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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도] 칼바람 섞인 하루에 식은 몸과 마음을 덥혀 줄 한 잔스코틀랜드의 '핫 토디'
  • 민수빈 양하림 기자
  • 승인 2019.12.02 00:20
  • 호수 54
  • 댓글 0

우리에게 무심코 털어 넣는 술 한 잔은 익숙하지만, 과연 그 술의 탄생과 비화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을까.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보거나 마셔봤을 ‘그 술’에 얽힌 이야기에 푹 빠져보자. 아는 만큼 마시게 될 것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은 온데간데없이, 날카로운 바람에 옷깃을 힘껏 여미게 되는 겨울이 찾아왔다. 두꺼운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감춰도 추위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 요즘이다. 그런데 여기, 가슴 속까지 뜨겁게 덥힐 수 있는 술이 있다. 올해 세계주도의 마지막 주인공인 이 따뜻하고 향긋한 술의 이름은, 스코틀랜드의 ‘핫 토디(Hot Toddy)’다.

뜨거운 술, 감기약이자 음료가 되다

핫 토디는 스코틀랜드에서 원기 회복과 감기 예방을 위해 마시던 핫 위스키(Hot Whisky)에서 유래했다. 스코틀랜드는 일 년 내내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냉대 기후를 띤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위로부터 몸을 덥히고 감기를 예방, 치료하기 위해 술을 뜨겁게 데워 물에 희석한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데우면 알코올이 증발해 도수는 낮아지고 술 본연의 향취는 매우 풍부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물과 섞는다 해도 뜨거운 위스키의 향과 맛은 가볍게 홀짝이기엔 무리가 있었을 터. 그래서 핫 위스키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레몬, 꿀, 시나몬 등을 곁들이는 칵테일로 발전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이들이 찾는 핫 토디의 유래다.

오리지널 핫 토디는 기본적으로 위스키를 사용한다. 하지만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위스키에 물이 아닌 홍차나 진저 에일*을 섞기도 하고, 위스키가 아닌 럼, 브랜디, 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쉽고도 다양한 제조법이 핫 토디를 더욱 대중적인 칵테일이자 국민 음료로 자리 잡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타임처럼 따스했던 회복의 시간

여러 자료에서 핫 토디를 스코틀랜드의 감기약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이 어떻게 감기약을 먹는 것처럼 몸을 낫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의아했다. 동시에 그 맛도 너무 궁금했다. 마침 쌀쌀한 바람이 옷 속까지 스며들던 어느 날 밤, 기자는 이러한 궁금증과 묘한 설렘을 안은 채 연희동의 ‘책바’를 찾았다.

책바는 1인 손님을 가장 환영하는, 책과 술의 공존을 지향하는 조용한 바였다. 어슴푸레한 초록 불빛이 가득한 술집 안에서 사장님이 조용히 자리를 안내했다. 책 모양의 메뉴판에는 핫 토디가 없었지만, 사장님께서 흔쾌히 준비해주시겠다고 했다. 이내 자잘한 꽃무늬가 예쁜 찻잔에 핫 토디가 담겨 나왔다.

가장 먼저 코에 닿는 향은 달고 진한 시나몬 향이었다. 레몬 슬라이스와 시나몬 스틱이 진노랑색의 따뜻한 술 안에 담겨 있었다. 온도는 후후 불어 마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을 녹일 수 있는, 딱 기분 좋게 따뜻한 정도였다. 입에 넣기 전까지는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달큰한 향이 선명하게 풍겼다.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는 핫 토디 속 위스키의 풍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전에 마셨던 위스키와는 분명 달랐다. 위스키 특유의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과 뜨거운 불을 삼킨 것 같은 목 넘김이 핫 토디엔 없었다. 약간의 위스키 향이 덧대진 쌍화탕을 먹는 느낌이었다. 나라는 달라도 감기약은 어디든 비슷한 맛인 걸까. 신기하게도 한 모금 한 모금 마실수록 평소 술을 마실 때와는 달리 목구멍과 가슴이 따스해지는 안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술을 이렇게 천천히, 차분하게 마실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날은 술이든 커피든, 그 맛을 온전히 즐기려면 그를 둘러싼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그날 밤, 책바와 기자의 핫 토디 한 잔을 둘러싼 공기는 지극히 고요하고 조용했다. 부지런히, 하지만 묵묵히 손님들의 술을 만드는 사장님의 움직임만이 백색소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흘러나오는 연주 음악을 들으며 한없이 오래 눈을 감고 있고 싶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 보면 마음속 응어리마저 순하게 풀어질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까지 잔뜩 움츠려지는 겨울날은 우리를 더욱 외롭고 힘없게 만든다. 눈을 떴다 감아도, 잠들었다 일어나도, 날씨는 따뜻해지지 않고 정해진 일상은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날이면, 조용한 곳을 찾아 핫 토디 한 잔을 청해 마셔보자. 몸과 마음이 나른해지고 따스하게 덥혀지는 그 순간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던 일상과 밉기만 했던 추위를 조금이나마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진저 에일: 생강으로 향기와 맛을 내 캐러멜로 착색한 무알코올의 탄산음료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민수빈 양하림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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