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아이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는 미혼부
이웃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여성이라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배우자 없이 아이를 키우는 남성도 있다.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미혼부의 현실을 조명했다.
미혼 육아는 부모 가리지 않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이들을 미혼 한부모라 한다. 지난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미혼 한부모 가구 중 미혼부는 약 21.1%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정책에서 미혼부가 빠진 경우가 많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의 ‘한부모가족지원’ 카테고리를 보면 공동생활 지원 대상자로 ‘미혼모’만 명시돼 있다. 미혼부도 지원 대상이지만 빠진 것이다. 여성가족부 가족지원과 관계자는 “정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원 역시 부족하다. 지난 2018년 기준으로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경기도 내 미혼모 가족 복지시설은 8곳이었다. 따로 등록된 미혼부 보호 시설은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혼부는 출생신고도 할 수 없었다. 지난 2013년 8월, 미혼부의 출생신고 권리를 요구하는 ‘사랑이 아빠’의 1인 시위가 화제가 됐다. 출생신고가 불가능하니 법적으로 딸을 딸이라 말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도 보낼 수 없고 아파서 병원에 가도 수십만 원을 내야 했다. 시위 끝에 2015년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사랑이법’이 만들어졌다. 부녀 간 유전자가 일치하고, 친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아이를 미혼부 아래로 출생신고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출생신고는 ‘엄마’ 만 할 수 있다?
‘사랑이법’이 제정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출생신고는 여전히 엄마만의 권리로 여겨진다. 지난 2015년 100건이 넘는 미혼부 출생신고가 있었지만 단 16건만이 허가됐다. 심지어 자식과 친부의 유전자가 99%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친모의 이름을 안다는 이유로 기각한 사례도 있었다. 개선된 법을 현실이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친모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한다는 점이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어렵게 만든다. 아이를 미혼부의 호적에 올리려면 친모와 헤어진 사유나 친모의 인적 정보를 모르는 이유를 법원에 밝혀야 한다. 재단법인 ‘동천’ 관계자 A씨는 “미혼부가 친모의 인적사항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청구가 기각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출생신고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출생신고를 신청한 뒤 미혼부는 DNA 검사를 진행한다. 그 후에는 엄마를 찾지 못한다는 진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과정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법원이 보정명령을 내리면 미혼부는 그때마다 변호사를 고용해 진술서를 다시 써야 한다.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권영실 변호사는 “사랑이법이 개정됐지만, 현실적으로 바뀐 게 없고, 추가법안도 발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출생신고 없이는 권리도 없는 미혼부의 아이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혼부의 아이들은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당장 기본적 의료행위부터 보장받지 못한다. 온 국민이 드는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자료에 따라 건강보험에 가입하려면 신분증명서가 필요하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혼부의 아이들은 신분증명서가 없다. 병원에서 치료는 받더라도 보험 지원을 받지 못해 막대한 진료비를 부담해야만 한다. 미혼부 중 소득이 적은 이들로서는 아이가 아파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는 셈이다.
미혼부의 아이들은 필수교육에서도 배제되기 쉽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라 학교에 입학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가 등록되지 않는다. 학교에 입학할 수 없으니 의무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아동복지센터 관계자는 “모든 아동복지지원은 출생신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미혼부의 아이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기본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글 조서우 기자
mulk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