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망상이 공존하는 기억

인간에게 기억은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가 기억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과연 모두 사실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은 온전한 기억이 아닐 수 있다. 인간에게 기억은 무엇이며,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 병수는 자신의 모든 기억을 믿으며 동시에 의심한다. 병수에게 기억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워지는 기억과 위험한 기억

 

기억이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내는 과정’이다. 우리 뇌 속 해마라는 기관은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며 새로운 정보를 인식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해마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고, 심한 경우 아예 기억이 지워지기도 한다. 이를 일컫는 질병이 바로 알츠하이머병이다.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는 어제의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내 가족들이 누구인지도 헷갈려하며, 나아가 ‘나 자신’을 부정하는 최후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오늘은 정신이 너무 또렷하다. 내가 알츠하이머라는 것은 정말 사실일까?”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병수가 자신의 상태를 의심하는 대사다. 병수는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애쓰지만, 주변 사람들, 나아가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게 된다. 이처럼 기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온전하지 않다.

 

“그래 그걸 도둑 망상이라고 하지. 나도 그건 알아. 그런데 이건 망상이 아니야!”

 

독자는 소설 속 나열되는 병수의 기억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망상인지 알 수 없다. 이는 병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병수는 망상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현재 망상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망상은 사전적으로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이라고 정의된다. 주로 불안한 과거 등의 심리적 요인에서 기인하며 정신 질병으로 분류된다. 망상장애를 앓는 개인은 단편적인 기억을 조합하고 본인이 원하는 기억만을 사실이라고 인지한 채 자신의 과거 기억을 미화한다. 병수는 알츠하이머와 망상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기에 그의 기억은 불완전한 기억 그 자체였다.

알츠하이머병이 단순히 ‘지워지는 기억’이라면, 망상은 ‘위험한 기억’이다. 알츠하이머병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망상은 정신을 분열시킨다. 일례로 병수는 자신의 ‘딸’을 위협하는 ‘살인자’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자신의 간병인이었고, 자신의 ‘딸’을 위협한 사람이자, 끝내 그 딸을 죽인 사람은 병수 본인이었다. 이렇듯 온전하지 못한 기억을 믿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기억을 ‘인지’해야 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고, 망상장애를 앓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기억은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인간 기억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F. Loftus)는 기억에 관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의 가족에게서 들은 과거의 추억 세 가지와 피실험자가 어렸을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다는 가짜 기억을 적은 작은 소책자를 준비했다. 로프터스는 피실험자에게 소책자를 읽게 한 뒤 자신의 과거 기억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상세히 서술하라고 지시했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의 25%가 과거 자신이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기억은 날조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결과다. 알츠하이머병을 통해 기억을 잃지 않았어도, 망상장애를 앓고 있지 않아도 우리의 기억은 온전치 못하다.

로프터스는 인간에게 두 가지 기억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사실 기억, 또 다른 하나는 허위 기억이다. 허위 기억은 사실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기억이다. 인간은 사실 기억이라는 앙상한 뼈대 위에 스스로 살과 근육을 덧붙여 허위 기억을 만들어낸다. 허위 기억만을 기억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얇은 막 하나다’라고 주장한 로프터스의 말은 인간 기억의 불완전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온전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인간은 나의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 기억’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기억은 그냥 거기 남아 있을 뿐,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지, 말지. 오늘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한 번 물어봤으면 한다. 당신은 과연 믿을만한 기억을 갖고 있는가?

 

글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자료사진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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