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수학 천재들이 카지노를 향해 치켜든 무기, ‘계산’
19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명문 사립대 MIT의 학생들이 모여 카지노와 정면 대결을 벌였다. 비싼 학비로 고민하던 케빈 루이스(Kevin Lewis)를 눈여겨본 교수 미키 로사(Micky Rosa)는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카지노를 상대로 이기는 게임을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케빈은 미키를 의심했다. 하지만 미키의 동업자들이 현찰 1만 달러를 눈앞에서 흔들자 유혹에 넘어갔다. 그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금요일 밤마다 보스턴에서 대륙을 건너 밤빛으로 치장한 죄악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간다. 케빈은 블랙잭 테이블에 앉아 마피아의 눈을 속이고 한 게임당 1만 달러를 딴다. 그의 무기는 ‘확률 계산’이었다. 빠른 두뇌 회전으로 ‘부잣집 아들’, ‘술 취한 도박인’ 등을 연기하는 동시에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는 카지노를 상대로 몇 차례 대승을 거둔다. 지난 2002년, 미 대륙에 돌풍을 일으킨 벤 메즈리치의 책 『Bringing Down the House』(MIT 수학 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속 이야기다.
카지노의 허점을 파고든 ‘카드 카운팅’
이 소설은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블랙잭(Blackjack)’을 다룬다. 블랙잭은 플레이어끼리 하는 포커 등의 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와 카지노에 속한 딜러(Dealer)와의 게임이다. 딜러와 플레이어가 가진 카드값의 합이 21에 더 가까우면서도 21을 넘지 않는 쪽이 승리한다. 잭과 에이스가 만나면 숫자 21, ‘블랙잭’이 된다. 21이 넘어가서 지는 경우를 ‘버스트(bust)’라고 한다. 만약 딜러와 플레이어 모두 버스트할 경우 딜러의 승으로 간주한다. 카지노가 더 유리한 규칙이다.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행운의 게임’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 카지노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것. 카지노의 게임은 판을 거듭할수록 플레이어들이 돈을 더 많이 잃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돼 있다. 카지노가 각 게임에서 갖는 평균 승산 확률을 ‘하우스 엣지’(House Edge)라고 일컫는다. 모든 게임은 양의 하우스 엣지 값을 갖는다. 게임당 하우스 엣지는 적게는 0.5%에서 많게는 30%까지도 올라간다. 널리 알려진 아메리칸 룰렛(American Roulette)의 하우스 엣지는 5.26%다. 블랙잭은 하우스 엣지가 0.5~1.5% 정도로 낮은 편에 속한다.
카지노는 블랙잭에서 플레이어가 온전히 운으로만 대결한다고 가정한다. 어떤 카드가 사용됐는지 플레이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현실적인 허점을 파고든 것이 바로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이다. 카드 카운팅이란 플레이어가 이미 소진된 카드가 무엇인지 기억해 슈*에 어떤 카드가 남았는지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행위를 말한다. 카드 카운팅을 하는 플레이어는 카지노와의 승부에서 1.5~2%의 승산을 가진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카지노의 슈에는 6~7개의 덱**이 들어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카드 중 어떤 카드가 사용됐는지 보고 기억하다가는 게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카드 카운터들은 각자의 전략을 통해 카드를 점수로 환산해 계산한다. 그 전략 역시 다양하다. 가령 한 전략은 에이스, 10, 잭, 퀸, 킹에 –1의 값을 부여한다. 2, 3, 4 등 낮은 수의 카드에는 +1의 값을 부여하고, 중간에 있는 나머지의 카드들은 0을 부여한다. 카드 카운터는 자신과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에서 노출된 카드에 배당된 값을 모두 합한다. 합한 값이 커질수록 다음에 노출될 카드 값이 크다고 본다. 반대로 합한 값이 낮아질수록 다음 카드의 숫자가 낮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카드 카운터는 자신 앞에 주어진 카드와 자신이 합산한 값으로 다음 차례에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판단한다. 이에 따라 승산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는 게임에는 크게 베팅하는 것이다.
한 플레이어가 적은 돈을 베팅하다가 갑자기 많은 돈을 베팅하면 카지노의 의심을 사기 쉽다. 소설 속 MIT팀은 베팅 금액의 범위에 따라 세 팀으로 나눴다. 적게 베팅하는 플레이어는 테이블에서 카운트를 이어간다. 팀 내부의 암호로 각 테이블의 카드 카운트 점수를 공유한다. 어떤 테이블의 카운트가 높아지면 큰 금액을 베팅할 플레이어들이 테이블에 합류한다. 승리한 플레이어는 거액을 가져간다.
확률 게임에서 이겨도
카지노를 이길 수는 없는 이유
이 책이 발간된 후에는 큰 논란이 일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이 책에는 카드 카운팅을 한 대학생들이 카지노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카지노에게 발각돼 악명 높은 ‘카지노의 지하실’로 끌려가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케빈의 동료 딜런은 카지노에서 딴 돈을 집에 보관해뒀다가 전부 도둑맞는다. 케빈 역시 자택에서 침입의 흔적을 발견한다. 케빈은 블랙잭과의 인연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카지노의 무자비함을 폭로하는 이 책이 처음 발간됐을 때, 카지노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카지노의 우려와 달리, 많은 독자가 카드 카운팅에 도전하고자 카지노를 찾기 시작했다. 오히려 카지노 산업에 순풍이 분 것이다. 책은 큰 인기를 끌었고, 영화 『21』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카드 카운팅은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계산이기에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카지노는 갖은 방법으로 이를 막고자 한다. 이 책이 출판됐을 때까지만 해도 카지노에서는 투명한 슈를 사용했다. 현재는 많은 카지노에서 불투명한 슈를 사용해 덱 수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덱 수도 대폭 늘렸다고 알려져 있다. 덱 수가 늘어나면 카드 카운트 값이 얼마나 돼야 승산이 높은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임의의 시점에서 이미 소진된 카드를 새 카드에 섞기도 한다. 소진된 카드를 보며 다음에 나올 카드값을 예측하는 플레이어는 처음부터 계산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카지노의 방어벽을 뚫고 카드 카운팅을 시도하는 플레이어는 이내 덜미를 잡히고 쫓겨난다. 카지노는 항상 플레이어를 감시하고 있으며, 한 번 카드 카운터로 낙인찍힌 플레이어는 카지노 계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다. 이제 다른 카지노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카지노는 정교한 설계로 승산을 좌우한다. 그들을 이기려 할수록 설계는 더 치밀해진다. 카지노에 도전장을 던진 플레이어는 피폐해져 쫓겨난다. 카지노에서의 ‘단꿈’은 헛된 생각이다.
*슈(shoe): 덱을 보관하기 위해 카지노가 이용하는 장치. 상자의 형태로 제작돼 카드를 뽑기가 쉽다.
**덱(deck): 트럼프 카드를 구성하는 52장의 카드 한 세트
글 변지현 기자
bodo_aegiya@yonsei.ac.kr
<자료사진 Getty Images, https://www.imd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