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기 및 소방 시스템 실태를 파악하다

지난 2015년에는 우리대학교 과학원에서, 2016년에는 언더우드가기념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올해 5월에는 과학관 5층 실험실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학내에서 화재가 빈번히 발생하지만 우리대학교 화재감지기의 오경보가 잦아 이에 따른 학생들의 안전불감증이 극대화된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신문사는 우리대학교 화재경보 및 소방 시스템의 허점을 살펴봤다.

 

▶▶ 학생회관에 위치한 화재경보기다. 반복된 오경보로 학생들은 더 이상 화재 경보음에 반응하지 않는다.

 

잦은 오경보가 낳는 ‘양치기 소년’

 

지난 1월부터 11월까지 KT텔레캅(아래 KT)의 화재경보기 출동 건수는 102건에 해당한다. 그중 84건이 실경보가 아닌 오경보로 인한 출동이었다. 이는 실제 출동 건수의 약 82%에 달하는 수치다. 게다가 나머지 18건의 실경보 중 한 건을 제외하고는 실험‧공사 시 분진이나 연기 발생으로 인해 감지기가 작동한 경우다. 5월 22일에 발생한 과학관 5층 실험실 화재를 제외하고는 실제 화재로 인한 경보는 없었던 것이다. 가장 많은 오경보가 있던 8월에는 무려 15건이 기록되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오경보가 발생한 셈이다.

오경보가 잦은 이유로 우리대학교가 저가의 일반형감지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꼽힌다. 일반형감지기는 화재상태와 비화재상태의 디지털 신호를 전송해 오경보를 울린다. 기후, 공사, 가스, 냉난방기 등을 화재 시 발생하는 연기 혹은 열로 잘못 감지해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총무팀 관계자 A씨는 “비가 오거나 습한 날 또는 내부 공사로 먼지가 날릴 때 오경보 빈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가인 아날로그 화재감지기의 경우 연기의 농도를 더 정밀하게 감지해 화재 시와 그 이외의 경우를 보다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A씨는 “많은 화재감지기가 필요한 학교의 특성상 고가의 화재감지기를 설치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오경보는 화재감지기에 대한 신뢰도를 낮춘다. 이러한 실정이 학내 구성원들을 경보에 무뎌지게 해 안전불감증을 야기한다는 우려가 자연히 뒤따른다. 김연승(불문/사회‧15)씨는 “오경보가 반복되다 보니 화재 경보음이 울려도 그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실제 수업 중 경보기가 울렸을 때도 다들 동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화재경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는 “오경보가 반복되면서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학교 당국조차도 무감각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늦어지는 상황 파악, 위험도 커져

 

화재경보음은 상황 파악이 모두 끝나 비화재라고 판단했을 때 수동으로만 멈추게 돼 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일반형감지기의 경우 하나의 회로에 여러 개의 감지기가 연결돼 있어 작동한 감지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A씨는 “건물 층수 등 대략적 위치만 알 뿐 화재경보기가 정확히 어디서 울리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화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층 전체를 돌며 문이 잠긴 공간도 일일이 열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아날로그 화재감지기는 회로 당 하나의 감지기가 설치돼 있어 경보의 위치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게다가 건물에 상주하는 인력이 화재 파악에 동원되지 않아 확인이 더 늦어진다. 우리대학교의 경우 화재경보기가 작동하면 학술정보관에 위치한 KT 상황실에서 해당 건물로 출동하는 데까지 5분 내외가 걸린다. 반면, 고려대에서는 각 건물에 경비‧청소‧행정 인력으로 구성된 자율소방대가 일차적으로 출동한다. 고려대 관계자는 “자율소방대가 출동 인력이 도착하기 전 상황 파악을 마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대학교는 건물에 상주하는 인원에게 출동의 책임이 없다. A씨는 “기본적인 교육은 하고 있지만, 화재경보기 관리가 다른 업무보다 미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KT 관계자가 도착하기 전까지 상황 파악 및 대처가 어려운 것이다. 서대문 소방서 박성규 소방위는 “관리인이 화재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진압해야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상황 파악에서의 5분은 매우 큰 차이”라고 말했다.

 

화재 대피, ‘스스로’ 해야 하나?

 

실화재에 대한 대응책이 허술하다는 점도 문제다. 총무처에서 제공하는 화재대응 관련 매뉴얼에는 「연세대학교 화재사고 대응매뉴얼」(아래 화재 매뉴얼)과 「화재경보 발생 시 대처요령」(아래 화재경보 요령)이 있다. 화재 매뉴얼은 화재 발생 시 입을 막고 몸을 낮추는 등 개인의 대피요령을 중심으로 기술돼있다. 화재경보 요령은 상황실 및 당직 직원을 대상으로 배포된 짧은 매뉴얼로, 화재감지기의 종류와 작동구조, 보고체계 등을 담고 있다. 두 매뉴얼 모두 수업 등에서의 구체적인 상황대처 요령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화재경보가 울리면 이에 대한 대응은 순전히 그 상황에서 지도자의 재량에 달려있다. 가령, 수업 중 화재경보가 울렸을 때 교수는 이를 무시하고 수업을 계속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안재연(SDC·18)씨는 “수업 중에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 교수는 수업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교수가 대응하지 않으면 학생도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고, 느낀다 해도 교수의 지시 없이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긴급 상황에서 기초 대응을 할 인원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우리대학교는 올해부터 야간경비인력을 모두 무인감시시스템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KT가 모든 건물을 관리하지만, 건물 내부에 상주하는 인력은 없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과 연구원들이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즉각 대처할 방법은 없다.

이는 대피가 개인 차원의 문제로 넘어가는 현상을 초래한다. 이에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된다. 우리대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소방안전교육 ▲재난 안전주간 화재대피훈련 ▲기숙사 화재대피훈련 ▲이공계열 강의동 화재대피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훈련이 진행돼도 학생 참여율은 저조하다. A씨는 “최근에도 훈련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소방훈련을 모른다. 김씨는 “외국에 거주했을 때는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다양한 재난 상황에 대비해 대피 장소나 소화기 위치 등 행동 요령을 교육했다”며 “하지만 우리대학교에서는 한 번도 배운 기억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에는 학생들이 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강제성 혹은 유인책이 없다는 이유가 있다. 고려대는 한 학기에 번갈아 가며 40개의 건물에서 화재대피훈련을 실시한다. 훈련 시에는 건물 내의 모든 인원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도록 강제한다. 박 소방위는 “연세대의 경우 강의실 및 일반 건물에서 소방훈련을 실시해도 학생들의 참여율이 낮다”며 “학점 연계를 통한 화재대피훈련·교육을 진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재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 학교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일수록 화재경보와 대피, 훈련 시스템은 더욱 중요하다. 서대문 소방서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대학교는 서대문구 내 대학교 중 화재 빈도수가 가장 높다. 위험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보다 철저히 대비하려는 학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박채린 기자
bodo_booya@yonsei.ac.kr
변지현 기자
bodo_aegiya@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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