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폐지: 우연성으로 우연성을 해결하려는 무책임한 정책

이주현 (심리·18)

 ‘내 노력으로 특목고에 들어와 더 깊게 공부하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자 한다. 공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는 많은 우연성이 개입한다. 일단 공부하는데 필요한 지능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실성 등의 유전적인 기질을 타고나야 하며 적어도 읽고 싶은, 혹은 필요한 책들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개인이 공부를, 특히 특목고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데에는 우연성이 개입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가정환경 등으로 인해 타고난 기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특목고 입시에 개입되는 여러 우연성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맞긴 하다. 하지만 특목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특목고가 폐지될 시 생겨날 문제점은 많다. 그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인 ‘특목고에 모여 있는 실력 있는 교직원들의 분산’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겠다. 특목고에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교직원들을 채용하며, 이들의 재량에 따라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이런 좋은 선생님들의 양질의 수업을, 이전에는 나름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 ‘공부를 잘할 것이다’라는 판단을 받아 입학한 학생들이 들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운에만 기대어 그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이 양질의 수업을 듣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더 공정한 교육일까? 공부를 잘하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는 게 공정할까, 아니면 어떤 수업은 질이 높고 어떤 수업은 질이 낮은, 들쑥날쑥한 교육을 받는 게 공정할까. 우연성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더 많은 우연성을 만들어놓고 방관하는 것, 특목고 폐지는 이렇게 무책임한 정책이다.

사립 초등학교, 공립 중학교, 그리고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거치고, 여러 선생님을 만나보며 내가 도달한 결론은 좋은 선생님의 수는 한정돼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우선 좋은 선생님의 수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과 이 선생님들에게 배울 수 있는 우선적인 기회를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좋은 교원이 모자란다면 교원평가 제도를 엄격히 해 기존의 ‘질 낮은’ 교원들을 걸러내면 된다. 특목고가 자질은 있지만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기회균등전형을 확대해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학생이라도 본인이 원하는 교육을 받도록 도우면 된다. 이런 다른 해결책들이 있는데도 단순히 특목고가 서열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없애버리고 그 안의 교원들을 무작위로 흩어놓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특목고는 특혜가 맞다. 특목고가 제공하는 교육과정과 이로 인한 상당히 좋은 입시 아웃풋도 역시 특혜가 맞다. 특목고에 들어가는 과정도 우연성이 개입된다. 하지만 이 특혜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없애기보다 이를 얻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고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맞다.

파이가 한정된 건 맞다. 하지만 반죽도 남아있다. 그렇다면 파이를 더 구우려고 하는 게 더 좋은 해결방안이 아닐까. 오븐을 켤 생각도 없이 이미 만들어진 싸늘하게 식은 파이의 부스러기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이 정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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