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종교전쟁부터 현대의 사이비 논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서나 종교는 분쟁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교리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찾기 위해 『The Y』 기자들이 나섰다.

 

<희연 기자의 개신교 체험기>

희연: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성장, 석가탄신일이나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절에 간다. 학교에서 채플을 듣고 있지만, 개신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무작정 교회를 찾아가기엔 용기가 부족해서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교회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따라서 가본 이후로는 처음이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찬송가도 부르고 목사님 말씀도 들었던 것 같은데,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오늘은 오후 예배를 드리고 이후에 있는 모임까지 참석할 예정이다. 강당은 채플을 듣는 곳과 비슷해서 분위기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모든 찬송가는 가요처럼 편곡됐고, 밴드 세션도 따로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예배를 하는 내내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정적으로 임했다. 특히 무대 가운데에서 찬송을 진행하는 사람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노래를 충격적으로 잘했다. 나는 개신교 신자가 아닌데도 노래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무대 매너도 수준급이었는데, 노래 중간에 그가 “주님을 향해 소리 질러!”라고 외치면 모두가 콘서트장의 관객처럼 호응했다. 내가 생각했던 교회는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이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찬송이 끝난 후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됐다. 목사님은 혹시 처음 온 사람이 있냐며 말을 꺼냈다. 투철한 체험 정신으로 무장한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손을 들었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장미꽃을 든 사람이 튀어나와서 내게 장미를 줬다. 그러자 강당 안에 있는 300명의 사람이 귀여운 율동과 함께 환영의 노래를 불러줬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무려 300명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목사님은 세상을 바꾸는 선한 영향력을 주제로 설교했다. 굳이 개신교 신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주제였다.

예배 시간 이후의 ‘순모임’은 교인들이 조를 짜서 모이는 친목 도모 시간이다. 나는 친구가 있는 조에 슬쩍 꼈다. 같이 밥을 먹고 근황 이야기도 했는데, 매일 기록해둔 감사한 일 세 가지를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습관이 될 것 같다. 내가 하루만 참여한다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친절하게 대해줬다. 다음에 또 들르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느낀다.

 

<인영 기자의 이슬람교 체험기>

인영: 3대가 교회에 다니는 집안에서 성장한 신실한 개신교인. 이슬람교 룸메이트와 살아본 경험도 있고, 고등학교 때 이슬람교에 대해 배운 적도 있다.

기자는 주변에 이슬람교도 지인이 없어 혼자 성원에 방문해야 했다. 다소 낯선 이슬람교를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한국이슬람교 홈페이지에서 성원 방문을 신청했다. 한국에는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등 전국 각지에 총 30여 군데에 성원이 있다. 기자는 이태원의 서울중앙성원에 방문했다. 낯선 디자인의 건축물이 반겨줬다.

이슬람교는 매일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교회의 일요 예배와 가장 비슷한 예배는 금요일 낮에 드리는 합동 예배다. 다른 날에는 꼭 성원에 모이지 않아도 집안이나 밖에서 15~20분 동안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지만 금요합동 예배는 성원에 모두 모여 설교를 듣고, 함께 절하는 방식으로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금요 예배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금요일 합동 예배가 있는 날에는 이맘*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토요일 예배를 다녀왔다. 이슬람교는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드리는데 기자는 그중에서도 저녁 예배인 ‘마그립’에 갔다.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이 성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종종 한국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낮 5시 51분.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아잔’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슬람교는 남성과 여성이 예배드리는 장소가 분리돼 있다. 기자가 올라간 3층 예배당은 남성이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었다. 이슬람교도가 아닌 기자는 예배당 밖에서 예배를 지켜봤다. 이슬람교인은 예배에 앞서 손과 발 등을 씻고 예배당에 들어간다. 예배당에 들어간 사람들은 줄을 맞춰 양손을 귀까지 올리고 예배자는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는 뜻이다. 이후 코란의 구절을 암송했는데 한국어가 아니라서 알아듣지는 못했다. 코란 암송이 끝난 후 사람들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절을 반복했다. 오랜 시간 힘든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신에게 예를 갖춰 경배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 전에는 이맘 선생님을 만나 이슬람교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이슬람교가 ‘테러를 조장하는 종교’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원래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다. 우리는 일부 극단적 사례를 보고 이슬람교 전체에 편견을 가졌던 건 아닐까? 이맘님의 설명을 듣고, 예배를 지켜보며 이슬람교에 관한 오해가 풀렸다.

 

*이맘: 이슬람교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직명으로 예배를 지도하기도 한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종교철학과 정재현 교수에게 묻다

Q. 사람들이 자신이 믿지 않는 종교를 차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종교란 본래 ‘으뜸 되는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그 가르침은 사랑과 평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종교 자체만 놓고 본다면 분쟁이 존재하기 어렵죠. 현재 나타나는 차별은 종교가 아닌 종교인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나 욕망은 무한하지요. 이런 욕망은 문명이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하지만 욕망은 종교에까지 뻗치게 됩니다. 그렇게 욕망이 녹아든 종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게 됐죠. 나와 같은 것만이 옳은 것이며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됐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종교전쟁과 테러가 일어난 것이죠. 그 결과 신의 이름을 빌려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일이 만연해졌습니다.

 

 Q. 이런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나요?

나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같음(identical)’에서 찾는 태도를 버려야 하죠. 우리는 같음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다름으로도 이뤄졌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그릇됨이 있을 수도 있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모든 종교가 남이 아닌 나를 우선 성찰하는 것을 가르치죠. ‘자아에 문제가 있으니 내면을 버리고 비우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같은 맥락입니다.


글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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