 한국 대학생들 간 갈등은 꺼질 줄을 모른다. 지난 10월 24일,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한국인 대학생들 모임’은 “Liberate Hong Kong”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연세대 교정에 처음으로 걸었다. 그러나 현수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 학생들에 의해 무단으로 철거됐다. 연세대뿐 아니라 고려대에서도 지난 11월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걸렸으나 금세 찢긴 채 발견됐다. 서울대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학교 안에 만든 ‘레논 벽(Lennon Wall)’에 ‘한국인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낙서가 남겨졌다.

 

홍콩 현지 상황은 한국 내 갈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는 매우 폭력적으로 진압되고 있다. 먼저 홍콩 정부에서 송환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의 경우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송환법을 추진한 것이 시발탄이 됐다. 반대하는 이들은 이 법이 홍콩의 인권운동가들을 중국으로 보내는 데 악용된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홍콩 시민들은 법안 추진을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그동안 경제 및 사회 분야에서 쌓였던 분노가 함께 터진 것이다. 시민들의 반발에 홍콩 정부는 강제송환법 철회를 발표했지만,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것을 철회할 것, 체포된 시위대를 석방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친중파로 분류되는 홍콩 정부의 경찰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던 중 홍콩 학생에게 실탄을 발사해 학생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 규모는 한층 더 커졌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지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시위는 6개월 차로 접어들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 진압의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강 건너 일어난 시위에 한국인들은 왜 동참할까? 우리는 역사 속에서 5·18 민주화 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룬 경험이 있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그 시절을 직접 체험한 건 아니지만, 분명 이 역사는 일종의 의식으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한국 대학생들은 중국의 폭력 진압을 ‘비민주적’이라 인식한다. 홍콩인들이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요구하건 이 이상의 것을 요구하건 시위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이것은 어떠한 식으로도 진압돼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학생들이 현재 홍콩의 상황에 침묵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현수막과 대자보를 찢는 중국 유학생들에게만 갈등의 책임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이미 외세로부터 여러 차례 뺏긴 홍콩을 다시 뺏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홍콩이 중국의 일부”라 생각해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는 비상식적이라 규정한다. 그들은 또한 시위대가 일반 홍콩 시민이 아닌 정치가들이며, 이들이 홍콩 전체를 교란하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니 그들 눈에 한국인들은, 중국의 입장도 모른 채 홍콩의 여론에만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그들이 홍콩 시위뿐 아니라 이에 동참하는 한국인들에게 화가 나는 이유다.

 

어느 편의 주장이 맞든지, 현재 대학가의 모습이 지성인들의 대화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시위를 통해 의견을 표현하는 학생들 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행위, 엄연한 표현의 산물인 현수막을 철거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 대학생들의 얼굴이 드러난 사진이나 영상 등을 무단으로 인터넷에 업로드하고 욕설하는 행위는 마치 인권도 존중도 없는 무규범의 싸움터 같다. 중국 유학생들은 욕설과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한국의 여러 대학에 걸려 있는 홍콩 시위 지지 현수막과 대자보는 엄연한 ‘표현의 자유’의 산물이다.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맞닿아있고, 생김새도 같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중국 유학생들에게 홍콩 시민들의 자유를 외치는 움직임은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대상일 수 있다. 홍콩인들에게 가해지는 중국인들의 반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한다 해서, 그 생각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를 비난하고 억압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더구나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을 접하고자 하는 유학생이라면 이런 자세는 더욱 지양해야 한다. 맹목적인 ‘비난’이 아닌, 지성인다운 ‘비판’으로 성숙한 공론장 문화에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송환법: 범죄인 인도법으로 홍콩이 중국 본토 등으로 범죄인을 인도하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글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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