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저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입니다”'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 기획 및 제작자 최윤제 PD를 만나다
  • 조수빈 기자
  • 승인 2019.11.17 22:25
  • 호수 1842
  • 댓글 0

누군가에겐 설렐 새 학년, 새 학기가 두렵기만 한 사람들이 있다. 학교에서 겪었던 소외의 기억은 어른이 돼서도 이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픈 이야기를 용기 내서 말하는 이들이 모였다.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를 기획한 최윤제 PD를 만났다.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 기획자 최윤제PD는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마이크를 잡았다.

Q. 본인과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A. 현재는 뉴미디어 브랜드 ‘씨리얼’을 퇴사했지만, 씨리얼 내에서 ‘왕따였던 어른들’, ‘전과자의 자식들’, ‘청소년 성매매’ 등을 기획·제작한 최윤제 PD라고 한다. ‘왕따였던 어른들’은 기존의 학교폭력 예방 영상이 아닌 ‘왕따 선배’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한 공간에 모여 저마다 소외의 기억을 나누고, 그 이야기를 세상 밖에 내보내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확신했다.

Q.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요즘에 학교폭력을 경험하면 학생들이 상담센터가 아닌 ‘유튜브’를 찾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유튜브에 검색해봤을 때 제대로 된 학교폭력 관련 영상이 없었다.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가 20대에게는 공감을 줄 수 있고 10대에게는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극심한 소외를 겪어봤고,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말이 세상 밖으로 나간다면 지금 정신적·육체적 폭력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10대와 상처를 갖고 자란 어른들에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Q. ‘어른이 된 왕따’라는 주제가 새롭다. 학교폭력 피해의 뒷이야기를 다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또래 집단에서 배제된 기억은 때때로 삶의 의지를 꺾을 정도로 아프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96%가 ‘과거의 기억이 여전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학교폭력은 학창 시절에 겪은 일이고, 이제는 마주하지 않아도 될 기억이지 않나. 그런데도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거다.

순간 느꼈던 여럿의 시선, 그때 났던 냄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 등 감각이 어른이 된 피해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아파하면서도, 그 상처를 딛고 어른이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유튜브에 게시된 ‘왕따였던 어른들’ 영상은 조회 수 300만을 돌파했고, 일명 ‘왕따 펀딩’은 10일 만에 목표액 1천500만 원을 달성했다.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가 이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왕따’라는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어느덧 20여 년이 됐다. 왕따는 사라지기는커녕 학창 시절에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학교폭력을 겪는다. 반에 30명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1명은 왕따, 4명에서 5명은 가해자, 그 외에는 방관자다.

사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와 방관자 모두 학교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방관하고 가해하는 것 아니겠나. 방관자는 물론 가해자마저도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낀다. 학교폭력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좋은 반응이 있던 것 같다.

Q.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인터뷰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했나.
A.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설문지로 400여 명의 사연을 받고 그중 30여 명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가해자와 방관자를 탓하기보다는 지금 비슷한 상황에 처한 10대를 걱정했다. 그리고 같은 상처를 갖고 자란 어른들을 위로하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했다.

Q.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A. 영상이 업로드된 후 출연진들이 마주할 상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혹여나 출연진들이 악성 댓글을 마주하게 될까봐 걱정했다. 혹은 가해자들과 원치 않는 조우가 이뤄질까 불안했다. 다행히도 출연진들이 괜찮다면서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해줬다. 함께 있으니까 극복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Q. 영상의 번외편으로 『나의 가해자들에게』라는 책을 냈다. 학교가 연상되는 구조로 편집된 특성이 돋보이는데, ‘여자반’과 ‘남자반’으로 나눠서 구성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A. 성별에 따라 학교폭력의 양상이 다르다. 남자들 간에는 주로 신체적인 폭력이 많다. 그리고 서열화가 주된 특징이다. 강자와 약자로 확실히 나뉘어 있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힌다. 여자들은 조금 더 세밀하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따돌림이 시작되고, 은밀한 폭력이 가해진다. 영상도 두 개가 느낌이 다르다. 그 다른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눴다.

Q.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교육청 차원에서 실태조사와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또 교내에 상담센터를 세우고 ‘피해자 특화 위(Wee) 센터’와 연계하는 프로그램인 위(Wee)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A.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위(Wee) 클래스’에 대해 주변에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 선생님들도 비전문가들이고, 공감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실적 쌓기에만 급급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밀보장도 안 된다고 한다.

Q.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
A. 학교폭력은 한 사람의 일생을 거둬갈 수 있을 만큼 잔인하고 강력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만연하다. 3월이면 시작하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이미 소외가 시작된 교실을 회복시키기 어렵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교실 안에서 방관하는 아이들을 바꾸기란 더욱 쉽지 않다. 폭력은 아마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모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최윤제 PD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아픔을 완전히 극복하고 건네는 충고보다, 현재까지도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건네는 위로가 더 힘이 될 때도 있다.


글 조수빈 기자
mulkong@yonsei.ac.kr

<자료사진 씨리얼>

조수빈 기자  mulko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