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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공감불능’에 ‘공감’할 수 있나요?『아몬드』는 현실이다
  • 김소현 기자
  • 승인 2019.11.24 20:53
  • 호수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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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공감불능 시대’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져 간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 소설 『아몬드』는 이런 공감불능 시대에 무거운 울림을 전한다. 『아몬드』는 괴물인 ‘나’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다. 선천적 감정 불능증을 앓는 ‘괴물’ 선윤재, 그리고 깊은 상처로 똘똘 뭉쳐 문제아로 살아가는 또 다른 ‘괴물’ 곤이, 그 둘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윤재와 곤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돌아보게 한다.

아몬드는 아몬드를 키우지 못한다

책의 제목 ‘아몬드’는 감정에 관여하는 부위 ‘편도체(amygdala)’에서 따온 말이다. 편도체(amygdala)는 아몬드(almond)와 유사한 모양을 가진다고 해서 ‘amygdala’라는 이름이 붙었다. 윤재는 편도체가 유독 작아 분노,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엄마는 윤재에게 감정을 가르치려고 애쓴다. 혹시라도 아몬드를 먹이는 것이 윤재의 머릿속 아몬드를 커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작정 아몬드를 많이 먹이기도 한다.
아몬드는 청소년을 겨냥해 쓰인 ‘영어덜트(young adult)소설’이지만 출간 이후엔 그러한 연령대 규정이 무의미해졌다. 전 세대의 인기를 얻으며 연령을 초월한 파급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기몰이의 이유는 ‘공감’에 있다. 소설 초반에 엄마는 윤재에게 일상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모범 답안’을 알려준다. ‘이런 상황에는 무조건 이렇게 하고, 누가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답해라’. 학창 시절 우리가 받아온 주입식 교육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에는 결함이 있다. 교육 대상자가 처한 현실과 무관하게 지식과 기술을 적립하려 들기 때문이다. 엄마의 가르침은 학생, 즉 윤재의 심리적 성장이나 인식 과정에 적합하지 않다. 엄마가 윤재에게 보여주는 일방적 교육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교실에 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는 엄마의 교육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을 예측하게 된다. 인간은 적립과 동시에 결과를 산출하는 AI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엄마와 할머니는 묻지마 살인을 당한다.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의 죽음을 방관하던 행인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고 말한다. 감정은 누구나 갖고 태어나며, 교육할 필요가 없는 요소다. 엄마가 윤재에게 주입하는 ‘감정 매뉴얼’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매뉴얼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것은 비단 윤재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라는 명분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 자신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대방에 맞춰 행동한다. 윤재의 엄마는 ‘주입식 감정 교육’을 하며 ‘표정의 경우, 무조건 상대와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편하다’고 가르친다. 기계적 반응이 아닌 진심으로 웃고 울었던 적은 언제였는지 고찰하게 되는 대목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싶어 하는 우리는 그 사람의 말과 표정이 진심인지 고민한다. 매뉴얼에 따른 기계적인 반응일까 하는 우려에서다.

각자도생 시대에
아몬드는 필요 없다

윤재는 또 다른 괴물, 곤이를 만나 성장한다. 『아몬드』 속 세상은 방황하는 곤이를 낙인찍었다. 아무도, 심지어 부모조차도 곤이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곤이는 감정이 풍부한 인물로 아무런 감정이 없는 윤재와 상반된다. 둘의 우정은 여기서 발전한다. 윤재의 자라나는 감정은 그가 매일같이 먹은 아몬드 덕이 아니다. 성장의 중심에는 곤이와 같은 주변 인물이 있었다. 곤이를 변화시키는 것도 윤재다. 윤재의 이야기는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은 내게 멀어지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인간이 되었다’는 윤재의 말은 무슨 뜻일까. 소설 속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듯, 우리 인간은 상호작용하는 존재다. 인간을 존중의 대상, 즉 ‘사람’으로 만드는 본질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사회는 윤재와 곤이를 낙인찍고, 그들을 보듬어주지 못했다. 소외된 두 인물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삶의 아픔을 이겨낸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치유받고 성장한다. 고질적일 줄만 알았던 윤재의 감정표현 불능증이 시간이 지나 나았듯, 우리는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할 때, 사람으로서의 자질을 얻는다.
아몬드를 섭취한다고 해서 편도체를 키울 수 없으며, 편도체의 크기를 조절한다 해도 서로의 감정까지 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점차 감정을 느껴가는 윤재의 성장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우리 사회가 타인과의 유대와 공감으로 ‘감정 불능’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것이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

세상의 냉혹함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아몬드에는 감정 없는 시선으로 적힌 구절이 많다. 독자들은 여기에 공감한다. ‘감정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윤재의 행동이 마냥 이상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감정에 무뎌져 타인에 공감하는 것에 서툰 우리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윤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감정 불능증은 윤재만의 것일까.

글 김소현 기자
smallhyun@yonsei.ac.kr
<사진 yes24>

김소현 기자  smallhyu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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