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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예술가] 연구자 생활공동체 ‘수유너머 104’타인을 향한 배려와 환대의 공간
  • 김병관 박민진 기자
  • 승인 2019.11.03 23:06
  • 호수 53
  • 댓글 0

‘수유너머 104’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은 다른 단체와 조금 달랐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전체 운영 회의에서 논의해봐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답을 듣고 마음속에서 의문 하나가 생겼다. ‘그냥 대표가 결정해서 통보하면 되는 거 아닌가?’ 수유너머 104 권용선 연구원은 “우리는 대표가 없다”고 답했다. 모든 회원이 곧 대표라는 것이다.

연희104고지 정류장 부근에 자리한 수유너머 104는 ‘코뮨(commune)’을 지향하는 연구자 생활공동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생활한다. 각기 다른 전공자가 모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저녁을 함께 지어 나눠 먹는다.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실무도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눠 맡는다. 언뜻 보면 유토피아 같은 신비로운 공동체 수유너머 104에 대해 권 연구원과 이야기해 보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수유너머 104 연구원 권용선이다. 대학에선 한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수유너머에선 동아시아 근대성,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공부하고 강의했다. 최근엔 문학에 다시 관심이 생겨서 세계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사회적 고민이나 철학적 담론 상의 고민을 문학의 영역에 재배치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Q. 수유너머 104와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됐나.

A. 지난 1999년 수유리에 있었던 국문학 박사 모임 ‘수유연구실’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을 합쳐 만든 ‘수유+너머’가 이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남산으로 연구실을 옮기고, 여러 조직으로 분화되며 지금의 연희동 수유너머 104가 됐다. 나는 수유연구실 때부터 함께 했다. 대학 시간강사였을 때 신문자료로 세미나를 하고 싶었는데 이미 수유연구실에서 관련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부터 20년 넘게 수유너머에서 활동하고 있다.

Q. 수유너머는 ‘코뮨’을 지향한다고 했다. 코뮨이 무엇인가.

A. 코뮨은 콤파냐(Compagna)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콤파냐는 ‘빵을 나눠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코뮨은 쉽게 말하면 ‘빵을 나눠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소유를 증식하는 곳이라면, 코뮨은 자신의 소유를 공유하는 곳이다. 우리는 지식을 개인적인 연구업적이나 소득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람들과 나누며 더 풍족한 지적 결과물을 생산한다. 우리 사회는 입신출세하기 위한 공부에 익숙한데, 혼자서 고독하게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서로 다른 활동기반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면 지적 경계를 확장할 수 있다.

연구실의 생활경제도 서로 배려하고 선물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저녁을 함께 지어 나눠 먹는 것은 연구실의 몇 안 되는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방 매니저를 맡은 회원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주방 매니저를 따로 포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회원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선물의 경제’라고도 표현하는데 공동체를 위해 일을 맡은 사람들이 소진되지 않는지 명민하게 관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들이 지치기 전에 먼저 알아차려서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수유너머 104는 선물과 배려의 공간이다.

Q. 수유너머 104에서 열리는 강의 커리큘럼을 소개해 달라.

수유너머 104에서는 일주일에 20개가 넘는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커리큘럼에 따라 강의의 성격이 다르다. 계절 강의는 연구실 회원들이 공부한 내용을 강의하며 수강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다. 올해 가을에는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과 들뢰즈**의 『시네마 Ⅱ』 강독 강의, 문학 강의가 열리고 있다.

매월 둘째 주 화요일에는 ‘화요토론회’를 연다. 외부 강연자를 초청해서 사회와 문화, 예술과 정치, 일상과 세계를 아우르는 주제에 관한 얘기를 나눈다. 11월에는 홍세화 선생님을 모시고 토론회를 여니 많이들 오시면 좋을 것 같다. 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인문지능’이라는 강의도 있다. 계절마다 주제를 정해 공부하는데 올가을에는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10대부터 대학을 다니지 않는 20대까지 다양한 청년들이 모이니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Q. 본인에게 수유너머 104는 어떤 공간인가.

A. 사실 나는 10년간의 경력 단절이 있다. 결혼하고 미국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공부를 놓았다. 그때 수유너머는 친정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수유너머만 가면 언제든지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수유너머는 내가 사는 방식이다. 경쟁이나 위계조직이 아닌, 공부하며 일상을 나누는 열린 공동체에서 사는 것, 그게 수유너머의 방식이고 내가 사는 방식이다.

Q.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A. 많은 분이 오시면 좋겠다. 수유너머는 정해진 틀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서 20대 여성이 많이 오면 20대 여성의 공간으로,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많이 오면 그런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수유너머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으면 좋겠다.

“단 하루 만에 수유너머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은행원 철학자 강민혁 씨의 이야기

26년 차 베테랑 은행원인 강민혁 씨에겐 특별한 별명이 있다. 바로 ‘은행원 철학자’다. 은행 업무를 하면서 철학책 여러 권을 출판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11년 전 수유너머에서 철학을 처음 접했다. 그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생기자 건강마저 나빠졌다”며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수유너머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휴일이면 연구실에 살다시피 하며 2008년부터 약 3년 동안 벤야민, 니체, 마르크스, 푸코 등의 철학을 공부했다.

지난 1월에 출간한 『자기배려의 책읽기』는 수유너머 등에서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집필한 철학 서평집이다. 동서고금 철학자의 고전을 읽고 쓴 서평이 800쪽에 달한다. 강씨는 “철학 고전을 혼자 읽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며 “수유너머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수유너머에서의 공부는 ‘지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다. 강씨는 “지적 능력, 지식의 양과 지성은 별개의 문제다”며 “동료들과 함께 읽고 쓰며 자신을 객관화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모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철학뿐 아니라 정치, 경제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서적을 소개한다. 강씨는 “‘진짜 공부’를 하고 싶다면 동료가 있는 수유너머로 가라”고 전했다. 단 하루 만에 수유너머와 사랑에 빠질 거라고 확신하면서.

아무리 무한경쟁의 사회라지만 수유너머 104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분주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혹은 함께 생각을 나누고 공부할 동료가 필요하다면 수유너머 104로 향해보자. 따뜻한 환대와 배려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 출신 프랑스 철학자. 서구의 존재 개념 안에 이미 전체주의의 출현이 예고돼있다고 본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20세기 프랑스 철학자로 문학, 영화, 예술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저작을 썼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사진 박민진 기자
katarina@yonsei.ac.kr

김병관 박민진 기자  byeongma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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