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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 이승정 보도부장(ECON/CLC·16)
  • 승인 2019.11.11 00:12
  • 호수 1841
  • 댓글 1
이승정 보도부장
(ECON/CLC·16)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드라마 『또 오해영』에 나오는 대사다. 속상했던 어느 날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해주고픈 말이라면서 들려줬다. 나는 이 대사를 애틋한 또 다른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다.

아이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비난의 화살은 늘 본인을 향해있었고 수차례 스스로를 벽에 세게 밀쳤다. 그때마다 부서지는 건 자신이었다. 아이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다. 남들보다 뒤처진다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했고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사람 취급했다. 그렇게 해야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남은 건 욱신거림과 제대로 아물지 못해 흉진 상처뿐이었다. 자신을 무참히 깎아내린다고 달라지는 것도, 더 나아지는 것도 없었다. 아이는 산산조각나 있었다. 가여웠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 했지만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는 늘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내가 누군지 보다는 어떻게 보일지 더 신경 썼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게 있어도 원한다고, 갖고 싶다고 똑바로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 게 아닐까. 나보다 더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걸 알면서 내 생각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난처해하겠지. 아이는 고민만 했다.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본인 위주로 살아가는 이들이 부러웠다. 쟤들은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이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은 의식적으로 힘을 들이는 행위라 상당한 대가가 따른다. 보통은 정신적인 대가다. 아이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감추고 안으로 밀어 넣기 바빴다. 뭔가를 말할 때는 수천 번 생각하고 나서야 입 밖으로 꺼냈다. 문제는 아이가 고민을 속으로 쌓는 법만 알았지 치우는 법은 몰랐다는 거다. 고민을 어떻게 해소할지 묻는 것도 바보처럼 보일까 봐서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고민을 덜어내 보기로 했다. 누가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소리쳐봤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했다. 몇 시간을 혼자 끙끙 앓았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조금만 참을걸. 그 사람도 그럴 이유가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역시 난 마음이 넓지 못해, 라면서.

스스로가 답답하다고 흐느끼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나는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토닥였다. 힘들면 말해. 고민이 있으면 고민이 있다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해.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몰라.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말하지 않고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건 헛된 바람일지 몰라. 사람들은 네가 그저 의연한 아이라고 생각하겠지. 네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사람들은 네 고민의 깊이를 몰라. 무조건 꾹꾹 참는 거, 그거 너만 아파. 네가 먼저 네 목소리를 들어줘.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도 들려줘. 네가 먼저 널 애틋해했으면 좋겠어. 용기 낸 과거의 너와 슬퍼하는 지금의 너 그 모두를 좋아해줘.

그날 이후로 아이는 웃음을 되찾은 듯해 보였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그 웃음이 슬퍼 보였던 건 아마 내가 아이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겠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아이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는 요즘도 종종 힘들어한다. 아이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돼주고 싶지만 나도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긴 매한가지다. 이 이야기 속 아이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이렇게 끄트머리에서나 밝히니 말이다.

한번 깨진 그릇은 아무리 조각조각 붙여도 금이 남아있다. 수없이 부서진 나라는 조각들은 위태롭지만 얼추 잘 짜 맞춰져 있는 듯하다. 또 부서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어붙이면 된다. 금은 가 있어도 모양은 유지하고 있을 테다. 진짜 단단한 사람이든, 단단해지려는 사람이든, 단단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든 그 모든 게 나다. 내가 먼저 나를 아껴줘 보려 한다. 난 이런 내가 애틋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

이승정 보도부장(ECON/CLC·16)  bodo_gongj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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